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답한 증시 > 코스피지수는 13일 장중 150포인트 가까이 급락하다 장 막판 낙폭을 줄였지만 외국인은 이날 1조1000억원이 넘는 한국 주식을 처분했다. 서울 을지로 KEB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이 금융시장 지표를 보여주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 답답한 증시 > 코스피지수는 13일 장중 150포인트 가까이 급락하다 장 막판 낙폭을 줄였지만 외국인은 이날 1조1000억원이 넘는 한국 주식을 처분했다. 서울 을지로 KEB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이 금융시장 지표를 보여주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13일 국내 증시에서 18년 만에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주식시장 급락 시 모든 거래를 20분간 중단하는 증시 안정 조치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장이 열리자마자 8% 급락해 한때 1700선이 무너졌다. 전날 미국 S&P500지수가 1987년 ‘검은 월요일’ 이후 최대인 9.51% 폭락한 후폭풍이다.

오후 들어 낙폭이 줄었지만 투자자의 경계심은 극에 달하고 있다. 이날 증권가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돼 글로벌 금융·실물 복합위기로 치닫게 된다면 코스피지수가 1100선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미국 증시 폭락에 후폭풍

코스피지수는 이날 62.89포인트(3.43%) 내린 1771.44로 마감했다. 2012년 7월 25일(1769.31) 후 최저다. 1800선이 깨진 것은 2013년 6월 26일(1783.45) 후 약 7년 만이다.

전날 1834.33으로 마감한 코스피지수가 장 초반 1690선으로 뚝 떨어지자 한국거래소는 잇따라 증시 안정 장치를 가동했다. 오전 9시6분 사이드카를, 9시43분에는 1단계 서킷브레이커를 발동했다. 사이드카는 코스피200선물이 5% 넘게 하락했을 때, 서킷브레이커는 코스피지수가 8% 이상 급락했을 때 거래를 잠시 멈추는 조치다.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된 것은 미국 ‘9·11테러’가 일어난 2001년 9월 12일(종가 기준 -12.02%) 후 약 18년 만이다. 1998년 국내 도입 이후 유가증권시장에서 이날 포함해 총 네 차례 시행됐다. 장중 최대 13.56% 하락한 코스닥시장에서도 올해 첫 사이드카와 역대 여덟 번째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코스닥지수는 39.49포인트(7.01%) 하락한 524.00으로 거래를 마쳤다.

서킷브레이커 발동에도 계속 지수 저점을 낮춰가던 증시는 각국 정부가 추가 부양책을 꺼내들면서 낙폭을 줄였다. 이경민 대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일본과 호주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 중국의 종합 소비 진작 대책이 연달아 발표됐다”며 “미국 정부가 민주당과 합의해 곧 부양책을 발표할 것이란 기대도 보탬이 됐다”고 말했다.

경제위기 가능성 꺼내드는 증권가

각국의 부양책이 증시를 안정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투자자의 비관적 전망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승민 삼성증권 연구원은 “지난 몇 주 동안 부양책이 나오면 증시가 안정될 것이란 투자자의 기대가 번번이 빗나갔다”며 “미국과 유럽에서 계속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는 한 어떤 조치도 쉽게 증시 변동성을 잠재우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당분간 증시 바닥을 논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이창목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코로나19 사태가 단순한 전염병 수준을 넘어 글로벌 경기침체의 뇌관이 될지 모른다는 공포로 커지고 있다”며 “경기침체가 안 온다면 지금 코스피지수는 과도하게 하락한 상태라고 볼 수 있지만 사태가 어떻게 더 나빠질지 알 수 없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개인은 4463억원, 기관은 연기금을 필두로 5848억원어치를 순매수했지만 외국인은 부양책 소식에도 아랑곳없이 1조165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코스피 18년 만에 서킷브레이커…"최악 땐 1100까지 밀린다"
당초 바닥으로 생각했던 코스피지수 1800선이 쉽게 뚫리면서 증권가에선 과거 경제위기 때의 코스피지수 낙폭을 참고하기 시작했다. 현재 코로나19로 인한 코스피지수의 고점 대비 하락률은 21.9%로 ‘2011년 유럽 재정위기’(-25.9%), ‘2018~2019년 미·중 무역분쟁’(-26.5%) 때와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경제위기로 발전한다면 ‘1997년 외환위기’(-64.7%), ‘2008년 금융위기’(-54.5%) 때만큼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하나금융투자는 1600선, SK증권은 1100선까지 코스피지수가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1600선은 지난 1월 고점(2267.25) 대비 약 30%, 1100선은 약 50% 하락한 지수다. 이효석 SK증권 자산전략팀장은 “최악의 상황에선 정책의 힘도 위기를 막지 못한다”며 “상상하기 싫은 시나리오지만 금융위기로 이어질 경우 코스피지수가 고점 대비 50% 하락한 1100선까지 밀릴 가능성도 열어놔야 한다”고 말했다.

■ 서킷브레이커

코스피(코스닥)지수가 전날보다 8% 이상 하락한 상태가 1분간 이어지면 하루 1회 발동(1단계 기준). 채권을 제외한 모든 종목의 매매를 20분간 중단.

■ 사이드카

코스피200선물(코스닥150선물)이 전날 종가보다 5%(코스닥은 6%) 이상 상승·하락한 상태가 1분간 이어지면 하루 1회 발동. 프로그램 매매 호가 효력을 5분간 정지.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