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원 포인트 개헌안'의 세 가지 문제점
며칠 전 국회에서 ‘국민 100만 명 이상이 동의하면’ 헌법개정안을 발의할 수 있게 하자는 원포인트 헌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이 조항은 1954년의 ‘사사오입 개헌’에서 도입됐다가 유신헌법에 의해 폐지된 조문과 내용이 거의 같다. 소수점 이하의 4는 버리고 5는 취하는 ‘반올림’을 말하는 사사오입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초기의 비극 때문에 역사적 용어가 됐다.

현행 헌법은 개헌안 발의권한을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에게 주고 있다. 이 점만으로도 이 개정안은 세 가지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국민 100만 명의 동의를 어떻게 확인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 명의를 도용당하지 않은 당사자의 의사가 맞는지, 명의 중복은 없었는지를 확인할 방도도 없다. 주민등록번호나 공인인증서를 통한 당사자 확인제도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만약 이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국민의 동의가 있었다면 이미 우리는 모든 선거에 전자투표제를 도입했을 것이다. 따라서 100만 명의 확인을 위해서는 전자투표보다 훨씬 간편하면서도 공정한 방안이 나와야 하고, 그렇지 않고 선거관리위원회가 이 절차를 투표하듯 관리한다면 매번 개헌안 발의 관리를 위해 시간, 금전, 인력의 비용이 얼마나 낭비될지 알 수 없다.

둘째, 국민 100만 명의 의사라는 것을 확인할 간단한 방법이 있다고 치자. 단순 비교로도 국회의원 선거권자 100만 명이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즉 국회의원 151명과 동등한 권한을 갖게 된다. 가장 최근 선거인 제18대 지방선거 당시 유권자 수가 약 4290만 명이었다. 국회에서는 과반수의 의사가 필요한데, 전체 유권자의 2% 정도로 개헌안 발의가 가능하다는 게 과연 타당한 비율일까? 만약 100만 명씩 찬성한 헌법개정안이 200개 정도 동시에(중복 찬성을 금지하지 않으니 이론적으로는 수천, 수만 개도 가능하다) 국회에 올라가면 국회의원들은 임기 내내 개헌안만 처리하다가 말라는 이야기인가?

가장 중요한 건 마지막 문제다. 이 개헌안은 우리나라 정치에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좀 더 도입하자는 시도 같아 보인다. 예전에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직접민주주의야말로 민주주의의 궁극적 지향점이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학생들은 간접민주주의에 대해 무의식적인 거부감을 갖고 성장한다. 정치이론에 대한 체계가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대학에 들어가 정치학 같은 것을 배우고 중우정치의 문제점 같은 이야기를 처음 들으면 논리적 모순을 정리하지 못하고 혼동 상태에 빠져 결국 종합적, 논리적인 사고체계 구성에 실패한다. 그런 과정에서 오로지 전체주의적 집단사고만을 거쳐 배출된 최악의 결과물이 지금의 ‘운동권 386’이다. 그들의 사례를 보더라도 간접민주주의야말로 민주주의 시스템의 모순을 최대한 배제할 수 있는 제도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생각을 굳히게 만든 것은 대만의 대표적 인문학자 양자오가 쓴 《미국 헌법을 읽다》라는 책이다. 이 책은 미국 제도를 본떠 대통령 중심제를 택하고 있지만, 겉모습만 따왔을 뿐 그 뼈대를 이루는 기본 사상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반드시 읽어봐야 한다. 미국 헌법이 왜 입법권 조항부터 시작하는지, 삼권분립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고, 행정권이란 어떤 성격인지 등 주옥같은 내용이 가득하다. 특히 “대통령제를 시행하려면 준법 사회가 필요하다”는 주제는 현재 우리 사회에 아주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헌법개정안은 출처도 알 수 없는 ‘민주적 정당성’이라는 운동권적 가치를 저항 없이 받아들인 우파 정치인들이, 자칭 시민단체들이 헌정질서에 개입할 여지를 줌으로써 중우정치를 심화하고자 하는 좌파의 함정에 빠진 사례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