3일 찾은 동대문 새벽시장에서는 두 달 전과 달리 중국 소비자가 아니라 한국 여성들을 겨냥한 상품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오현우 기자
3일 찾은 동대문 새벽시장에서는 두 달 전과 달리 중국 소비자가 아니라 한국 여성들을 겨냥한 상품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오현우 기자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지 않은 곳이 없다. 동대문도 그중 한 곳이다. “중국인들이 오지 않아 매출이 80% 줄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중국 보따리상(따이궁)들과 온라인 거래 활성화로 살아나던 중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다는 얘기였다. 지난 4일 밤 12시께 동대문으로 향했다. 대표적 새벽시장인 apM플레이스로 갔다. 두 달 전, 강추위에도 북적거렸지만 상가는 적막에 가까웠다.

하지만 동대문 길거리 곳곳에는 어디론가로 부쳐질 작은 옷 봉투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국내 판매용이었다. 1905년 생겨나 100년 넘는 역사를 갖고 있는 동대문시장은 변신을 통해 생존의 길을 찾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피할 수 없는 타격

이날 새벽 3시까지 도매상가 네 곳을 돌았다. 두 달 전 복도를 가득 채웠던 따이궁들은 찾기조차 힘들었다. 따이궁들이 골라 트럭에 실리기를 기다리는 옷 보따리도 없었다. 3시간 돌아다니는 동안 마주친 따이궁은 단 4명. 따이궁들에게 음식을 팔던 푸드트럭도 밤 12시가 안돼 장사를 접었다. apM플레이스에서 장사를 하는 A씨는 “지난달부터 중국인들의 발길이 끊겼다”고 전했다.

apM플레이스, apM럭스 등 중국인을 주고객으로 한 상가는 타격이 더 컸다. apM에 오는 손님이 끊기자 매출이 80% 줄어든 곳도 있었다. 신평화상가 동평화상가 벨포스트 등 동대문상인연합회에 속한 8개 상가는 3월 중 월요일 새벽시장 문을 닫기로 했다.

도매상가가 휘청거리자 연쇄효과로 원단·부자재시장도 한적해졌다. 디알코퍼레이션이 거래액을 분석해 보니 동대문 원단·부자재시장은 2월 한 달 동안 매출이 작년 같은 달에 비해 80% 가까이 줄었다.

코로나19로 변하는 동대문

하지만 동대문에는 새로운 변화의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으로 주요 고객을 바꾸며 마케팅을 시작했다. 옷의 색깔에서도 변화조짐은 보인다. apM플레이스, 럭스 등은 중국 소비자가 많이 찾는 도매상가다. 두 달 전까지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주황색 형광색 등 원색 옷들이 걸려 있었다. 지금은 하얀색, 베이지색 등 무채색 계열의 의류가 늘었다. 점포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중국인이 안 와 한국 소비자가 좋아할 옷을 많이 전시했다”고 말했다. 사흘이면 디자이너가 제작한 새로운 옷 수백 장을 받아볼 수 있는 동대문의 패션 생태계가 있어 가능한 변화였다.

상생의 노력도 있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apM은 모든 상가의 임차료를 인하해 주기로 했다. 소매상가인 두타, 테크노상가도 마찬가지 대책을 내놨다. 이날까지 apM 상가에서 휴점을 했거나 폐점한 도매상은 한 곳도 없었다.

고급 원단으로 위기 극복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원단·부자재 시장도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중국으로부터의 원단 공급이 막히자 국내에서 원단을 떼오기 시작한 것. 가격은 중국산에 비해 비싸지만, 품질이 좋다. 원단 중개 플랫폼 키위를 운영하는 정종환 디알코퍼레이션 대표는 “국산 원단은 중국산에 비해 가격은 비싸지만 품질 경쟁력을 갖췄다”며 “코로나19가 진정되면 원단 시장이 다시 정상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단시장을 백화점처럼 바꾸려는 상가도 나왔다. 동대문종합상가를 운영하는 ‘동승’은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 상가 구조를 개편할 예정이다. 특정 원단만 판매하는 전문 매장을 늘리고, 액세서리 세공 매장도 들일 계획이다. 홍건표 동승 상무는 “원단 판매에 대한 전문성을 강화하는 게 개편의 목표”라며 “섬유업에 도전하고 싶은 젊은이들이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휘청이는 동대문…고급화·상생·내수시장서 새 길 찾는다
동대문시장을 무대로 활동하는 스타트업들은 더 바빠졌다. 지난달 스타트업들이 내놓은 앱을 통해 거래된 의류는 작년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소매상들에게 도매상을 연결해주고, 제품 보관과 배송 등 물류 대행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브랜디가 대표적이다. 서정민 브랜디 대표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옷을 구입하는 여성 소비자가 크게 늘었다”며 “당일 출고율도 1월 70%에서 22%포인트 증가한 92%를 기록 중”이라고 말했다. 당일 출고율은 하루 동안 동대문 도매상이 의류 소매상의 주문을 처리하는 비율을 보여준다.

딜리셔스도 거래액이 작년에 비해 20% 증가했다. 도매상들이 앱을 통해 거래할 수 있는 ‘신상마켓’을 운영한다. 소매상들에게 사입도 대행해준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