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예스맨' 홍남기 부총리가 달라진 걸까

오늘 아침 뉴스 중에 관심을 모은 게 글로벌 증시 폭락과 함께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페이스북 글입니다. '예스맨' 홍 부총리가 왜 갑자기 이런 글을 남겼을까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홍 부총리를)관두라고 할 수도 있다"고 했다는 발언이 전해진 데 대한 반응입니다. 왜 여당 대표가 경제부총리의 '해임' 논란을 일으켰을까요? 정말 홍 부총리가 달라진 걸까요?

발단은 11일 추가경정예산안 당정협의 과정이었습니다. 민주당은 정부가 제출한 11조7000억원의 추경안으로는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경제 충격을 막기 어렵다며 6조원 이상 증액한 18조원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당연히 '예스' 할 줄 알았던 홍 부총리가 난색을 표명했다고 합니다. 이를 전해 들은 이 대표가 비공개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홍 부총리에 대해 "이렇게 소극적으로 나오면 나라도 물러나라고 할 수 있다"고 맹비난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언론 보도로 알려진 내용입니다. 민주당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 대표가 '버럭'으로 유명하지만 이번처럼 화내는 건 처음 봤다", "이 대표가 강하게 말한 것 맞지만 해임 언급은 없었다. 정확한 워딩은 '국가가 위기상황인데 공무원들이 빨리빨리 재정을 투입해야지 채무비율 가지고 이러면 안 된다'였다"고 부연설명도 나옵니다.

이에 대해 홍 부총리는 어젯밤 10시에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겠다고 예고했습니다. 기자들이 기다렸다가 쓴 기사들이 아침 조간에 실린 것입니다. 그가 올린 제목은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가 모두 필요할 때'입니다. "추경 규모는 올해 9.1% 늘어난 기정예산에다 2조원의 목적예비비(일반예비비 포함 3.4조원), 정부·공공·금융기관의 20조원 기 발표대책, 추경 대상사업 검토 결과 그리고 재정 뒷받침 여력 등까지 종합 고려해 결정후 국회에 제출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재정건전성과 여력도 들여다보고 감당할 수준에서 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 싶었다는 겁니다.

홍 부총리가 정말 달라진 것일까요? 기재부 안팎에서는 몇가지 분석이 나옵니다.

①'나라곳간 지킴이'로서 각성?

기재부는 국가재정과 예산을 관장하는 부처입니다. 가뜩이나 국가부채가 폭증하고 세수는 부진한 마당에 아무리 급해도 여당의 추경 증액 요구에 금방 맞장구칠 수는 없겠죠. 나라빚 급증으로 국민들 볼 면목이 없어 홍 부총리가 신중론을 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일부 네티즌들은 청와대의 공격을 받는 윤석열 검찰총장 때처럼 "홍남기를 우리가 지키자"고도 합니다.

하지만 현 정부에서 기재부가 해마다 슈퍼, 초슈퍼 예산을 짜는데 앞장서 온 점을 감안하면 홍 부총리가 대오각성 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추경은 야당 협조도 받아내야 합니다. 총선이 코앞이라 야당이 눈을 부릅뜨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다고 보는 게 더 실상에 가까울 겁니다. 홍 부총리가 그제 '2월 고용동향'에 대해 페이스북에 남긴 글을 보면 고용이 개선되고 있다는 자화자찬에 변화가 없습니다.

②짜고치는 고스톱?

코로나 사태가 글로벌 팬데믹(대유행) 단계에 접어든 이상 장기전에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벌써 2차 추경 얘기도 나오고,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추경 40조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여당 의원은 "청와대도 추경 증액에 동의했다"고 합니다. 홍 부총리도 그런 사정을 모르진 않을 것입니다. 당장 죽느냐 사느냐 기로에 선 분야가 한 둘이 아니죠. 따라서 어차피 추경을 늘리더라도, 일단 한번 튕기는 모양새를 보인 수준으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속된 말로 짜고 치는 고스톱인데 '당정의 추경 파열음'으로 일부 언론이 해석하는 것은 헛다리 짚은 것일 수 있습니다.

③그만둘 때가 되어 입바른 소리?

현직에서는 제 목소리를 못내다가 그만둘 때가 됐거나 그만둔 뒤에야 입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전직 노조위원장이 노조의 행태를 비판한다든지, 정부 위원회 위원장이 사의를 표한 뒤 관료들의 행태를 질타하는 것 등이 그런 예입니다. 홍 부총리도 정말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사표 쓸 각오로 재정 형편도 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낸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의 어제 페이스북 글에는 이런 말도 있습니다. "저도 민생의 절박한 목소리를 가슴으로 느끼면서 과연 무엇이 국가경제와 국민을 위한 것인지 매 순간 순간 치열하게 고민해 옴. 지금은 우리 모두가 뜨거운 가슴 뿐만 아니라 차가운 머리도 필요한 때."

여당 대표와 경제부총리 간 때아닌 마찰을 보면서 씁스레 하는 관료들도 있습니다. 집권여당이 내각을 보는 시각이, 지주가 마름 보듯 한다는 것이죠. 말 안 들으면 언제든 내칠 수 있다는 속내가 투영된 게 아니냐는 겁니다. 실제로 그간 행태를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관료출신 장관들은 보면 대개 소신이 있다기보다는 무색무취이고,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는 돌쇠형이 많습니다. 그래야 이 정부에서 장관이 될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 1800대로 내려온 코스피지수가 오늘은 1700선마저 위태롭습니다. 21세기를 살다가 어제는 19세기초 조선 순조, 오늘은 18세기초 숙종 시대로 되돌아 가는 것 같습니다. 바닥이 꺼지는 것 같은 이 시기에, 정부에서 누가 종합적인 컨틴전시 플랜을 짜는지 모르겠습니다. 부총리도, 청와대 정책실장도 마스크에 매달리고, 추경에 몰입하느라 정작 큰 문제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바랍니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