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들어온 대한민국 선거…예술로 체험하는 '참여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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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민미술관·중앙선관위 '새일꾼 1948-2020'展
제헌 선거부터 4월 총선까지
선관위 기록보관소에 소장된
사료 400여 점 아카이브 전시
제헌 선거부터 4월 총선까지
선관위 기록보관소에 소장된
사료 400여 점 아카이브 전시
무대 위에 24개의 의자가 원형으로 놓여 있다. 디자인과 모양, 재질이 제각각이다. 의자 위에 하나씩 올려진 헤드셋을 쓰면 들리는 것은 미술관 밖 광장의 스피치룸에서 수집된 다양한 시민의 목소리. 관객들은 무작위로 전달되는 익명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소통의 의미를 되새긴다. 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에서 24일 개막하는 기획전 ‘새일꾼 1948-2020: 여러분의 대표를 뽑아 국회로 보내시오’에서 선보이는 설치미술가 천경우의 ‘리스너스 체어(Listener’s Chair)’다. 작가는 민주적 소통공간의 대명사가 된 광화문광장과 전시실 내부를 연결해 오늘날 민주적 소통방식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새일꾼 1948-2020’은 한 달도 남지 않은 4·15 총선을 앞두고 일민미술관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공동 기획·주최한 아카이브형 전시다. 전시를 구성하는 두 축은 아카이브 자료와 동시대 작가들이 만든 예술작품이다. 중앙선관위가 소장한 400여 점의 역대 선거 관련 사료와 신문기사 등 아카이브 자료를 개인과 그룹 등 21개 팀 작가가 해석·재구성해 설치·퍼포먼스·영상·게임·음악·문학 등 다양한 장르로 보여준다. ‘아카이브형 사회극’을 표방한 관객참여형 전시다.
선거에서 후보들은 표를 얻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지만 구호들은 대체로 공허하다. 1층 전시실 벽을 장식하고 있는 안규철의 ‘69개의 약속’은 역대 대통령선거 벽보에서 후보자들의 시선, 표정, 제스처를 지우고 선거 구호만 남겨놓은 모노크롬 회화다. 회색과 파스텔 톤의 색조는 벽보 속의 다양한 색을 하나의 평균값으로 도출해 얻은 것. 후보자 간 변별력은 거의 사라지고 미세한 색조 차이만 남았다. 유일하게 식별이 가능한 것은 희미하게 남아 있는 선거 구호인데, 그마저도 이념과 정파에 관계없이 비슷하다. 이미지의 현혹과 환영을 걷어낸 색면이 과장과 왜곡이 판치는 선거 구호의 민낯을 보여준다.
전시는 층별로 주제를 달리 하며 선거에 깃든 인간의 욕망과 차별, 미래의 희망을 담아낸다. 2층에선 선거유세장을, 3층에선 민주주의를 왜곡해온 부정선거를 모티브로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낸다. ‘못살겠다 갈아보자’와 ‘가러봤자(갈아봤자) 더 못 산다’는 구호가 맞섰던 1956년 정·부통령 선거, 경제개발과 민주화 구도로 대립했던 1960~1980년대 선거의 벽보들, 주로 학교 운동장에서 이뤄졌던 합동연설회 풍경, 장기 집권을 위해 저질렀던 부정선거, ‘체육관 선거’의 부끄러운 역사는 기성세대에겐 지난 일을 떠올리게 하고, 젊은 층에겐 현대사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다.
이런 과거 역사를 바탕으로 작가들은 기발한 상상과 해석으로 미래를 향한 새로운 통찰을 내보인다. 놀공의 ‘반드시 해내겠습니다’는 지난 열아홉 번의 대선을 후보자 이름과 정당을 지우고 공약만으로 다시 치르게 하는 관객참여형 게임. 이념과 정파적 이해를 벗어나 유권자의 삶에 집중하는 후보자 및 공약 중심 선거문화를 제시한다.
네컷만화 작가 ‘ㅇㅇㅇ’이 투표를 독려하는 ‘투표의 요정’ 연작, 트랜스젠더·미혼모·동성애자·난민·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 금배지를 다는 순간을 상상한 최하늘의 ‘한국몽’, 동물도 선거에 참여하는 미래를 설치·영상·퍼포먼스로 상상한 이동시의 ‘동물당 매니페스토’, 유신시대 ‘체육관 선거’가 이뤄졌던 서울 장충체육관과 ‘막걸리 선거’가 펼쳐졌던 유세장을 재현해낸 정윤선의 ‘광화문체육관-부정의 추억’도 눈길을 끈다.
3층 전시실에 마련된 ‘이상국가: 유토피아’는 작가그룹 일상의실천이 제작한 관객참여형 설치작품이다. 작가팀은 역대 선거 벽보와 공약에 들어 있던 단어와 문구 400여 개를 수집해 벽면을 장식했다. 관객들은 여기서 고른 단어와 문구를 자신의 뜻대로 배열해 그 앞에 놓인 프레스기로 벽보처럼 인쇄할 수 있다. “아무리 멋있는 단어를 골라 조합해도 우스꽝스러운 문장이 된다”는 게 조주현 학예실장의 설명이다. “과거의 단어로 미래를 이야기하는 과정은 관람객에 의해 매 순간 불완전한 선언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전시와 연계된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매주 새로운 주제로 관객 투표를 진행하는 ‘위클리 보트’ 및 이와 연계한 ‘입법극장’, 정치적 주체로 거듭난 동물들이 궐기하는 모습을 퍼포먼스로 보여주는 ‘동물당 창당대회’ 등이 흥미를 돋운다. 관람료는 없으며 전시는 6월 21일까지.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새일꾼 1948-2020’은 한 달도 남지 않은 4·15 총선을 앞두고 일민미술관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공동 기획·주최한 아카이브형 전시다. 전시를 구성하는 두 축은 아카이브 자료와 동시대 작가들이 만든 예술작품이다. 중앙선관위가 소장한 400여 점의 역대 선거 관련 사료와 신문기사 등 아카이브 자료를 개인과 그룹 등 21개 팀 작가가 해석·재구성해 설치·퍼포먼스·영상·게임·음악·문학 등 다양한 장르로 보여준다. ‘아카이브형 사회극’을 표방한 관객참여형 전시다.
선거에서 후보들은 표를 얻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지만 구호들은 대체로 공허하다. 1층 전시실 벽을 장식하고 있는 안규철의 ‘69개의 약속’은 역대 대통령선거 벽보에서 후보자들의 시선, 표정, 제스처를 지우고 선거 구호만 남겨놓은 모노크롬 회화다. 회색과 파스텔 톤의 색조는 벽보 속의 다양한 색을 하나의 평균값으로 도출해 얻은 것. 후보자 간 변별력은 거의 사라지고 미세한 색조 차이만 남았다. 유일하게 식별이 가능한 것은 희미하게 남아 있는 선거 구호인데, 그마저도 이념과 정파에 관계없이 비슷하다. 이미지의 현혹과 환영을 걷어낸 색면이 과장과 왜곡이 판치는 선거 구호의 민낯을 보여준다.
전시는 층별로 주제를 달리 하며 선거에 깃든 인간의 욕망과 차별, 미래의 희망을 담아낸다. 2층에선 선거유세장을, 3층에선 민주주의를 왜곡해온 부정선거를 모티브로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낸다. ‘못살겠다 갈아보자’와 ‘가러봤자(갈아봤자) 더 못 산다’는 구호가 맞섰던 1956년 정·부통령 선거, 경제개발과 민주화 구도로 대립했던 1960~1980년대 선거의 벽보들, 주로 학교 운동장에서 이뤄졌던 합동연설회 풍경, 장기 집권을 위해 저질렀던 부정선거, ‘체육관 선거’의 부끄러운 역사는 기성세대에겐 지난 일을 떠올리게 하고, 젊은 층에겐 현대사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다.
이런 과거 역사를 바탕으로 작가들은 기발한 상상과 해석으로 미래를 향한 새로운 통찰을 내보인다. 놀공의 ‘반드시 해내겠습니다’는 지난 열아홉 번의 대선을 후보자 이름과 정당을 지우고 공약만으로 다시 치르게 하는 관객참여형 게임. 이념과 정파적 이해를 벗어나 유권자의 삶에 집중하는 후보자 및 공약 중심 선거문화를 제시한다.
네컷만화 작가 ‘ㅇㅇㅇ’이 투표를 독려하는 ‘투표의 요정’ 연작, 트랜스젠더·미혼모·동성애자·난민·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 금배지를 다는 순간을 상상한 최하늘의 ‘한국몽’, 동물도 선거에 참여하는 미래를 설치·영상·퍼포먼스로 상상한 이동시의 ‘동물당 매니페스토’, 유신시대 ‘체육관 선거’가 이뤄졌던 서울 장충체육관과 ‘막걸리 선거’가 펼쳐졌던 유세장을 재현해낸 정윤선의 ‘광화문체육관-부정의 추억’도 눈길을 끈다.
3층 전시실에 마련된 ‘이상국가: 유토피아’는 작가그룹 일상의실천이 제작한 관객참여형 설치작품이다. 작가팀은 역대 선거 벽보와 공약에 들어 있던 단어와 문구 400여 개를 수집해 벽면을 장식했다. 관객들은 여기서 고른 단어와 문구를 자신의 뜻대로 배열해 그 앞에 놓인 프레스기로 벽보처럼 인쇄할 수 있다. “아무리 멋있는 단어를 골라 조합해도 우스꽝스러운 문장이 된다”는 게 조주현 학예실장의 설명이다. “과거의 단어로 미래를 이야기하는 과정은 관람객에 의해 매 순간 불완전한 선언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전시와 연계된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매주 새로운 주제로 관객 투표를 진행하는 ‘위클리 보트’ 및 이와 연계한 ‘입법극장’, 정치적 주체로 거듭난 동물들이 궐기하는 모습을 퍼포먼스로 보여주는 ‘동물당 창당대회’ 등이 흥미를 돋운다. 관람료는 없으며 전시는 6월 21일까지.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