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크 하버드대 교수 신간 '믹스처' 출간

'네안데르탈인처럼 생겼다'라는 말은 최악의 외모 비하로 받아들여지는 일이 많겠지만, 적어도 생물학적으로는 그렇게 생긴 사람이 있다고 해서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 몸에 네안데르탈인의 DNA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미국 하버드대 의학대학원 교수이며 고대 DNA 분석 전문가인 데이비드 라이크가 쓴 '믹스처'(동녘사이언스·원제 Who We Are and How We Got Here)는 인류의 오늘이 있기까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종 내에서뿐만 아니라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구인류와도 교류하고 교잡해 왔음을 설명한다.

인간 게놈 전체의 해독을 비롯한 유전학 분야의 눈부신 발전에 힘입어 저자와 같은 과학자들은 DNA가 남긴 인류의 발자취를 추적할 수 있게 됐고, 그 결과 우리가 알고 있던 많은 상식을 깨트리기에 이른다.

우리 몸 안에 네안데르탈인의 DNA가 있다고?
우리가 네안데르탈인의 DNA를 지니고 있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현대 인류의 DNA를 분석한 방대한 자료와 네안데르탈인의 DNA 자료를 비교 분석한 결과 현대의 비(非)아프리카인 게놈 중 약 1.5~2.1%가 네안데르탈인에게서 유래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저자가 주축이 된 연구팀이 4만5천년 전에 살았던 시베리아 현생인류 개체에서 추출한 고대 DNA를 방사성 탄소연대측정법으로 측정해 보니 네안데르탈인에게서 유래된 DNA가 현생 인류보다 7배나 더 많았다.

이를 통해 이 개체에 네안데르탈인의 DNA를 남기게 된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의 교잡은 5만4천년 전에서 4만9천 년 전 사이로 시대 범위를 확정할 수 있었다.

이는 현생 인류가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확산하기 시작한 5만 년 전부터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진 3만9천 년 전 사이에 중동과 유럽 지역에서 현생 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이 공존했다는 고고학적 증거들과도 맞아떨어진다.

우리 몸 안에 네안데르탈인의 DNA가 있다고?
'네안데르탈인'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된 독일 '네안더 계곡'이라는 지명에서 보듯 이들의 본거지는 유럽이었지만, 네안데르탈인의 DNA 비율은 동아시아인에서 가장 높고 유럽인에서 가장 낮다.

또 아프리카인에서는 네안데르탈인의 DNA가 발견되지 않는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저자는 우선 한때 많은 인류학자가 지지한 '다지역 기원설'을 부인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이 설은 아프리카와 유럽, 아시아 등 주요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인류가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프리카인을 제외한 현생 인류에만 네안데르탈인의 DNA가 남아 있다는 것은 약 5만년 전 아프리카를 벗어난 인류집단이 중동과 유럽에서 네안데르탈인과 교잡하면서 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로 퍼져나갔음을 보여준다.

이는 '다지역 기원설'과 대립한 '아프리카 기원설'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고대 DNA 분석 자료가 축적되면서 현생 인류와 교잡한 구인류가 네안데르탈인뿐만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시베리아 남부 알타이산맥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된 데니소바인 뼈에서 추출한 DNA를 분석한 결과 이들도 현생 인류와 교잡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과학자들을 혼란스럽게 한 것은 약 5만9천 년 전에서 4만4천년 전 사이에 일어난 데니소바인과 현생 인류의 교잡으로 남은 데니소바인의 DNA가 뉴기니인에서 3~6%의 가장 높은 비율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뉴기니는 데니소바인이 발견된 시베리아로부터 9천㎞나 떨어져 있고 두 지역 사이에는 높은 산맥과 바다 등 자연적 장벽이 무수히 많다.

저자는 시베리아에서 발견된 데니소바인이 더 넓은 지역에 분포한 인류 범주의 일부가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한다.

그중 한 가지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살면서 뉴기니인과 교잡한 고대 집단의 조상이 됐고 또 하나가 시베리아 데니소바인이 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와 같은 구인류와의 교잡으로 태어난 잡종은 생식능력을 관장하는 DNA의 돌연변이로 많은 자손을 남기지 못해 세대가 흐를수록 현생 인류에 남은 그들의 DNA는 희석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이 교잡은 인류에 뜻밖의 선물을 안기기도 했다.

저자는 티베트인들이 고산지대에 적응하는 데 기여한 DNA가 데니소바인에게서 물려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앞으로 고대 티베트인의 DNA를 분석하면 이 점이 좀 더 명확해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또 현대 유럽인과 동아시아인들은 피부와 머리카락의 필수성분인 케라틴의 활동에 관여하는 유전자 부위에 네안데르탈인에게서 유래한 DNA 비율이 평균적으로 높다는 것이 밝혀졌다.

피부와 머리카락은 체온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이는 이미 추위에 적응하고 있던 네안데르탈인의 형질을 현생 인류가 물려받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저자를 비롯한 유전학자들의 DNA 분석은 과거 생물의 진화를 설명할 때 흔히 제시된 나무 모양 '계통수'가 잘못됐다는 것도 알려준다.

나무 비유가 옳다면 오늘날 모든 생물 집단은 과거 어느 시점에 하나의 조상 집단을 가질 것이며 갈라진 가지가 다시 하나가 될 수 없듯 한번 갈라져 나온 집단은 다시 결합할 수 없어야 한다.

그러나 게놈 혁명으로 쏟아진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매우 다른 집단들 사이의 대규모 교잡이 반복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갈라졌다가 합쳐지며 아득한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모양을 표현하기에는 나무 대신 덩굴나무가 타고 올라가도록 만든 격자구조물이 더 적당한 비유일 것이라고 설명한다.

책은 이 밖에도 유럽과 인도에서 매우 다른 집단들이 각각 9천 년에 걸쳐 교잡하고 교류하며 현대 유럽인과 인도인을 형성하고 인도유럽어를 전파하게 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또 유럽인이 도착하기 전의 아메리카와 중국, 아프리카 등의 인류집단 형성 과정도 DNA 분석을 통해 보여준다.

저자는 이 모든 분석을 종합해 지난 세기에 등장한 정설, 즉 '인류 집단은 유전적으로 매우 가까워서 집단 사이에 실질적인 생물학적 차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은 더는 지지받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것과 대립하는 견해로서 오랫동안 지속해온 인종주의적 세계관은 유전학 데이터가 가르쳐주는 사실과 더더욱 충돌한다는 점도 지적한다.

인류 역사에서 집단의 교잡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로부터 저자가 끌어낸 결론은 "우리가 모두 서로 연결돼 있으며 미래에도 계속해서 서로 연결돼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는 강조한다.

"개개인의 조상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게놈 혁명은 우리에게 공통의 역사를 제공한다.

그 역사는 인종주의와 민족주의라는 악에 대한 대안을 제공하고 우리가 모두 인류의 유산을 물려받을 동등한 자격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
김명주 옮김. 432쪽. 2만2천원.
우리 몸 안에 네안데르탈인의 DNA가 있다고?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