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결국 공매도 금지를 들고 나왔다. 주가가 급락할 때마다 투자자들의 집중 포화가 쏟아지는 공매도는 그래서 오늘부터 6개월간 국내 증시에서는 전면 금지된다. 당초 금융당국은 공매도 금지에 다소 회의적이었다. 주가를 떨어뜨린다는 근거도 희박하고 과거 경험상 공매도 금지가 큰 효과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가가 연일 급락하면서 투자자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를듯 한데다 여당 일각에서도 금지 목소리가 나오자 입장을 바꿨다. 지난 10일에는 공매도가 금지되는 과열종목 지정 요건을 완화한다고 했다가 13일에는 아예 전면 금지라는 초강수를 뒀다. 효과가 있든 없든, 주식 투자 손실로 화가 잔뜩난 개미들의 아우성을 잠시 잠재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우한 폐렴으로 쑥대밭이 되다시피한 금융시장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뭐라도 좀 해보라는 정부 여당의 닥달에 그냥 있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주가급락 때마다 반복되는 공매도 논란, 한번 꼼꼼히 집어봤다.

① 공매도가 주가 하락의 주범이다 ? 그럼 그냥 매도는?
주가가 급락하면 사람들은 본인의 투자 잘못보다는 뭔가 다른 요인을 찾는다. 누군가의 작전(?) 내지는 보이지 않는 큰손(?) 혹은 사악한 투기꾼 때문에 내가 투자한 주식의 가격이 떨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주가가 떨어지는 이유는 단순히 생각해 '사자'보다 '팔자'가 많기 때문이다. 여기서 '팔자'에는 보유한 주식을 파는 것과 보유하지 않은 주식을 빌려 파는 공매도가 있다.
둘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없다. 주식은 예탁결제원에 얌전히 맡겨져 있을 뿐, 내가 특정 주식을 산 뒤 내 책상서랍에 주식 실물을 가득 갖고 있는 사람은 없다. 전산상 산 것만으로 나는 주식 보유자가 된다. 주식을 팔 때도 한번도 보지도 못한 주식을 판다. 서류상 보유한 것을 파는 것이다. 공매도는? 이와 전혀 다르지 않다. 똑 같다. 다만 주식 매입이라는 전산상 과정 하나가 생략돼 있을 뿐이고 나중에 다시 전산상으로 주식을 매수해 갚는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발행 주식수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한번 공매도된 주식을 동시에 여러 사람이 다시 매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시장에 매도 주문이 나오는 것은 주식 보유자의 것이나 공매도자의 것이나 하등의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공매도가 주가를 끌어내린다고 믿는다. 마치 무한대로 가상화폐를 찍듯이 주식을 갖고 있지 않으니 무한대로 주식을 팔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②개미들은 공매도를 못해 불공정하다 ?
굴리는 돈이 많지 않은 개미들은 증권시장에서는 거의 언제나 불공평한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적은 사람은 많은 사람에 비해 불공정한 일을 수 없이 당한다.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증권시장에서는 더 그렇다. 그게 싫으면 주식투자를 안하면 된다. 그런데도 개미들은 돈을 싸들고 기울어진 운동장인 증시에 들어와서는 불공평 내지는 불공정 이야기를 한다.
투자 규모가 적은 개미들이 증시에서 불공평해지는 것은 거의 모든 영역에서 그렇다. 외국인 큰손이나 기관투자가에 비해서 우선 정보에서 비대칭이라는 건 잘 알 것이다. 사실 가장 불공평한 것은 시장을 움직일 수 없다는 데 있다. 세력이 됐든, 외국인이 됐든, 기관이 됐든, 연기금이 됐든 어느 정도 시장을 움직일 수 있다. 물론 지들 맘대로 언제나 움직일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필요할 때 어느 정도는 그런 힘, 다시말해 자금력을 갖추고 있다. 이걸 좋게 말해 시장조성이라고도 하고, 나쁘게 말하면 작전이다.

사실 이런 큰 손들이 없으면 시장 자체가 돌아가지 않는다. 개미들만 득실대서는 시장자체가 형성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개미들은 이들 큰 손들에 기생(?)내지는 편승해 작은 꼬물이라도 먹겠다고 하다가 손실이 커지면 갑자기 공매도 욕을 하기 시작한다.
외국인이나 큰 손에 비해 개인이 불리한 것은 프로그램 매매에서도 그렇고 알고리즘 트레이딩에서도 그렇다. 자금력이 부족한 개인들은 이런 매매를 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불공정 이슈를 제기하지 않는 개미들이 유독 공매도에 대해서만 불만을 쏟아낸다.
개인들이 공매도를 정 하고 싶다면 개별주식 혹은 주가지수 선물을 매도하거나 옵션 거래를 활용할 수도 있다. 아니면 온갖 상장지수펀드(ETF)가 상장된 요즘엔 주가와 반대방향으로 수익이 나는 인버스펀드에 가입하면 된다.

③ 한국 주가 하락률이 가장 커서 공매도 전면 막았다?
코로나 사태로 거의 모든 나라의 주가가 최근 폭락했다. 코스피 하락률은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더 클까? 아니다. 한국은 주요국중 가장 주가가 덜 떨어진 나라중 하나다. 주요국 대표 주가지수의 올해 고점 대비 지난주 저점까지 하락률을 보면 미국 다우지수 28.4%, 일본 니케이 27.5%, 영국 30.2%, 독일 33.5%, 프랑스 34.1%, 이탈리아 41.5%, 스페인 36.6% 등이다. 코스피는 1월20일 고점(2262.64 포인트) 에서 지난 13일 1771.44 포인트까지 21.7% 하락했다.
이번 코로나로 인해 공매도를 6개월간 전면 금지한 나라는 한국 뿐이다. 지난주 목요일 유럽 여러나라의 주가 지수가 10% 안팎 폭락하자 영국과 이탈리아는 주가가 급락한 85개 종목에 대해, 스페인은 69개 주식에 대해 다음날인 금요일 하루 공매도를 금지했다. 우리처럼 전면 금지도 아닌 몇개 종목에 국한했고 그것도 단 하루에 그쳤다.
한국에서 최강의 공매도 규제가 나온 것은 청와대 국민청원에까지 공매도 금지가 올라오는 등 투자자들의 아우성이 하늘을 찌르자 일종의 입막음 용 대책으로 내놓은 것이라고 봐야한다.

④ 공매도를 아예 한국에서 영원히 못하게 하면 ?
아마도 이를 원하는 개인 투자자들이 많지 싶다. 문제는 이렇게 될 경우 한국 증시를 쥐락펴락하는 외국인 투자자의 상당 수가 한국을 떠날 것이다. 주가는 오르기도, 내리기도 한다. 향후 주가 움직임에 대한 예측도 그렇게 갈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오른다'에만 베팅할 수 있다며 그만큼 수익 기회는 줄어들 수밖에 없고 투자자들은 규제가 덜한 다른 시장으로 떠날 것이다.
보통의 자동차는 모두 전진도 하고 후진도 할 수 있다. 그런데 후진은 못하고 전진만 할 수 있는 자동차가 있다면 사람들이 그 차를 사려고 들까? 공매도가 폐지되면 그래서 시장 유동성은 크게 쪼그라들 가능성이 높다.
공매도가 안 되면 작전주가 더 판을 칠 가능성도 크다. 작전 세력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가를 끌어올리려 할텐데 이를 견제할 공매도 세력이 없다면 더욱 활개를 칠 것이다. 주가 거품이 그만큼 심해질 수밖에 없고 그 거품이 하루 아침에 어떻게 사리질 수 있는지는 많은 투자자들이 경험을 통해 알 것이다.

주가급등 가능성도 낮아진다. 보통 사람들은 공매도의 매도 측면에만 집중하지 주가가 급등해 공매도 물량이 손절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빌려서 매도한 주식을 다시 갚기 위해 매수하는 이른바 환매수 과정에는 눈을 감는다. 주가가 급등하면 공매도 투자자들은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서둘러 시장가에라도 환매수에 나서야 한다. 급등하는 주가가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가격이 뛰어오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대량으로 공매도한 투자자들이 시장가로 손절할 때 발생한다. 마치 주식을 매수한 투자자가 주가 급락에 놀라 시장가로 손절할 때 주가가 급락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⑤ 공매도는 정말 주가를 끌어내릴까 ? 공매도 금지는 주가하락을 막을까 ?
공매도가 주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국내외 수많은 논문들이 있지만 대부분 주가하락을 유발한다는 결정적 증거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공매도를 제한할 경우 일시적인 가격하락은 막을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주가에 거품이 끼게 되고 이후 하락 폭이 더 크다는 분석도 있다. 시장에는 긍정적 정보와 부정적 정보가 늘 공존한다. 그런데 공매도 제한은 부정적 정보가 가격에 반영되는 것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8개월간, 2011년 유럽 재정위기 때는 3개월간 국내에서 공매도가 금지됐다, 그런데 공매도가 금지된 2008년 10월1일부터 약 한달간 코스피는 34.8%, 코스닥은 37.3% 폭락했다. 정부에 의한 공매도 전면 금지는 그만큼 시장 상황이 않좋다는 신호가 될 수도 있다. 당연히 투자자들은 주식을 팔고 시장을 떠나려들 것이고 이것이 오히려 주가하락을 더 부추길 수도 있는 것이다.

⑥ 주가하락을 막는 법은 모든 매도를 금지시키는 것 뿐
요즘처럼 주가가 급락할 때 정말 이를 막고 싶다면 방법은 유일하게 한가지 있다. 공매도 뿐 아니라 모든 매도, 다시 말해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주식 매도마저 전면 금지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주가 하락은 없을 것이다. 아마 많은 이들이 그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투자자가 자기 맘대로 보유 주식을 팔지도 못하게 하면 그게 무슨 자본주의 시장이냐고 비웃을 지 모른다.
공매도도 사실 마찬가지다. 특정 주식이 내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하락에 베팅하려고 하는데 이를 막는 것은 상승에 베팅하는 것을 막는 것과 결과적으로 다를 게 없다. 모든 매도를 금지하는 게 터무니 없다면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는 것도 터무니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⑦ 다른 나라에서는 왜 공매도 규제를 세게 안할까
공매도에 대한 규제는 국가마다 차이는 있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이 거의 언제나 가장 강한 규제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폭락장에서도 그렇고 과거에도 그랬다. 2008년 금융위기 때는 한국을 포함, 27개국이 공매도 규제를 강화했다. 하지만 유럽 재정위기가 터진 2011년에는 공매도를 규제한 나라가 7개로 줄었다.

효과가 미미하고 시장을 왜곡시킨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나마 상장주식의 공매도를 전면 금지한 나라는 당시 한국과 재정위기 당사국인 그리스 두 나라 뿐이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번 코로나 사태로 공매도를 금지시킨 나라는 한국 영국 스페인 이탈이아 4개국이지만 6개월 전면 금지는 한국 뿐이다.
공매도가 그렇게 나쁜 것이라면 미국 등 금융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은 왜 이를 한국처럼 규제하지 않을까? 그들이 바보이거나 한국이 오버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⑧ 매수는 善, 매도는 惡 ?
아직도 증시에는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투자자들이 많은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컴퓨터 앞에 앉아 전 세계 거의 모든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시대다. 주식 뿐 아니라 채권, 펀드는 물론 외환, 원자재, 등 거의 상품을 마우스 클릭만으로 사고 팔 수 있는 시대다.
그것도 대부분 양방향 베팅이 가능하다. '오른다' 뿐 아니라 '내린다'에도 얼마든지 베팅할 수 있는 수단이 널려있다. 흔히 하락에 베팅하는 것은 공매도와 선물 옵션 정도라고 생각하지만 국제유가, 환율, 금, 콩, 구리 등 각종 원자재와 농산물 가격에 대해서도 양방향 베팅이 가능하고 실제 수 많은 세계인들이 자유롭게 양방향으로 베팅을 하고 있다.

이런 양방향의 다수 투자자가 몰리는 시장은 그만큼 유동성이 풍부해지고 시장도 투명해진다. 불특정 다수가 서로 다른 입장을 갖고 시장에 참여하기 때문에 특정 세력의 작전이 먹히기도 힘들다.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팔자' '사자'에 모두 열려 있는 시장이야 말로 가장 공정한 시장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주가가 오르는 것은 선이요, 내리는 것은 악이라는 단순 논리로 무장한 이들이 많다. 공매도 폐지 주장도 그런 맥락이다.

⑨공매도 규제는 포퓰리즘
이번 공매도 금지 조치도 마찬가지지만 주가가 폭락해 손실이 커지면 사람들은 뭔가 희생양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 대상이 종종 공매도가 된다. 물론 주식보유자들은 모든 매도세력들이 미울 것이다. 그렇다고 정부까지 덩달아 주가하락기만 되면 공매도 규제를 들고 나오는 것은또 다른 포퓰리즘에 다름 아니다.
이런 논리라면 주가 급락 시에는 공매도뿐 아니라 선물매도, 콜옵션매도, 풋옵션매수 등 주가하락에 베팅하는 모든 투자행위를 동시에 금지시키거나 제한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 매물을 포함한 보유주식 매각도 제한해야 한다. 사실 지수선물 매도나 프로그램 매물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공매도보다 훨씬 크다. 따라서 공매도에 앞서 이것부터 규제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게 도대체 말이 되나?
말이 안되는 것을 밀어붙이는 것은 대중 심리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⑩ 주가하락에 베팅을 금지하면 절대수익은 불가능해지고 시장도 침체돼
한 때 세계 1위를 자랑했던 한국의 파생상품 시장은 지금은 그 위상이 형편 없이 쪼그라들었다. 공매도와 마찬가지로 파생상품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았고 정부가 규제를 남발한 결과다. 정부는 파생상품 시장 진입 문턱을 크게 높여 놓았고 레버리지도 낮춰버렸다. 게다가 양도차익 과세까지 시행되면서 시장은 거의 공중분해되다시피했다.
다수의 투자자가 시장을 떠났고 그 영향은 주식시장에 그대로 미쳤다. 파생상품 시장은 주식시장과 불가피하게 연계돼 있다. 주식 투자로 인한 위험을 헤지하는 기능이 전처럼 원할하지 않으니 증시 역시 같이 침체되는 건 정해진 순서였다.

이번 코로나 위기 전에도 한국 증시가 오랜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인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파생시장 규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하락에 베팅하는 파생상품 시장이나 공매도 규제를 강화하면 시장 전체도 침체되지만 개인들이 투자할 수 있는 상품 역시 종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특히 주가가 오르든 내리든 일정한 수익을 낼 수 있는 이른바 '절대수익 펀드' 같은 것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헤지펀드가 됐든,어떤 형태의 펀드가 됐든 어떤 형태로든 쇼트(short) 기법이 들어가지 않은 펀드는 천수답처럼 주가 움직임에 수익이 휘둘릴 수밖에 없다.

개인투자자들의 가장 큰 적은 공매도라기 보다는 주가하락에 거의 무방비 상태가 된다는 점이다. 그런 개인들의 주가하락으로부터 손실을 최소화하려면, 역설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다양한 수단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