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40만년 전 초기 인류는 뛰어난 '투창 사냥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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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
헤르만 파르칭거 지음
나유신 옮김 / 글항아리
1128쪽│5만4000원
헤르만 파르칭거 지음
나유신 옮김 / 글항아리
1128쪽│5만4000원
1997년 독일 북부 헬름슈테트 지역의 쇠닝겐 근처 빙하기 석탄 퇴적층에서 나무로 만든 창이 여럿 발견됐다. 가문비나무와 소나무로 만든 창은 짐승을 사냥하는 데 쓰였던 것으로 추정됐다. 쇠닝겐 유적에서는 야생마를 비롯한 2만여 점의 대형 포유류 뼈가 함께 발견됐다. 구석기 유적에서는 보기 드문 목재 유물이 온전한 모습으로 발견된 것은 물가의 침전층(펄)이 공기 침투를 막아서 부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길이 180~250㎝인 창들은 무게중심이 창날로부터 3분의 1 지점에 있어 현대의 투창 경기용 창과 매우 비슷했다. 원형에 가깝게 복원해 실험한 결과 창은 약 70m를 날아갔다. 뾰족하게 다듬은 창끝은 불에 달궈 단단하게 만들었다.
40만~30만 년 전 ‘쇠닝겐의 창’은 호모 에렉투스를 비롯한 초기 인류에 관한 그간의 지식을 수정하게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호모 에렉투스 같은 고인류는 인지 능력이 부족해 사냥꾼이라기보다는 썩은 고기만 먹고 산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쇠닝겐에서 나온 여러 개의 창은 사냥을 전문으로 하는 일군의 사냥꾼 집단이 있었다는 최초의 증거다. 대형 동물을 사냥하려면 협업이 필요했고, 그러자면 사전 계획과 의사소통이 전제돼야 했다. 한꺼번에 확보한 많은 양의 고기를 보관하려면 훈제·훈연 같은 불의 활용 기술이 필요했다. 이 모든 과정은 사회적 관계들을 형성했다. 무엇보다 불의 사용과 동물성 식량 섭취로 인류의 영양이 개선되면서 뇌 용적이 커졌고, 이는 더욱 창의적 발전으로 이어졌다.
독일 고고학자 헤르만 파르칭거가 쓴 《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에 나오는 내용이다. 스키타이 유적 발굴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파르칭거는 고고학자로는 처음으로 독일 최고 권위의 라이프니츠 상을 받은 선사시대 전문가다. 평생의 공력을 담아 전 세계 선사시대 통사(通史)로 쓴 이 책에서 그는 문자의 유무를 기준으로 설정한 ‘역사 이전’이라는 의미의 ‘선사(先史)시대’라는 개념에 이의를 제기한다.
“일반적으로 기원전 4000~3000년 무렵의 기호체계를 문자의 시초로 본다. 하지만 문자가 없었던, 그보다 훨씬 이전의 선사시대 문화도 신호, 상징그림을 이용한 의사소통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다만 그 내용이 오늘날 우리에게 ‘밝혀지지 않은 채’ 남아 있을 뿐이다.”
선사시대 문화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현재의 우리가 해독할 수 없다고 해서 원시시대 조상들의 삶과 시간에서 역사성의 지위를 부정하고 ‘선사’라고 폄하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것이다. 고고학 연구의 증거 자료에는 여전히 공백이 많고, 우연한 발견으로 그 공백을 메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쇠닝겐의 창만 해도 문자로 기록되지 않았을 뿐 당시의 삶과 문화를 얼마나 많이 전해주고 있는가. 모른다고 해서 없는 것으로 치부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선사시대 통사인 만큼 이 책은 문자 이전의 인류가 걸어온 700만 년의 역사를 되짚는다. 본문만 1000쪽을 넘는 방대한 분량에 고고학, 고고유전학, DNA를 통한 고대 인구사 연구 등 다양하고 폭넓은 자료 및 연구성과를 동원해 기존 학설과 가설, 논쟁을 검증, 비판, 재해석한다. 아프리카의 원시 호미니드, 최초로 석기를 제작한 호모 에렉투스부터 시작해 약 10만 년 전 처음 등장한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넘어 지중해안과 유럽, 아시아, 북미와 남미 등 세계로 뻗어간 과정을 들려준다.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 청동기로 이어지는 문명의 시대별, 지역별 등장과 전개 과정을 씨줄과 날줄로 교직하듯 엮어냈다.
저자에 따르면 인류 발전의 가장 큰 계기는 270만 년 전 최초의 석기 제작과 130만 년 전 시작된 불의 사용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채식주의자였고, 호모 하빌리스는 썩은 짐승 고기를 먹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하지만 200만~30만 년 전 출현한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에르가스테르가 석기를 만들면서 인류는 동물 사체를 먹던 데서 수렵생활로 도약했다. 신선한 고기를 먹게 된 인간은 신체가 크고 강해졌고, 특히 두뇌가 커졌다.
또한 40만~30만 년 전 보편화된 불의 사용은 원시인류에게 일어난 두 번째 혁명이었다. 불의 사용으로 인간은 추운 지방으로 진출하게 됐고, 사냥한 고기를 오래 보관할 수 있게 됐으며, 섭취한 음식을 소화하기도 편해졌다. 불을 피우는 자리가 사회생활의 중심점을 형성하면서 사회적 관계, 의례와 사후 세계에 대한 관념, 추상적 사고가 가능해졌다.
사냥의 효율을 대폭 끌어올린 투창 가속기, 개를 길들인 짐승의 가축화, 바늘의 발명도 선사시대 인간의 중요한 업적이다. 장례를 비롯한 각종 의식과 예술의 발전도 간과할 수 없다. 정착생활, 농경, 가축 사육, 토기 생산으로 대표되는 ‘신석기 종합세트’도 있다.
저자는 선사 인류가 기나긴 역사에서 이뤄낸 수많은 진보와 발전의 가장 큰 원동력은 주어진 자연환경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욕구와 창의적 능력이라면서 이들의 역할이 문자시대 인간보다 못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길이 180~250㎝인 창들은 무게중심이 창날로부터 3분의 1 지점에 있어 현대의 투창 경기용 창과 매우 비슷했다. 원형에 가깝게 복원해 실험한 결과 창은 약 70m를 날아갔다. 뾰족하게 다듬은 창끝은 불에 달궈 단단하게 만들었다.
40만~30만 년 전 ‘쇠닝겐의 창’은 호모 에렉투스를 비롯한 초기 인류에 관한 그간의 지식을 수정하게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호모 에렉투스 같은 고인류는 인지 능력이 부족해 사냥꾼이라기보다는 썩은 고기만 먹고 산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쇠닝겐에서 나온 여러 개의 창은 사냥을 전문으로 하는 일군의 사냥꾼 집단이 있었다는 최초의 증거다. 대형 동물을 사냥하려면 협업이 필요했고, 그러자면 사전 계획과 의사소통이 전제돼야 했다. 한꺼번에 확보한 많은 양의 고기를 보관하려면 훈제·훈연 같은 불의 활용 기술이 필요했다. 이 모든 과정은 사회적 관계들을 형성했다. 무엇보다 불의 사용과 동물성 식량 섭취로 인류의 영양이 개선되면서 뇌 용적이 커졌고, 이는 더욱 창의적 발전으로 이어졌다.
독일 고고학자 헤르만 파르칭거가 쓴 《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에 나오는 내용이다. 스키타이 유적 발굴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파르칭거는 고고학자로는 처음으로 독일 최고 권위의 라이프니츠 상을 받은 선사시대 전문가다. 평생의 공력을 담아 전 세계 선사시대 통사(通史)로 쓴 이 책에서 그는 문자의 유무를 기준으로 설정한 ‘역사 이전’이라는 의미의 ‘선사(先史)시대’라는 개념에 이의를 제기한다.
“일반적으로 기원전 4000~3000년 무렵의 기호체계를 문자의 시초로 본다. 하지만 문자가 없었던, 그보다 훨씬 이전의 선사시대 문화도 신호, 상징그림을 이용한 의사소통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다만 그 내용이 오늘날 우리에게 ‘밝혀지지 않은 채’ 남아 있을 뿐이다.”
선사시대 문화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현재의 우리가 해독할 수 없다고 해서 원시시대 조상들의 삶과 시간에서 역사성의 지위를 부정하고 ‘선사’라고 폄하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것이다. 고고학 연구의 증거 자료에는 여전히 공백이 많고, 우연한 발견으로 그 공백을 메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쇠닝겐의 창만 해도 문자로 기록되지 않았을 뿐 당시의 삶과 문화를 얼마나 많이 전해주고 있는가. 모른다고 해서 없는 것으로 치부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선사시대 통사인 만큼 이 책은 문자 이전의 인류가 걸어온 700만 년의 역사를 되짚는다. 본문만 1000쪽을 넘는 방대한 분량에 고고학, 고고유전학, DNA를 통한 고대 인구사 연구 등 다양하고 폭넓은 자료 및 연구성과를 동원해 기존 학설과 가설, 논쟁을 검증, 비판, 재해석한다. 아프리카의 원시 호미니드, 최초로 석기를 제작한 호모 에렉투스부터 시작해 약 10만 년 전 처음 등장한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넘어 지중해안과 유럽, 아시아, 북미와 남미 등 세계로 뻗어간 과정을 들려준다.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 청동기로 이어지는 문명의 시대별, 지역별 등장과 전개 과정을 씨줄과 날줄로 교직하듯 엮어냈다.
저자에 따르면 인류 발전의 가장 큰 계기는 270만 년 전 최초의 석기 제작과 130만 년 전 시작된 불의 사용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채식주의자였고, 호모 하빌리스는 썩은 짐승 고기를 먹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하지만 200만~30만 년 전 출현한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에르가스테르가 석기를 만들면서 인류는 동물 사체를 먹던 데서 수렵생활로 도약했다. 신선한 고기를 먹게 된 인간은 신체가 크고 강해졌고, 특히 두뇌가 커졌다.
또한 40만~30만 년 전 보편화된 불의 사용은 원시인류에게 일어난 두 번째 혁명이었다. 불의 사용으로 인간은 추운 지방으로 진출하게 됐고, 사냥한 고기를 오래 보관할 수 있게 됐으며, 섭취한 음식을 소화하기도 편해졌다. 불을 피우는 자리가 사회생활의 중심점을 형성하면서 사회적 관계, 의례와 사후 세계에 대한 관념, 추상적 사고가 가능해졌다.
사냥의 효율을 대폭 끌어올린 투창 가속기, 개를 길들인 짐승의 가축화, 바늘의 발명도 선사시대 인간의 중요한 업적이다. 장례를 비롯한 각종 의식과 예술의 발전도 간과할 수 없다. 정착생활, 농경, 가축 사육, 토기 생산으로 대표되는 ‘신석기 종합세트’도 있다.
저자는 선사 인류가 기나긴 역사에서 이뤄낸 수많은 진보와 발전의 가장 큰 원동력은 주어진 자연환경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욕구와 창의적 능력이라면서 이들의 역할이 문자시대 인간보다 못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