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대 수준까지 낮춘 지 3일 만에 대규모 국고채 매입 카드마저 꺼냈다. 기준금리 인하에도 국고채 금리가 치솟는 등 금융시장의 불안이 커지자 직접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한 것이다. 한은이 국고채 매입에 나서는 것은 3년4개월여 만이다.

한은은 19일 채권시장을 안정시키고 환매조건부채권(RP) 매각 대상 증권을 확충하기 위해 1조5000억원(액면 기준) 규모의 국고채 단순매입을 한다고 밝혔다. 대상 증권은 만기 3년, 5년, 10년짜리 국고채권 5종이다. 입찰은 20일 오후 1시30분부터 1시40분까지 이뤄진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16일 기준금리 인하 직후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고채 금리가 상승하면 곧바로 국채 매입을 한다든가 해서 시장 안정화 조치를 취해나갈 것”이라며 “국채 매입은 늘 한은이 갖고 있는 카드”라고 말했다. 한은 관계자는 “시장 안정화 목적에서 일회성으로 매입한 것이라 일정 기간에 걸쳐 대규모로 채권을 매입하는 외국의 양적완화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한은이 국고채 매입 카드를 꺼내든 것은 1999년 국고채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된 이후 이번이 여덟 번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시장 불안이 커지면서 금리가 급등하자 그해 11월 1조원 규모의 국고채를 사들였다. 2016년 11월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채권시장이 출렁이자 1조5000억원어치를 매입했다.

시장에선 한은의 국고채 매입 추진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윤여삼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이 치솟으면서 외환 건전성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있다”며 “국내 안전자산인 국채시장을 안정시키지 못하면 ‘외벽’을 지키더라도 안에서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고채 매입을 비롯해 한은이 가진 모든 카드를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한은은 이날 증권사 등을 대상으로 한 RP 매입도 시작했다. 앞서 한은은 이달 비은행권을 대상으로 RP 매입 테스트를 해 유동성 공급이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이뤄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한은은 공개시장운영 차원에서 시중은행을 상대로 정기적으로 RP 거래를 하고 있지만 비은행권까지 RP 거래 상대에 포함시킨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