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만에 혁신 핀테크 개발해도…금감원 늑장에 출시는 1년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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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甲 금융감독원 대해부
(3) 멀어지는 금융혁신
"금감원에 가면 번번이 막힌다"
되는 것보다 안되는 이유 찾아
스타트업에도 기존 금융사 잣대
(3) 멀어지는 금융혁신
"금감원에 가면 번번이 막힌다"
되는 것보다 안되는 이유 찾아
스타트업에도 기존 금융사 잣대
“금융위원회와 얘기할 때는 진심 어린 조언과 도움을 받는다고 느끼는데 감독기관과 얘기하다 보면 진행되는 게 없다.”
지난해 9월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참석한 ‘핀테크 스케일업’ 행사에서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토스의 법인명) 대표의 깜짝발언에 행사장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행사 후 금융감독원과 핀테크(금융기술) 업계 관계자들의 반응은 극단적으로 갈렸다. 금감원 내부에선 “좋은 취지로 마련된 자리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말이 나온 반면, 핀테크 업계에선 “속 시원하다”는 반응을 내놨다.
핀테크 업계는 금감원이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자세로 핀테크 서비스를 바라보면서 혁신 의지가 꺾인다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혁신 발목 잡는 금감원
이승건 대표의 ‘작심발언’은 토스증권의 대주주적격성 심사가 지연되면서 나왔다. 토스의 자본금 134억원 가운데 75%가 상환전환우선주(RCPS)라는 점이 원인이었다. 상환전환우선주는 일정 조건 아래서 투자자가 상환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식이다. 국내외 스타트업의 일반적인 자본 조달 방식이다. 하지만 토스가 인터넷전문은행과 증권업 진출을 준비하면서 금감원이 이 같은 자본 조달 방식을 문제 삼았다. 조건만 충족하면 주주가 언제든지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자본을 진정한 자본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핀테크 업계에서는 이 사례를 두고 “핀테크산업 발전을 위해선 금감원이 규정 해석을 적극적으로 해주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금감원은 오히려 안 되는 이유를 먼저 찾으려고 하는 것 같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토스는 결국 해외 주주사를 일일이 만나 RCPS를 전환우선주로 바꾸는 작업을 벌여 증권사 설립 예비인가를 받았다. 전환우선주는 상환 옵션이 없고 보통주로 전환 가능하다.
금감원이 모범규준, 구두지도, 수시검사 등 기존 금융사에 적용하던 잣대를 인력과 자금, 시간이 부족한 핀테크 스타트업에도 똑같이 적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 솔루션 핀테크 업체의 A대표는 사업 초기 금감원 검사를 받으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했다. 금감원이 ‘업무가 합법적인지 여부를 알기 위해선 고객 전체 명단이 필요하다’고 요구해온 것. A대표는 “고객 전체의 명단을 제공하는 게 타당한지 법률 자문을 받으면서 제출 시점이 늦어지자, 금감원 관계자가 ‘이 정도면 (금감원) 업무방해죄다’ ‘이렇게 협조가 안 되면 재미가 없다’는 등 고성을 질렀다”고 전했다.
A대표는 “스타트업들은 자본 부족으로 직원들에게조차 넉넉한 업무 공간을 제공하지 못하는데, 무슨 뾰족한 수가 있어서 금감원 검사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겠느냐”며 “금감원이 도와주지 않아도 되니 사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사소한 일로 발목을 붙잡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금감원 규정 해석 일관성 없어
한 핀테크 업체는 2017년 투자 일임 서비스를 제공하는 앱을 만들려다 금감원의 유권해석으로 서비스 출시를 늦춰야 했다. 금감원은 당시 이 회사 투자일임서비스의 핵심인 퀀트(계량분석)와 로보어드바이저 기반의 비대면 투자 권유는 불법의 소지가 있다고 해석했다. 해외에선 이미 비대면 투자 일임 서비스가 상용화된 뒤였다.
1년 뒤인 2018년 6월 자본시장법이 개정되고, 2019년 4월 금융투자업규정이 바뀌면서 로보어드바이저 업체도 비대면으로 펀드·일임재산 운용 업무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이 회사는 훨씬 더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서비스를 내놔야만 했다.
한 대형 정보기술(IT) 기업 대표는 “IT 분야에선 간발의 차이로 시장 주도권을 뺏기도 하고 뺏기기도 한다”며 “국내에선 핀테크 기술을 2~3개월 만에 개발해도 금감원 유권해석을 얻는데 1년 가까이 걸리니 세계 시장에서 승부를 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해외 벤처캐피털(VC)에도 국내의 ‘금융규제 리스크’는 유명하다. 글로벌 VC와 투자 유치를 위한 협의를 하다가 ‘규제 리스크’ 때문에 기업가치를 깎이거나, 자본유치 계약이 무산되는 핀테크 업체가 적지 않다는 전언이다. 핀테크 업체 창업자 B대표는 글로벌 금융사에서 경력을 쌓은 후배의 국내 창업을 말린 경험이 있다. 그는 “처벌의 강력함으로 보면 미국 증권감독위원회(SEC)가 더 무섭지만, 한국 금감원은 규정 해석에 일관성이 없어 예측 불가능하다는 리스크가 있다”며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을 꿈꾼다면 해외에서 창업한 뒤 국내에 역으로 진출하라고 조언했다”고 했다.
시간 돈 모자란데…‘대관’에 골몰
규모가 커진 핀테크 업체들은 요즘 대관 인력을 확충하는 데 힘쓰고 있다. 기존 금융사에서 금감원 관련 업무를 본 컴플라이언스(준법감시) 담당자를 채용하고, IT 법인과 금융법인을 분리하는 것도 최근 핀테크 업계의 추세다.
핀테크 업계 관계자는 “핀테크 스타트업들은 임직원이 많아도 20명 안팎”이라며 “혁신 서비스를 내놓는 데 인력을 집중하기도 모자란 판에 금감원 동향을 살펴야 할 대관에 인력을 배치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라고 하소연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
지난해 9월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참석한 ‘핀테크 스케일업’ 행사에서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토스의 법인명) 대표의 깜짝발언에 행사장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행사 후 금융감독원과 핀테크(금융기술) 업계 관계자들의 반응은 극단적으로 갈렸다. 금감원 내부에선 “좋은 취지로 마련된 자리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말이 나온 반면, 핀테크 업계에선 “속 시원하다”는 반응을 내놨다.
핀테크 업계는 금감원이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자세로 핀테크 서비스를 바라보면서 혁신 의지가 꺾인다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혁신 발목 잡는 금감원
이승건 대표의 ‘작심발언’은 토스증권의 대주주적격성 심사가 지연되면서 나왔다. 토스의 자본금 134억원 가운데 75%가 상환전환우선주(RCPS)라는 점이 원인이었다. 상환전환우선주는 일정 조건 아래서 투자자가 상환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식이다. 국내외 스타트업의 일반적인 자본 조달 방식이다. 하지만 토스가 인터넷전문은행과 증권업 진출을 준비하면서 금감원이 이 같은 자본 조달 방식을 문제 삼았다. 조건만 충족하면 주주가 언제든지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자본을 진정한 자본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핀테크 업계에서는 이 사례를 두고 “핀테크산업 발전을 위해선 금감원이 규정 해석을 적극적으로 해주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금감원은 오히려 안 되는 이유를 먼저 찾으려고 하는 것 같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토스는 결국 해외 주주사를 일일이 만나 RCPS를 전환우선주로 바꾸는 작업을 벌여 증권사 설립 예비인가를 받았다. 전환우선주는 상환 옵션이 없고 보통주로 전환 가능하다.
금감원이 모범규준, 구두지도, 수시검사 등 기존 금융사에 적용하던 잣대를 인력과 자금, 시간이 부족한 핀테크 스타트업에도 똑같이 적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 솔루션 핀테크 업체의 A대표는 사업 초기 금감원 검사를 받으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했다. 금감원이 ‘업무가 합법적인지 여부를 알기 위해선 고객 전체 명단이 필요하다’고 요구해온 것. A대표는 “고객 전체의 명단을 제공하는 게 타당한지 법률 자문을 받으면서 제출 시점이 늦어지자, 금감원 관계자가 ‘이 정도면 (금감원) 업무방해죄다’ ‘이렇게 협조가 안 되면 재미가 없다’는 등 고성을 질렀다”고 전했다.
A대표는 “스타트업들은 자본 부족으로 직원들에게조차 넉넉한 업무 공간을 제공하지 못하는데, 무슨 뾰족한 수가 있어서 금감원 검사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겠느냐”며 “금감원이 도와주지 않아도 되니 사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사소한 일로 발목을 붙잡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금감원 규정 해석 일관성 없어
한 핀테크 업체는 2017년 투자 일임 서비스를 제공하는 앱을 만들려다 금감원의 유권해석으로 서비스 출시를 늦춰야 했다. 금감원은 당시 이 회사 투자일임서비스의 핵심인 퀀트(계량분석)와 로보어드바이저 기반의 비대면 투자 권유는 불법의 소지가 있다고 해석했다. 해외에선 이미 비대면 투자 일임 서비스가 상용화된 뒤였다.
1년 뒤인 2018년 6월 자본시장법이 개정되고, 2019년 4월 금융투자업규정이 바뀌면서 로보어드바이저 업체도 비대면으로 펀드·일임재산 운용 업무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이 회사는 훨씬 더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서비스를 내놔야만 했다.
한 대형 정보기술(IT) 기업 대표는 “IT 분야에선 간발의 차이로 시장 주도권을 뺏기도 하고 뺏기기도 한다”며 “국내에선 핀테크 기술을 2~3개월 만에 개발해도 금감원 유권해석을 얻는데 1년 가까이 걸리니 세계 시장에서 승부를 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해외 벤처캐피털(VC)에도 국내의 ‘금융규제 리스크’는 유명하다. 글로벌 VC와 투자 유치를 위한 협의를 하다가 ‘규제 리스크’ 때문에 기업가치를 깎이거나, 자본유치 계약이 무산되는 핀테크 업체가 적지 않다는 전언이다. 핀테크 업체 창업자 B대표는 글로벌 금융사에서 경력을 쌓은 후배의 국내 창업을 말린 경험이 있다. 그는 “처벌의 강력함으로 보면 미국 증권감독위원회(SEC)가 더 무섭지만, 한국 금감원은 규정 해석에 일관성이 없어 예측 불가능하다는 리스크가 있다”며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을 꿈꾼다면 해외에서 창업한 뒤 국내에 역으로 진출하라고 조언했다”고 했다.
시간 돈 모자란데…‘대관’에 골몰
규모가 커진 핀테크 업체들은 요즘 대관 인력을 확충하는 데 힘쓰고 있다. 기존 금융사에서 금감원 관련 업무를 본 컴플라이언스(준법감시) 담당자를 채용하고, IT 법인과 금융법인을 분리하는 것도 최근 핀테크 업계의 추세다.
핀테크 업계 관계자는 “핀테크 스타트업들은 임직원이 많아도 20명 안팎”이라며 “혁신 서비스를 내놓는 데 인력을 집중하기도 모자란 판에 금감원 동향을 살펴야 할 대관에 인력을 배치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라고 하소연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