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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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상속제도의 근간은 민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상속분’과 ‘유류분’이다. 민법 1009조 에서는 피상속인 사망시 유가족들(상속인)이 받을 수 있는 상속재산의 비율인 상속분을 ‘배우자 1.5, 자녀 각 1’로 정하고 있다. 피상속인이 ‘모든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더라도 피상속인의 자녀와 배우자는 해당 법정상속분의 2분의1을 무조건 유류분으로 받을 수 있다.

사법부가 최근 유언대용신탁 상품에 맡긴 재산은 유류분 반환 대상이 아니라는 첫 판례를 내놓음으로써 1979년 첫 도입된 유류분 제도가 40여년만에 사실상 무력화 됐다. 향후 국내 상속 관행에 적잖은 변화가 일 것으로 예상된다.

◆사망 1년 전에 가입했다면 유류분 제외

유언대용신탁 상품과 관련한 소송은 2017년 11월 박모씨의 별세후 직계가족간의 유산 다툼에서 비롯됐다. 박씨는 2014년 둘째 딸에게 재산을 물려주기위해 하나은행의 ‘하나 리빙 트러스트 신탁 재산’에 가입했다. 신탁 대상은 현금 3억원과 수도권 부동산 3건이었다. 박 씨의 사망으로 둘째 딸이 신탁재산을 상속하게 되자 첫째 며느리 윤모씨(윤씨의 남편은 사망)는 자녀 2명과 함께 신탁재산에 대한 유류분 11억여원을 달라며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윤 모씨의 유류분 반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언대용 신탁상품은 유류분 대상 재산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민법(1113·1114조)과 대법원 판례를 종합하면 유류분은 상속이 시작될 시점에 고인이 소유하고 있던 재산(적극재산)과 생전에 상속인 혹은 제 3자에게 증여가 완료된 재산(증여재산)을 기반으로 계산한다. 생전에 상속인에게 증여한 재산은 시기와 상관없이 유류분 대상이 되지만 은행처럼 제 3자에게 증여한 재산은 상속개시 전 1년간 이뤄진 것만 포함된다. 이때 제 3자가 해당 재산을 받음으로써 특정 상속인에게 손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이 역시 시기와 상관없이 유류분 대상에 포함된다.

재판부는 유언대용신탁이 이뤄지면 재산의 소유권은 하나은행으로 넘어가므로 고인 소유의 재산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나은행이 신탁을 받았다 하더라도 결국 재산의 주인은 시어머니가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대법원은 신탁법 상 신탁에 대해 수탁자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판례를 꾸준히 유지해왔다.

이 사건 재산은 유류분 반환 대상인 증여재산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피고를 대리해 승소를 이끈 김상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는 “신탁상품을 통해 하나은행으로 무상이전된 증여 행위(2014년)는 상속개시 시점보다 1년 이상 앞서 유류분이 될 수 없다”며 “원고는 시어머니와 하나은행이 짜고 며느리에게 손해를 끼치기 위해 은행에 재산을 넘겼다는 점도 증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재산을 자식에게 안물려줄 수도

유언의 효력을 인정받는 유언대용신탁 상품이 유류분의 대상인지는 2012년 상품 출시 당시부터 논란이 됐다. 유언대용신탁 재산은 신탁상품 특성상 적극재산과 증여재산 어느 경우에도 해당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조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유언대용신탁이 유류분 대상에서 빠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해왔다.

이번 판결의 법리가 대법원에까지 가서 확정되면 상속 관행에 큰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누구나 유언대용신탁에 가입한지 1년이 지나면 자신의 뜻대로 유산을 처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속재산을 특정인에게 몰아주거나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을 수도 있다. 전액 사회단체에 기부를 할 수도 있다.

1심 기준 유류분 반환소송은 2015년 907건에서 2019년 1511건으로 증가하며 4년새 66% 가량 늘어났다. 김 변호사는 “앞으로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하는 자산가들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며 “유류분 제도의 위헌여부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관련 소송도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