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콤 글래드웰 '타인의 해석' 번역 출간

1995년 미국 텍사스의 패트릭 데일 워커라는 젊은 남자가 전 여자친구를 총으로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치고 체포됐다.

판사는 구속된 그를 보석으로 풀어줬고 보석금까지 100만달러에서 4만달러로 대폭 낮췄다.

그에게 전과기록이 없었다는 것도 유리하게 작용했지만, 판사가 보기에 그가 '차분하고 온순한 젊은이이며 후회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관대한 처분의 결정적 사유가 됐다.

그러나 보석으로 풀려난 지 4개월 만에 워커는 결국 전 여자친구를 총으로 살해하고 말았다.

'아웃라이어', '다윗과 골리앗', '블링크' 등 베스트셀러 저자 말콤 글래드웰이 쓴 '타인의 해석'(원제 Talking To Strangers: What We Should Know About the People We Don't Know·김영사)은 이처럼 명석한 두뇌와 많은 자료를 지닌 사람들이 타인을 잘못 판단하는 이유에 관한 분석서다.

저자는 이 문제를 규명하느라 3년여에 걸쳐 수많은 인터뷰를 하고 수백 권의 책을 읽었으며 심리학, 문화인류학 등의 연구 결과를 검토했다고 한다.

흉악범을 알아보지 못한 판사 이야기는 인간의 판단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미국 뉴욕의 형사 피의자 55만4천689명 가운데 판사가 보석을 허용한 사람은 40만명이었다.

한 연구팀이 인공지능에 공소 기록을 입력해 보석 대상자 40만명을 가려내게 했더니 이들이 재판 기간 중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판사가 가려낸 보석 대상자보다 35%나 낮았다.

판사들은 범죄 기록뿐만 아니라 보석 심문을 통해 피의자를 직접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는데도 잘못된 판단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오히려 '직접 대면'이 오판의 요인이 됐다고 분석한다.

사람들은 타인을 만날 때 그의 표정, 말투, 시선, 행동 등을 통해 진실성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사람의 겉모습이 진실을 반영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전제가 잘못됐다.

저자는 이를 '투명성 가정의 실패'라고 부른다.

거짓말을 할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능숙한 거짓말쟁이는 신뢰감을 주는 표정으로 상대방을 속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전야에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이 "전쟁을 할 생각이 없다"는 아돌프 히틀러 말에 속아 넘어간 것은 그를 여러 차례 만나 직접 이야기를 나눈 결과 믿을 만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체임벌린뿐 아니라 히틀러를 만난 많은 영국 정치인이 비슷한 생각을 했다.

히틀러의 전쟁 의지를 제대로 본 것은 그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던 윈스턴 처칠이었다.

타인을 잘못 판단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저자가 '진실 기본값'이라고 부르는 인간의 기본적 성향이다.

진위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타인을 판단할 때는 '거짓'보다는 '진실' 쪽에 기본값을 설정하기 때문에 의심해야 할 순간에 의심하지 못하고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넘어가고 만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요인이 작용한 오판 사례로 정보기관 내부의 이중간첩, 사건, 사상 최대 규모의 다단계 금융사기라고 불리는 버니 메이도프 사건, 미국 최대의 미성년자 성추행 스캔들 가운데 하나인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풋볼팀 코치 게리 샌더스키 사건 등을 검토한다.

이들의 비행을 감독하고 적발했어야 할 사람들은 명석했고 의심 가는 정황을 발견해 사건을 바로 잡을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진실 기본값'의 벽을 넘지 못하고 비행이 장기간 이어지는 것을 결과적으로 방치하고 말았다.

저자가 타인을 오판하는 요인으로 든 세 가지 가운데 마지막은 '결합성'의 문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자살 사례들이 제시된다.

우리는 자살을 결심한 사람이라면 어떤 방법을 쓰든 자살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자살 수단에 접근할 수 있느냐가 중대한 변수다.

영국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을 초래하는 도시가스 대신 일산화탄소가 거의 나오지 않는 천연가스로 가정 연료가 교체된 이후 일산화탄소 중독 자살이 크게 줄어들고 '자살 명소'였던 미국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에 자살 방지 시설이 설치된 후 이곳에서 발생하는 자살 역시 감소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타인을 판단하고 타인에게 다가서는 전략은 이 같은 세 가지 오류 요인들을 배격하는 것인가.

저자가 보기에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특히 '진실 기본값'이 인간의 본성이 된 데는 나름대로 진화론적 의미가 있다.

타인을 대할 때 최대한 부정적으로 보고 의심하는 것은 그에게 속아 피해를 보는 것 못지않게 개인과 사회에 해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낯선 이를 해독하는 우리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투자자들이 모사꾼이나 사기꾼을 발견하거나, 우리 보통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의 심중을 투시력으로 꿰뚫어 보는 완벽한 기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썼다.

결국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자제와 겸손, 그리고 낯선 이를 파악하는 단서를 찾아내는 관심과 주의이다.

유강은 옮김. 김영사. 472쪽. 1만8천500원.
우리가 사람을 잘못 판단하는 근본 이유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