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예상 뒤엎은 라가르드 총재…"ECB가 코로나19 과소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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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가르드 총재, “유로존 정부가 지출 확대해야”
‘필요한 모든 조치’ 강조한 전임 드라기 총재와 상반 지적도
‘필요한 모든 조치’ 강조한 전임 드라기 총재와 상반 지적도
유럽중앙은행(ECB)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양적완화와 은행의 유동성 확보 조치를 내놨다. 하지만 정책금리 인하와 대규모 양적완화 확대를 예상했던 시장 기대에 크게 못 미쳐 찬물을 끼얹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19 공포가 전 세계 금융시장과 실물경제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ECB가 현 사태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사진)는 12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 ECB 본부에서 열린 통화정책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확산은 중대한 영향을 주는 심각한 충격”이라며 “필요시 모든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코로나19 사태가 불거진 후 처음으로 내놓은 공식성명 내용과 똑같은 내용이다.
ECB는 코로나19 확산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자산(채권) 매입을 확대하고 장기대출프로그램(LTRO)을 일시적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ECB는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채권 매입 규모를 1200억유로(약 163조원) 더 늘리기로 했다. 기존 월 200억유로 수준의 채권 매입은 그대로 유지한다. ECB는 저금리로 유럽은행들에 대출해주는 LTRO를 도입하기로 했다. 기준금리와 예금금리 등 정책금리는 현 수준을 유지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를 또 다시 강조했다. 그는 “중앙은행이 우선 대응할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 되고, 재정정책이 우선돼야 한다”며 “위기에 처한 기업과 근로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과감한 재정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특히 유로존 재정당국이 보여준 안일하고 느린 움직임에 걱정이 든다”고 말했다.
이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재무장관들이 경기부양 대책 발표를 미루기로 한 것을 비판한 대목으로 분석된다. 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인 유로그룹은 지난 4일 코로나19 관련 경기부양을 위한 공동대응에 합의했다. 하지만 경기부양을 위한 정책수단의 시기와 방법 등은 내놓지 않았다. 유로그룹은 오는 16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공식 유로그룹 회의 때까지 구체적인 결정을 미루기로 했다. 상당수 유로존 회원국들이 정부부채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은 코로나19 확산 사태를 지켜보겠다는 계획이었다.
라가르드 총재는 “코로나19 확산 사태로 경제 전망이 악화할 수 있다”며 “부양 정책 요구에 정부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라가르드 총재의 이날 발언에 대해 시장에서 비판적인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판테온 매크로이코노믹스의 클라우스 비스테센 이코노미스트는 “ECB는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심각하게 과소평가했다”며 “라가르드 총재의 발언은 파국적 실패로 치닫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장은 ECB가 이번 사태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데다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을 스스로 부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각국 정부에 사실상 책임을 떠넘긴 라가르드 총재의 발언에 대해 전임 마리오 드라기 총재와 비교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2년 7월 유로존 재정위기가 극에 달했을 당시 드라기 총재는 ‘필요한 모든 조치’(whatever it takes)라는 세 마디 말로 시장 분위기를 바꿨다. 그는 당시 런던에서 열린 한 연설에서 “ECB는 유로화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할 준비가 돼 있다. 나를 믿어달라. 조치는 충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마이너스금리와 양적완화 정책 등을 통해 유로존을 재정위기에서 구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초 시장은 ECB가 대규모 양적완화 확대에 더해 예금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ECB 기준금리는 제로(0)이며 예금금리(시중은행이 ECB에 자금을 예치할 때 적용되는 금리)는 연 -0.5%다. 지난달엔 경기 전망이 더욱 악화되면 예금금리를 현 연 -0.5%에서 최대 연 -1.0%까지 인하할 수 있다는 ECB 내부 보고서가 공개되기도 했다. 제로인 기준금리를 더 낮추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예금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ECB가 마이너스금리에 따른 부작용을 의식해 예금금리 인하를 유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 마이너스금리로도 은행들의 수익성이 악화하고 유럽 주요 도시가 심각한 부동산 버블현상이라는 부작용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ECB는 이번 대책의 핵심을 은행의 유동성 확보에 초점을 뒀다. ECB는 “금융시장과 은행 시스템에서 유동성 부족 신호는 보이지 않고 있지만 이런 정책은 효과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럽연합(EU) 행정부인 집행위원회와 유로존 회원국들도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부양을 준비하고 있다. 다만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프랑스 등의 재정부채가 과도한 상황이라는 것이 걸림돌이다. 유로존 회원국의 코로나발(發) 재정투입이 자칫 ‘재정적자 확대’→ ‘유럽 재정위기’→‘글로벌 경기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사진)는 12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 ECB 본부에서 열린 통화정책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확산은 중대한 영향을 주는 심각한 충격”이라며 “필요시 모든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코로나19 사태가 불거진 후 처음으로 내놓은 공식성명 내용과 똑같은 내용이다.
ECB는 코로나19 확산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자산(채권) 매입을 확대하고 장기대출프로그램(LTRO)을 일시적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ECB는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채권 매입 규모를 1200억유로(약 163조원) 더 늘리기로 했다. 기존 월 200억유로 수준의 채권 매입은 그대로 유지한다. ECB는 저금리로 유럽은행들에 대출해주는 LTRO를 도입하기로 했다. 기준금리와 예금금리 등 정책금리는 현 수준을 유지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를 또 다시 강조했다. 그는 “중앙은행이 우선 대응할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 되고, 재정정책이 우선돼야 한다”며 “위기에 처한 기업과 근로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과감한 재정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특히 유로존 재정당국이 보여준 안일하고 느린 움직임에 걱정이 든다”고 말했다.
이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재무장관들이 경기부양 대책 발표를 미루기로 한 것을 비판한 대목으로 분석된다. 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인 유로그룹은 지난 4일 코로나19 관련 경기부양을 위한 공동대응에 합의했다. 하지만 경기부양을 위한 정책수단의 시기와 방법 등은 내놓지 않았다. 유로그룹은 오는 16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공식 유로그룹 회의 때까지 구체적인 결정을 미루기로 했다. 상당수 유로존 회원국들이 정부부채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은 코로나19 확산 사태를 지켜보겠다는 계획이었다.
라가르드 총재는 “코로나19 확산 사태로 경제 전망이 악화할 수 있다”며 “부양 정책 요구에 정부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라가르드 총재의 이날 발언에 대해 시장에서 비판적인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판테온 매크로이코노믹스의 클라우스 비스테센 이코노미스트는 “ECB는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심각하게 과소평가했다”며 “라가르드 총재의 발언은 파국적 실패로 치닫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장은 ECB가 이번 사태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데다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을 스스로 부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각국 정부에 사실상 책임을 떠넘긴 라가르드 총재의 발언에 대해 전임 마리오 드라기 총재와 비교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2년 7월 유로존 재정위기가 극에 달했을 당시 드라기 총재는 ‘필요한 모든 조치’(whatever it takes)라는 세 마디 말로 시장 분위기를 바꿨다. 그는 당시 런던에서 열린 한 연설에서 “ECB는 유로화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할 준비가 돼 있다. 나를 믿어달라. 조치는 충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마이너스금리와 양적완화 정책 등을 통해 유로존을 재정위기에서 구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초 시장은 ECB가 대규모 양적완화 확대에 더해 예금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ECB 기준금리는 제로(0)이며 예금금리(시중은행이 ECB에 자금을 예치할 때 적용되는 금리)는 연 -0.5%다. 지난달엔 경기 전망이 더욱 악화되면 예금금리를 현 연 -0.5%에서 최대 연 -1.0%까지 인하할 수 있다는 ECB 내부 보고서가 공개되기도 했다. 제로인 기준금리를 더 낮추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예금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ECB가 마이너스금리에 따른 부작용을 의식해 예금금리 인하를 유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 마이너스금리로도 은행들의 수익성이 악화하고 유럽 주요 도시가 심각한 부동산 버블현상이라는 부작용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ECB는 이번 대책의 핵심을 은행의 유동성 확보에 초점을 뒀다. ECB는 “금융시장과 은행 시스템에서 유동성 부족 신호는 보이지 않고 있지만 이런 정책은 효과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럽연합(EU) 행정부인 집행위원회와 유로존 회원국들도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부양을 준비하고 있다. 다만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프랑스 등의 재정부채가 과도한 상황이라는 것이 걸림돌이다. 유로존 회원국의 코로나발(發) 재정투입이 자칫 ‘재정적자 확대’→ ‘유럽 재정위기’→‘글로벌 경기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