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상민 씨(32)는 틈틈이 스마트폰의 ‘토스’ 앱에서 자신의 신용등급을 확인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취직할 때 김씨의 신용은 4등급이었다. 연체 없이 대출을 잘 갚고 신용카드도 꾸준히 쓴 결과 지난달 1등급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신용등급에 ‘자부심’을 느끼기엔 찜찜한 구석이 있다. 개인 신용등급의 ‘인플레 현상’이 심해지면서 김씨처럼 1등급을 받는 사람이 해마다 100만 명꼴로 늘고 있어서다.
한국인 절반이 ‘高신용’?

26일 NICE평가정보에 따르면 개인 신용평가에서 1등급을 받은 사람은 지난해 말 기준 1312만5850명으로 집계됐다. 2016년 말(1027만2877명)과 비교하면 285만2973명 늘었다. 등급을 받은 전체 인원(4651만 명)의 28.2%가 1등급이다. 고신용자로 분류되는 1~3등급은 2488만5901명으로,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 고신용자 비중은 2016년 말 48.0%에서 2019년 말 53.5%로 계속 높아지는 추세다.

신용평가(CB)업계 관계자의 분석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국민이 신용관리를 잘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금융거래에서 신용등급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고, 핀테크 기업들이 내놓은 무료 신용관리 서비스가 대중화한 점도 크게 기여했다는 설명이다. 토스, 뱅크샐러드, 페이코, 카카오뱅크 등은 신용등급을 아무 때나 무료로 조회하는 기능을 ‘미끼상품’ 삼아 가입자를 크게 늘렸다. 몇 년 전까진 CB사 홈페이지에서 연 3회만 공짜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핀테크 업체들은 신용점수 향상에 도움이 되는 4대 보험, 세금, 통신비 등의 납부내역을 CB사에 대신 제출해주는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다.

고신용자가 늘어나니 저신용자는 상대적으로 줄고 있다. 은행 대출이 사실상 불가능한 7~10등급 비중은 같은 기간 9.8%에서 7.5%로 감소했다. CB업계 관계자는 “등급에 신경 쓰니 연체가 줄고, 연체가 줄어드니 등급이 다시 오르는 선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 탓에 ‘10등급’도 늘어

전문가들은 그러나 ‘신용등급 인플레’가 서민의 경제 여건이 좋아졌다는 뜻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어떤 신용거래도 불가능한 10등급은 2016년 말 36만5875명에서 2019년 말 43만7512명으로 오히려 늘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10등급으로 주저앉는 사람은 사업 실패를 겪은 자영업자 등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신용등급 제도는 올해 말 폐기를 앞둔 ‘시한부 신세’다. 금융위원회는 내년 1월 1일부터 모든 금융권의 개인 신용평가를 등급제에서 점수제로 전면 전환하기로 했다. 등급제의 치명적 단점으로 꼽혀온 ‘문턱 효과’를 없애기 위해서다.

기존 등급제는 개인별 신용점수(1~1000점)를 매긴 뒤 1~10등급으로 나누는 방식이다. 대다수 금융회사는 CB사가 정한 등급을 그대로 넘겨받아 대출 심사에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기계적으로 구간별 등급을 매기다 보니 소비자들이 불이익을 본다는 지적이 많았다. 예컨대 신용점수가 664점인 사람은 7등급(600~664점·NICE 기준)으로 분류돼 1·2금융권 대출이 막힌다. 실제 신용도는 665점(6등급)과 큰 차이가 없는데도 탈락하는 셈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7등급의 상위에 몰려 있는 약 240만 명이 제도권 금융회사를 이용할 수 있게 되고 연 1%포인트 안팎의 금리 인하 효과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