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최악의 코로나 확산 우려 낳는 누루즈 축제
이란을 비롯한 많은 중앙아시아 국가가 일제히 2주간의 누루즈 대축제에 들어갔다. 조로아스터교 전통을 따르는 이란계 민족들의 춘분절 신년축제다. 낮과 빛을 관장하는 아후라 마즈다와 밤과 어둠의 화신인 아히리만의 대결에서 밤낮이 같아지는 춘분(20일)을 새로운 희망과 출발의 상징인 신년 초하루로 삼았던 전통에서 유래했다. 조로아스터교는 후일 이슬람의 등장으로 쇠락했지만, 춘분과 함께 시작하는 새 생명과 수확의 희망은 종교와 상관없는 인류의 보편적 믿음으로 굳어졌다. 이 축제는 2010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올해 누루즈는 공포와 고통의 축제가 될 것 같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이다. 이란은 확진자가 2만 명을 훌쩍 넘었고, 사망자 2000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중동 전체 확진자의 90%에 달한다. 중국이 춘제(중국 설) 전후로 코로나19가 창궐했던 경험에 비춰 보면 누루즈 축제 이후 확산할 가능성은 또 다른 우려를 낳고 있다.

무엇보다도 고위 관료와 정치인 등 사회 지도급 인사들의 확진과 사망이 증가하는 등 사태 수습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40년 이상 미국의 경제제재로 생필품이 고갈된 상태에서 이란 경제의 버팀목인 유가마저 최근 20년 새 최저 수준으로 하락하면서 최악의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란이 유독 코로나19에 취약한 것은 미국에 의한 극심한 경제제재 상황에서 거의 유일한 생명선인 중국과의 관계를 과감하게 단절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기초 의약품 수입조차 원활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단키트나 처방·예방 시스템의 총체적 미비로 사태 확산을 초기에 막지 못한 게 원인이다. 콤과 마슈하드 등 성지가 몰려 있는 도시에서 성직자들이 전염병 위험성을 경고하는 정부의 권고를 무시한 채 실의에 빠진 민중의 치유와 기도 기회를 차단해서는 안 된다는 종교적 오만과 무지 또한 화를 키웠다.

마슈하드에는 이란 시아파의 절대적 존재인 8대 이맘 알리 레자의 영묘가, 콤에는 7대 이맘 무사 알 카딤의 딸인 마수메 파티마의 영묘가 있어 이란 국민에게 가장 인기 있는 치유 성소로 알려져 있다. 마슈하드와 콤 당국은 사망자가 1000명에 육박한 지난 16일에야 급작스레 모든 종교시설을 폐쇄했다. 설상가상으로 누루즈 신년축제를 맞아 정부의 강력한 조치로 기차와 항공편 이동이 제한되자, 300만 명의 국민이 자동차를 이용해 대이동을 시작했다고 하니 대축제 이후 코로나19 사태 악화가 큰 걱정이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 대유행(팬데믹)은 14세기 유럽을 강타한 페스트일 것이다. 1346년 크림반도 남쪽 도시 카파에 침입한 몽골군에 의해 처음 전파된 것으로 알려진 페스트는 제노바 교역 상인들에 의해 유럽으로 번졌다. 1347~1352년 5년간 유럽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0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교회의 권위와 절대성이 하늘에 맞닿아 있던 시절의 중세 유럽인에게 페스트는 분명한 ‘신의 저주’였다. 사람들은 유럽 사회에 악마의 기운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당시 악마의 부류에는 유대인이 포함돼 있었고, 그들은 손쉬운 희생양이 됐다. 수많은 유대인이 유럽 전역에서 끔찍한 화형으로 고통당하고 엄청난 죽임을 당했다. 신의 저주를 막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던 성직자들은 유대인 대학살에 침묵하거나 방관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 대학살인 ‘홀로코스트’가 일어나기 전까지 유럽 유대인 공동체가 맞닥뜨린 최대의 비극이었다.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진 팬데믹 처방의 또 다른 악마성이었다.

신천지 교회 단죄에 이어 일부 종교 단체의 집단예배 강행이 문제되고 있지만, 우리 사회와 종교계의 솔선수범은 세계인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생업이 붕괴되고 사회적으로 격리돼야 하는 상황에서 절대자의 위로와 치유는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겉으로 드러나는 집회라는 방식이 아니라, 내면의 성찰과 생활습관의 변화를 이끌어주는 종교 본연의 역할을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