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허가 설계와 다르게 시설 건설·운영…30년 동안 아무도 몰라
시설관리·운영·모니터링 단계마다 부실…안전불감증 심각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 내 한국원자력연구원(원자력연)이 원내 시설에서 30년 동안 액체 방사성 폐기물을 방출해왔다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조사 결과는 인재(人災)를 넘어 원자력연 운영의 '총체적 부실'을 드러낸 것이어서 심각성을 더한다.

시설 관리부터 운영, 모니터링 시스템까지 장기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고, 이런 안전불감증이 연구원의 다른 부분에도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닌지 우려하게 만든다.

원자력연, 30년간 방폐물 '모르고' 방출…인재넘어 '총체적부실'
이번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원자력연이 1990년 8월부터 30년 동안 설계도와 다르게 자연증발시설을 설치해 운영해온 것이다.

자연증발시설은 극저준위(리터당 185베크렐 이하) 방사성 액체 폐기물을 지하저장조에 모은 뒤 이를 끌어올려 2층에 설치된 증발천으로 흘려보내는 시설이다.

방사성 액체 폐기물의 수분은 태양광에 의해 자연 증발하고, 남은 방폐물은 다시 지하저장조로 보내진다.

그러나 원안위가 현장 조사를 벌인 결과 지하저장소와 구분된 공간에 인허가 당시 설계도와는 다르게 외부로 연결된 바닥배수탱크(600ℓ)가 설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다 보니 시설 설치승인서에는 설비가 외부로 액체 방사성 물질을 방출하지 않도록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액체 방사성 폐기물이 밖으로 흘러나가게 돼 있었던 셈이다.

실제로 지난해 9월 26일 필터 교체 후 공급 밸브가 과도하게 열려 있는 상태에서 자연증발시설을 가동, 2층 집수로에서 오염수가 넘쳤고 170ℓ가 외부로 유출됐다.

같은 날 필터교체 과정에서는 방사성 물질이 필터뱅크 하단 배수관을 통해 지하 바닥배수탱크로 유입됐고 340ℓ가 외부로 유출됐다.

여기에 1990년 이후 매년 동절기를 위해 운전을 종료하며 액체 방폐물을 지하저장조로 회수하는 과정에서 필터뱅크 하단 배수구를 통해 총 470∼480ℓ의 방사성 물질이 유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원안위는 이런 방식으로 그동안 방사성 물질 980ℓ∼990ℓ라 유출된 것으로 추정했다.

결과적으로 이런 방사성 물질 유출이 30년 동안 반복됐다.

이번 사고는 극저준위 방사성 액체 폐기물 처리시설에서 발생한 것이어서 실제 큰 피해는 없었던 것으로 밝혔졌다.

하지만 원자력연 내에 있는 사용후핵연료나 고준위 방사성 물질 관련 시설에서 비슷한 일이 발생할 경우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특히 운전자들은 지하저장조 외에 바닥배수탱크가 별도로 설치됐다는 사실을 모른 채 시설을 운영할 정도로 업무 처리에 심각한 허점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역시 2년마다 정기검사를 했지만 지하 바닥배수탱크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했고, 결국 지난 30년 동안 방사성 물질 유출을 아무도 인지하지 못했다.

원자력연, 30년간 방폐물 '모르고' 방출…인재넘어 '총체적부실'
원안위는 보도자료에서 이번 사고의 원인에 대해 '운영 부실'이라고 적시했다.

'인재'라는 것을 명확히 한 것이다.

원안위는 시설에 대한 정보 관리에 문제가 있었고, 비정상 상황에서 대응 절차를 누락해 운영이 미숙했으며, 시설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지원 시스템이 미비했다고 지적했다.

또 운영자들이 시설 자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자연증발시설 통제실에서 운전기록 등을 수기로 기록해 기록관리의 신뢰성이 떨어졌다고도 밝혔다.

원안위는 또 원자력 사업자로서 안전문화 의식이 결여돼 있다며 원자력연의 '안전불감증'을 지적했다.

특히 원자력연이 안전문화 전반에 대한 점검을 하지 않았고, 안전관리 규정이나 운전절차 등이 조직 내에서 체계적으로 관리·공유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현행 원자력안전 법령상 사용후핵연료처리 시설 지정기관과 시설 검사기관이 이원화돼 시설 관리에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며 제도적인 문제점도 지적했다.

영광 지역에 있는 한빛지역사무소장이 대전에 있는 원자력연 시설까지 관할하고, 원자력안전기술원 내에도 원자력연에 대한 전담팀이 없어 현장 규제 역량이 부족하다고 원안위는 밝혔다.

원자력연, 30년간 방폐물 '모르고' 방출…인재넘어 '총체적부실'
원안위는 원자력연의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현행 안전관리본부를 원자력·방사선 안전을 총괄 관리·감독하는 조직으로 강화하고, 인허가 문서상 도면과 현재의 시설상태 등에 대해 전면조사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자연증발시설을 방사성물질 무배출 시설로 개·보수하고, 방사성폐기물 처리시설 등의 관리지침을 수립해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한편 원자력연 내의 모든 원자력이용시설 주변에 대한 통합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안위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원자력연의 위반 사항을 통보하고, 이달 중에 행정처분 등 조치 결과에 대한 회신을 요청했으며, 하반기부터는 원자력연의 이행계획에 대해 반기별 점검을 실시할 예정이다.

원안위는 이번 위반사항은 원자력안전법에 따라 업무정지 또는 과징금 처분 등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