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ELS發 유동성 위기 터지나…대형사도 단기자금 확보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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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증권사 주가 폭락
기초자산 해외 지수 폭락에
위험 회피용으로 산 파생상품
추가 증거금 요구만 하루 1兆
다급한 증권사 CP 찍어 현금화
기초자산 해외 지수 폭락에
위험 회피용으로 산 파생상품
추가 증거금 요구만 하루 1兆
다급한 증권사 CP 찍어 현금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단기금융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증권업계가 유동성 위기에 처했다. 수조원의 자기자본을 보유한 대형 증권사조차 단기자금 융통이 막히면서 ‘흑자 도산’하는 것 아니냐는 공포에 휩싸여 있다. 지난해 증권사들이 5조원에 육박하는 사상 최대 이익을 냈지만 당장 필요한 유동성을 확보할 자금줄이 막혔다는 아우성이 끊이지 않는다. 발단은 수십조원에 달하는 주가연계증권(ELS)이다. 손실을 피하기 위해 헤지(위험회피)를 걸어놓은 ELS에 대해 대규모 마진콜(증거금 추가 납부 통지) 사태가 발생하면서 대형 증권사마저 단기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자 증권주 투자심리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유동성 위기설’에 증권주 술렁
23일 유가증권시장에서 한국투자증권 모회사인 한국금융지주는 5050원(13.63%) 떨어진 3만2000원에 마감했다. 이날 코스피지수가 5.34% 내린 것과 비교하면 하락폭이 두 배 이상 컸다. 삼성증권(-12.97%), NH투자증권(-12.60%), 미래에셋대우(-9.79%) 등 다른 주요 증권주도 일제히 10% 전후의 하락폭을 나타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최근 대형 증권사 주가 하락 사태를 예사롭지 않게 보고 있다. 금융당국도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최악의 경우 이익을 내고도 단기 유동성을 확보하지 못해 증권사가 망하는 흑자 도산 사례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56개 증권사가 거둔 순이익은 4조9104억원으로 전년 대비 7437억원(17.8%) 증가하는 등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3개월여 만에 증권업계는 신기록 잔치를 뒤로하고 흑자 도산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증권사들이 자금난에 직면한 원인 중 하나로 총 48조원 규모로 발행한 ELS 기초자산인 해외 주요 지수 급락으로 단기 유동성 수요가 급격히 늘었다는 점이 꼽힌다. 증권사들이 ELS 운용상 위험을 피하기 위해 자체 헤지 목적으로 사들인 해외 파생상품에서 추가 증거금 요구가 하루 최대 1조원 넘게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에 증권사들은 기업어음(CP)이나 환매조건부채권(RP), 전자단기사채 등을 마구 찍어내 파는 방식으로 급히 현금화에 나섰다. 미래에셋대우는 올초 3조원 수준이던 CP 잔액을 이달 들어 4조3000억원대까지 늘렸다. 삼성증권도 3월에만 CP를 1조3000억원어치 넘게 발행했다.
그러자 이번엔 단기금융시장이 이상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CP와 전자단기사채 등 조달금리가 급등하는 등 자금경색 현상이 두드러졌다. 아무리 신용등급과 금리가 높아도 매수자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일도 빈번해졌다. 상대적으로 위험(리스크)이 높은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시장은 더 직격탄을 맞았다. 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ABCP 시장에서 자금경색이 벌어질 경우 증권사의 유동성 리스크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콜 차입 확대 등 유동성 확보 수단 필요”
다급해진 일부 증권사는 해외 보유자산 매각 등을 통한 유동성 확보에 나섰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형사들의 경우 해외 자산 중 상당수가 빌딩 등 상업용 건물과 호텔·리조트 등으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으로 거래 논의가 뚝 끊기다 보니 당장 자산 매각 등을 통한 현금화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증권사들이 CP 발행이나 은행 대출 등을 포함하는 단기 차입금 한도를 이미 자기자본의 100% 수준까지 끌어올렸다는 점도 신규 자금 확보를 어렵게 하고 있다. 다른 주요 증권사 대비 단기 차입금이 비교적 적은 삼성증권도 지난 20일 단기 차입금 한도를 1조5000억원 증액해 자기자본과 비슷한 수준으로 맞췄다.
이렇게 되자 증권업계는 정부를 상대로 현재 자기자본의 15%로 묶여 있는 콜(금융회사 간 단기자금 거래) 차입 한도 규제 완화와 한은의 CP 직접 매입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과거 자기자본의 100%였던 증권사 콜 차입 한도는 증권사들이 콜로 확보한 자금을 신용융자 등에 변칙적으로 활용한다는 지적에 따라 2011년 25%, 2015년에는 15%로 축소됐다.
이에 한은은 24일 증권사 등 비은행권을 상대로 RP 매입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미 각 증권사가 RP 담보용으로 보유하고 있는 국공채 등이 상당 부분 소진된 상태라 큰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증권사들은 24일 정부가 발표할 예정인 금융시장 안정화 방안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번 방안에는 각각 10조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채권시장 및 증권시장안정펀드 조성 계획과 함께 단기자금시장 안정화 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장 단기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증권사 입장에선 증시안정펀드 출자 요구가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오형주/이호기 기자 ohj@hankyung.com
23일 유가증권시장에서 한국투자증권 모회사인 한국금융지주는 5050원(13.63%) 떨어진 3만2000원에 마감했다. 이날 코스피지수가 5.34% 내린 것과 비교하면 하락폭이 두 배 이상 컸다. 삼성증권(-12.97%), NH투자증권(-12.60%), 미래에셋대우(-9.79%) 등 다른 주요 증권주도 일제히 10% 전후의 하락폭을 나타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최근 대형 증권사 주가 하락 사태를 예사롭지 않게 보고 있다. 금융당국도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최악의 경우 이익을 내고도 단기 유동성을 확보하지 못해 증권사가 망하는 흑자 도산 사례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56개 증권사가 거둔 순이익은 4조9104억원으로 전년 대비 7437억원(17.8%) 증가하는 등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3개월여 만에 증권업계는 신기록 잔치를 뒤로하고 흑자 도산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증권사들이 자금난에 직면한 원인 중 하나로 총 48조원 규모로 발행한 ELS 기초자산인 해외 주요 지수 급락으로 단기 유동성 수요가 급격히 늘었다는 점이 꼽힌다. 증권사들이 ELS 운용상 위험을 피하기 위해 자체 헤지 목적으로 사들인 해외 파생상품에서 추가 증거금 요구가 하루 최대 1조원 넘게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에 증권사들은 기업어음(CP)이나 환매조건부채권(RP), 전자단기사채 등을 마구 찍어내 파는 방식으로 급히 현금화에 나섰다. 미래에셋대우는 올초 3조원 수준이던 CP 잔액을 이달 들어 4조3000억원대까지 늘렸다. 삼성증권도 3월에만 CP를 1조3000억원어치 넘게 발행했다.
그러자 이번엔 단기금융시장이 이상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CP와 전자단기사채 등 조달금리가 급등하는 등 자금경색 현상이 두드러졌다. 아무리 신용등급과 금리가 높아도 매수자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일도 빈번해졌다. 상대적으로 위험(리스크)이 높은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시장은 더 직격탄을 맞았다. 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ABCP 시장에서 자금경색이 벌어질 경우 증권사의 유동성 리스크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콜 차입 확대 등 유동성 확보 수단 필요”
다급해진 일부 증권사는 해외 보유자산 매각 등을 통한 유동성 확보에 나섰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형사들의 경우 해외 자산 중 상당수가 빌딩 등 상업용 건물과 호텔·리조트 등으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으로 거래 논의가 뚝 끊기다 보니 당장 자산 매각 등을 통한 현금화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증권사들이 CP 발행이나 은행 대출 등을 포함하는 단기 차입금 한도를 이미 자기자본의 100% 수준까지 끌어올렸다는 점도 신규 자금 확보를 어렵게 하고 있다. 다른 주요 증권사 대비 단기 차입금이 비교적 적은 삼성증권도 지난 20일 단기 차입금 한도를 1조5000억원 증액해 자기자본과 비슷한 수준으로 맞췄다.
이렇게 되자 증권업계는 정부를 상대로 현재 자기자본의 15%로 묶여 있는 콜(금융회사 간 단기자금 거래) 차입 한도 규제 완화와 한은의 CP 직접 매입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과거 자기자본의 100%였던 증권사 콜 차입 한도는 증권사들이 콜로 확보한 자금을 신용융자 등에 변칙적으로 활용한다는 지적에 따라 2011년 25%, 2015년에는 15%로 축소됐다.
이에 한은은 24일 증권사 등 비은행권을 상대로 RP 매입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미 각 증권사가 RP 담보용으로 보유하고 있는 국공채 등이 상당 부분 소진된 상태라 큰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증권사들은 24일 정부가 발표할 예정인 금융시장 안정화 방안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번 방안에는 각각 10조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채권시장 및 증권시장안정펀드 조성 계획과 함께 단기자금시장 안정화 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장 단기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증권사 입장에선 증시안정펀드 출자 요구가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오형주/이호기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