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논설실] 칠순 의사·수녀·노점상·퇴직 간호사…'코로나 의병대' 감동 사연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저는 여기 바로 앞에서 일하는 지체 3급 장애인입니다. 회사에서 받은 마스크를 조금 나누려고 합니다. 부자들만 하는 게 기부라고 생각했는데 뉴스를 보니 저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용기를 내서 줍니다. 너무 작아서 죄송합니다.’
지난 13일 부산 신호파출소 앞에 마스크 11장과 편지를 두고 사라진 장애인의 사연은 우리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다음날 대구 시내 파출소 4곳에는 경기 김포에서 온 20대 남성이 마스크 1000장과 보호복 44벌, 보호경 178개 등을 말없이 전달하고 사라졌다.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는 가운데 위기를 함께 극복하려는 ‘코로나 의병대’의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은퇴를 앞둔 노령의 의사부터 퇴직 간호사, 노점상, 수녀, 얼굴 없는 기부천사 등 면면도 다양하다.
◆봉사 나선 의료진 4500명 넘어
대구에서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때 전국의 의사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대구로 달려갔다. 병원 문을 닫고 자원봉사에 나선 의사들도 많았다. 경북 경산에서 개인병원을 운영 중인 66세 의사는 “나 같은 늙다리 내과의도 쓰일 데가 있다”면서 “도울 수 있는 힘만 남아 있으면 누구든지 다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70대 이상의 전·현직 의사들도 힘을 보탰다. 휴업을 마다하지 않은 동네 의사를 비롯해 공중보건의·군의관 등 의사 320여 명, 임상병리사·방사선사 630여 명 등 의료진만 1000여 명에 이른다.
퇴직했던 간호사들도 다시 가운을 입었다. 전국의 확진자 치료를 위해 자원한 간호사 3500여 명의 분투도 눈물겹다. 이들의 임무는 투약, 주사 등 기본간호에 그치지 않는다. 의료인만 출입할 수 있는 음압 병동에서 환자들의 화장실 청소까지 도맡고 있다. 이들은 병원 귀퉁이에서 쪽잠을 자며 삼각김밥으로 견디고 있다.
땀에 젖은 방호복과 고글 자국이 선명한 이마, 방호복 갈아입을 때의 상처에 덧댄 얼굴 붕대, 이들에게 기꺼이 무료 도시락을 싸 나른 시장 상인, 병원으로 달려와 뭔가 돕겠다고 나선 일반 자원봉사자들….
병원에는 500인분의 간식, 귤 4상자, 컵라면 8상자 등이 속속 도착했다. 2000만원과 5000만원을 놓고 간 개인도 있다. 충남 서산의 80대 남성은 지폐와 동전 등 98만여원을 넣은 비닐봉지를 시청에 맡기며 “대구에 전해달라”고 말했다. 충북 연수동행정복지센터에는 70대 할머니가 찾아와 현금 200만원이 든 봉투를 센터에 놓고 갔다.
◆‘얼굴 없는 기부천사’ “더 못 드려 죄송”
경남 창원의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현금 600만원을 갖다놓은 ‘얼굴 없는 기부천사’는 손편지에 “미안한 액수라 죄송합니다.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분들이 하루빨리 일상으로 복귀하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썼다. 경남 창녕에서는 60대 여성이 신문지로 포장한 현금 1000만원을 내놓았다. 더 어려운 이들에게 주라며 힘겹게 모은 현금 100만원과 마스크 39장을 내놓은 울산 노점 할머니의 배려도 눈물겹다. 파출소에 저금통 들고 찾아온 꼬마 기부천사들의 사연 또한 훈훈하다.
강원도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대구지역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강원나물밥 2400인분을 지원했다. 사과즙 100박스와 더덕진액, 청국장, 황기고추장도 함께 전달했다.
◆할머니·수녀까지 ‘마스크 의병단’
전국의 할머니·할아버지들은 ‘마스크 의병대’를 자처하고 나섰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산하 전국 24개 노인 사업단에 소속된 400여 명이 쉴 새 없이 마스크를 만들고 있다. 경기 고양 일산서구의 고양시니어클럽에선 10명의 할머니가 하루 400여 매의 마스크를 생산한다. 서울 노원구 주민들로 구성된 ‘면마스크 의병단’은 하루 1200개의 면마스크를 만드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영등포구 ‘여성의병대’도 마스크 5000장을 기부하기로 했다.
수녀들까지 동참했다.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 수녀들은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자 마스크 5000개를 손으로 만들기로 하고 밤낮없이 재봉틀을 돌리고 있다.
이들의 온정과 보살핌에 힘입어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경북대병원에서 퇴원한 한 시민은 감사 편지를 써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상황실에서 친절하게 안내해 주시는 분들, 식사와 간식과 물품을 챙겨주시는 분들, 폐기물 정리해 주시는 분들, 아픈 데는 없는지 자상하게 손 내미는 의료진과 상담사 선생님들, 엑스레이 검사해 주신 분들, 한 분 한 분의 소중한 손길 덕에 이겨낼 수 있었다. 여기 일하는 모든 분들은 이 시대에 진정 아름다운 분들’이라며 도와준 사람들에게 거듭 사례했다.
◆메르스·신종플루 때도 의병 분투
이런 모습을 보면서 시민들은 “한국이 모범국으로 칭송받는다면 그건 대부분 위험을 무릅쓰고 고통을 함께한 시민들의 몫”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사회 현상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임진왜란 때와 일제 강점기, 6·25 전쟁, 외환위기에 맞설 때마다 의병이 나타났고 메르스, 신종플루 때 역시 민간이 의병처럼 나서서 전염병 위기를 극복했다"며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자화자찬하는 정치인도 더러 있겠지만, 진정한 승리의 주역은 평범한 국민이라는 점을 우리는 기억할 것"이라고 말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지난 13일 부산 신호파출소 앞에 마스크 11장과 편지를 두고 사라진 장애인의 사연은 우리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다음날 대구 시내 파출소 4곳에는 경기 김포에서 온 20대 남성이 마스크 1000장과 보호복 44벌, 보호경 178개 등을 말없이 전달하고 사라졌다.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는 가운데 위기를 함께 극복하려는 ‘코로나 의병대’의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은퇴를 앞둔 노령의 의사부터 퇴직 간호사, 노점상, 수녀, 얼굴 없는 기부천사 등 면면도 다양하다.
◆봉사 나선 의료진 4500명 넘어
대구에서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때 전국의 의사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대구로 달려갔다. 병원 문을 닫고 자원봉사에 나선 의사들도 많았다. 경북 경산에서 개인병원을 운영 중인 66세 의사는 “나 같은 늙다리 내과의도 쓰일 데가 있다”면서 “도울 수 있는 힘만 남아 있으면 누구든지 다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70대 이상의 전·현직 의사들도 힘을 보탰다. 휴업을 마다하지 않은 동네 의사를 비롯해 공중보건의·군의관 등 의사 320여 명, 임상병리사·방사선사 630여 명 등 의료진만 1000여 명에 이른다.
퇴직했던 간호사들도 다시 가운을 입었다. 전국의 확진자 치료를 위해 자원한 간호사 3500여 명의 분투도 눈물겹다. 이들의 임무는 투약, 주사 등 기본간호에 그치지 않는다. 의료인만 출입할 수 있는 음압 병동에서 환자들의 화장실 청소까지 도맡고 있다. 이들은 병원 귀퉁이에서 쪽잠을 자며 삼각김밥으로 견디고 있다.
땀에 젖은 방호복과 고글 자국이 선명한 이마, 방호복 갈아입을 때의 상처에 덧댄 얼굴 붕대, 이들에게 기꺼이 무료 도시락을 싸 나른 시장 상인, 병원으로 달려와 뭔가 돕겠다고 나선 일반 자원봉사자들….
병원에는 500인분의 간식, 귤 4상자, 컵라면 8상자 등이 속속 도착했다. 2000만원과 5000만원을 놓고 간 개인도 있다. 충남 서산의 80대 남성은 지폐와 동전 등 98만여원을 넣은 비닐봉지를 시청에 맡기며 “대구에 전해달라”고 말했다. 충북 연수동행정복지센터에는 70대 할머니가 찾아와 현금 200만원이 든 봉투를 센터에 놓고 갔다.
◆‘얼굴 없는 기부천사’ “더 못 드려 죄송”
경남 창원의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현금 600만원을 갖다놓은 ‘얼굴 없는 기부천사’는 손편지에 “미안한 액수라 죄송합니다.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분들이 하루빨리 일상으로 복귀하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썼다. 경남 창녕에서는 60대 여성이 신문지로 포장한 현금 1000만원을 내놓았다. 더 어려운 이들에게 주라며 힘겹게 모은 현금 100만원과 마스크 39장을 내놓은 울산 노점 할머니의 배려도 눈물겹다. 파출소에 저금통 들고 찾아온 꼬마 기부천사들의 사연 또한 훈훈하다.
강원도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대구지역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강원나물밥 2400인분을 지원했다. 사과즙 100박스와 더덕진액, 청국장, 황기고추장도 함께 전달했다.
◆할머니·수녀까지 ‘마스크 의병단’
전국의 할머니·할아버지들은 ‘마스크 의병대’를 자처하고 나섰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산하 전국 24개 노인 사업단에 소속된 400여 명이 쉴 새 없이 마스크를 만들고 있다. 경기 고양 일산서구의 고양시니어클럽에선 10명의 할머니가 하루 400여 매의 마스크를 생산한다. 서울 노원구 주민들로 구성된 ‘면마스크 의병단’은 하루 1200개의 면마스크를 만드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영등포구 ‘여성의병대’도 마스크 5000장을 기부하기로 했다.
수녀들까지 동참했다.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 수녀들은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자 마스크 5000개를 손으로 만들기로 하고 밤낮없이 재봉틀을 돌리고 있다.
이들의 온정과 보살핌에 힘입어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경북대병원에서 퇴원한 한 시민은 감사 편지를 써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상황실에서 친절하게 안내해 주시는 분들, 식사와 간식과 물품을 챙겨주시는 분들, 폐기물 정리해 주시는 분들, 아픈 데는 없는지 자상하게 손 내미는 의료진과 상담사 선생님들, 엑스레이 검사해 주신 분들, 한 분 한 분의 소중한 손길 덕에 이겨낼 수 있었다. 여기 일하는 모든 분들은 이 시대에 진정 아름다운 분들’이라며 도와준 사람들에게 거듭 사례했다.
◆메르스·신종플루 때도 의병 분투
이런 모습을 보면서 시민들은 “한국이 모범국으로 칭송받는다면 그건 대부분 위험을 무릅쓰고 고통을 함께한 시민들의 몫”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사회 현상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임진왜란 때와 일제 강점기, 6·25 전쟁, 외환위기에 맞설 때마다 의병이 나타났고 메르스, 신종플루 때 역시 민간이 의병처럼 나서서 전염병 위기를 극복했다"며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자화자찬하는 정치인도 더러 있겠지만, 진정한 승리의 주역은 평범한 국민이라는 점을 우리는 기억할 것"이라고 말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