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정주영이 꿈꾼 '새 봄'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천자 칼럼] 정주영이 꿈꾼 '새 봄'](https://img.hankyung.com/photo/202003/AA.22099394.1.jpg)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젊은 시절 모윤숙 씨의 집에서 시인 서정주 김광섭, 수필가 조경희 씨 등 많은 문인을 만났다. 실향민인 네 살 아래 구상 시인과는 특별히 친했다. 구상 시인으로부터 “천생 시심(詩心)을 가진 만년 문학청년”이라는 평도 들었다.
문학적 감수성과 글 솜씨도 뛰어났다. 그의 산문 ‘새 봄을 기다리며’는 1981년 2월 25일 서울신문에 실렸다. ‘창밖으로 내리는 부드러운 함박눈은 오는 봄을 시샘하는 것인가?’로 시작하는 이 글에서 그는 ‘눈을 밟으며 뛰어가는 운동화 바닥’과 ‘경복궁 돌담장 옆 새벽 공기’에서 봄을 느끼다가도 ‘사무실에 들어서면 봄은 간곳없이 사라진다’고 썼다.
날마다 실적에 쫓기며 ‘남이 잘 때 깨고 남이 쉴 때 뛰어야 하는’ 기업인들이 ‘하늘의 별을 딸 듯한 기세로 달려가지만 정치가나 공직자 또는 성직자들의 비판 앞에서는 자라목같이 움츠러들기를 잘한다’며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기업인들이 봄을 기다리는 건 하늘에 별을 붙이고 돌아오는 여인을 기다리는 바나 다름없이 공소(空疎)한 경우가 많다’고도 했다.
권오갑 현대중공업 회장이 그제 이 구절을 인용하며 임직원들에게 “코로나 위기를 정주영 정신으로 극복하자”고 강조했다. 내일은 정 회장의 19번째 기일(忌日)이다. 그가 살아 있다면 올해 봄은 과연 어떻게 느낄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