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자 정부가 은행의 선물환 포지션 한도를 25% 늘려 원화가치 하락 방어에 나섰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금융시장에서 발을 빼고, 국내 기업들의 달러 확보 움직임에 원·달러 환율은 18일 5거래일 연속 상승하며 달러당 1245원70전까지 치솟았다. 약 10년 만에 최고치다.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이번 조치만으로 환율시장을 안정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 체결 등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달러 부족 막아라'…은행 단기 외화차입 한도 25% 늘린다
은행에 달러 공급 확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8일 위기관리대책회의를 열고 “은행에 대한 선물환 포지션 규제 한도를 19일부터 25% 상향 조정하겠다”며 “이번 조치가 외화자금 유입 확대를 유도함으로써 외환 스와프 시장 안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내 은행의 선물환 포지션 한도는 40%에서 50%로, 외국계 은행 지점의 한도는 200%에서 250%로 확대된다. 선물환 포지션 한도는 선물외화자산에서 선물외화부채를 뺀 선물환 포지션의 자기자본 대비 상한을 설정한 것이다. 2010년 10월 급격한 자본 유입과 단기 차입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정부는 선물환 포지션 한도 확대를 통해 은행의 외화자금 공급 여력이 확대되는 만큼 현재 선물환 포지션이 높은 은행들을 중심으로 외화자금 공급이 일부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김성욱 기재부 국제금융국장은 “전체 스와프 시장의 하루 거래 규모가 120억달러인데 이번 조치로 시차를 두고 외화자금이 50억∼100억달러가량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김 국장은 “최근 외환 수급 불균형이 일어난 가장 큰 원인은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외국인 주식 순매도 규모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라며 “외환보유액을 활용해 스와프 시장이나 금융 시장에 달러를 빌려주는 등 여러 가지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환율 변동폭 줄어들겠지만…”

지난달까지 달러 수급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기업과 개인들도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를 비롯한 외화를 매도할 정도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거주자 외화예금은 685억1000만달러로 전달에 비해 64억7000만달러 줄었다. 이 같은 감소폭은 지난해 3월(65억3000만달러) 후 최대 규모다. 이 가운데 상당액은 달러 예금이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안전자산인 달러의 가치가 상승하자 환차익을 거두기 위해 달러를 매도한 영향이 크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보유 주체별로 보면 지난달 말 개인의 외화예금은 156억7000만달러로 전달에 비해 16억6000만달러 줄었다. 기업 외화예금은 528억4000만달러로 48억1000만달러 감소했다.

그러나 이달 들어 코로나19가 미국과 유럽 등으로 급속히 확산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외국인 투자자는 이달 2~17일 유가증권시장에서 8조3816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역대 2~17일 기준으로 최대 규모다. 한국 주식 매각자금을 달러로 환전하려는 외국인의 수요가 넘치면서 외환시장이 출렁였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지자 국내 수출입 기업들의 달러 수요까지 가세하면서 환율이 급등한 것이다.

김효진 KB증권 연구원은 “선물환 포지션 규제완화로 국내 외환시장에 단기 달러자금 공급이 보다 원활해지고 환율 변동폭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평가했다. 그는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한 만큼 이번 조치 외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원화가치를 안정화한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 체결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훈/김익환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