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제5의 메이저’로 불리는 플레이어스챔피언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중단됐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도 이달 예정된 대회들의 ‘연기’를 선언하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세계 주요 프로골프대회가 사실상 ‘올스톱’됐다.

PGA투어는 13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폰테베드라 비치의 TPC 소그래스(파72)에서 열린 플레이어스챔피언십 대회 1라운드가 끝난 뒤 긴급 성명을 내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대회 취소를 결정했다”며 “대회가 주말까지 열릴 수 있도록 모든 필요한 절차를 밟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계속해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시점에서 대회 취소가 가장 옳은 결정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PGA투어가 주최·주관하는 플레이어스챔피언십이 취소된 건 이 대회 47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PGA투어는 이어지는 발스파챔피언십, 델 테크놀로지스 매치플레이, 발레로 텍사스오픈도 모두 취소하기로 했다.

PGA투어 최고 상금 대회, 사상 첫 취소

플레이어스챔피언십이 취소됐다는 소식에 골프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이 대회가 지닌 상징성 때문이다. PGA투어는 이 대회에 강한 애착을 보이고 있다. 4대 메이저 골프대회를 주관하지 못하는 PGA투어로서는 ‘자존심’과도 같은 대회다. 올해 4대 메이저대회보다 많은 투어 최고 총상금 1500만달러(약 183억원)를 걸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배경이다.

PGA투어는 코로나19 사태에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는 비난에도 올해 대회 개최를 강행했다. 하지만 1라운드 직후 무관중 경기를 선언했고, 결국 여론에 떠밀려 대회를 취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프로농구(NBA)에서 확진자가 나오고 미국프로야구(MLB) 등 주요 프로 스포츠가 모두 중단되는 상황에서 PGA투어가 ‘강행 카드’를 계속 내세우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론 디센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와 통화한 제이 모나한 PGA투어 커미셔너가 이들로부터 대회 중단 압박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PGA투어는 준비 비용, 중계 등 이번 대회 취소로 막대한 금전적 손해를 볼 것으로 전망된다.

뒤늦은 취소 결정에 대한 선수들의 비난도 거세다. 대회가 중단되면서 선수들의 일정이 꼬였고 체류비 등 금전적 손실을 봤기 때문이다. 게리 우들랜드(36·미국)는 전날 PGA투어가 무관중 경기를 발표한 직후 “좀 더 일찍 결정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브라이슨 디섐보(27·미국)는 “팬들의 응원과 에너지를 원하지만 그들이 감염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LPGA도 ‘올스톱’, 마스터스도 연기

PGA투어에 이어 LPGA투어 사무국도 다음주부터 연달아 열릴 예정이던 볼빅 파운더스컵과 기아 클래식, 메이저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 등 3개 대회를 연기한다고 이날 발표했다. 마이크 완 LPGA투어 커미셔너는 “연기된 3개 대회는 올해 안에 다시 일정을 잡겠다”고 했다. 하지만 하반기에도 다른 대회 일정이 꽉 차 있는 상황이어서 연내 개최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앞서 아시안투어는 메이뱅크챔피언십(4월 16~19일)을 포함해 5개 대회 연기 사실을 알렸고, 유러피언투어도 4개 대회를 연기하거나 취소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는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즈가 취소됐고, 시즌 국내 개막전인 롯데렌터카 여자오픈도 다음주 대회 취소 여부를 밝힐 예정이다. 사실상 세계 주요 프로골프대회가 모두 중단된 셈이다.

주요 투어의 ‘도미노 취소’로 프로골프 최고 권위의 대회인 마스터스 토너먼트도 이날 “대회를 연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마스터스는 이미 티켓값이 절반 가격에 거래되는 등 정상적인 대회 개최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었다. 마스터스는 다음달 10일부터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내셔널GC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세계 2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대회 연기를 결정한 마스터스 주최 측은 “가능한 한 이른 시일에 새 대회 일정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