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는 심각한 혼란에 직면해 있다.”

미 중앙은행(Fed)이 23일 금융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무제한으로 국채와 주택담보증권(MBS) 등을 사들이겠다고 발표하면서 밝힌 이유다. 또 매입 대상을 ‘투자등급’ 회사채와 상업용 MBS, 신용카드론 등으로 확대한 것도 통상적 조치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충격을 피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Fed는 지난 3일 기준금리를 전격적으로 0.5%포인트 인하하면서 코로나19 대응에 나섰다. 이어 제로금리 선언, 7000억달러 양적완화(QE), 기업어음(CP) 매입 등으로 수위를 높였지만 금융시장 불안은 지속됐다. 지난주에만 뉴욕증시에선 S&P500지수가 15% 넘게 폭락했고, 하이일드 채권시장의 스프레드(국채 금리와의 차이)는 10%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이는 실물 경제가 올스톱되면서 기업들의 대량 파산 사태가 예고된 데 따른 것이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연방은행 총재는 전날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에 대응한 휴업 등 경제활동 위축으로 2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분기 대비 50%(연율 환산) 감소라는 전례 없는 상황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모건스탠리도 2분기 GDP가 30% 감소하고, 실업률은 12.8%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금융사뿐 아니라 우량 기업들도 앞다퉈 현금 확보에 나서며 금융시장에선 무차별 투매가 나타났다.

월가에서는 Fed가 회사채 매입 등으로 기업에 돈을 직접 대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한 벤 버냉키, 재닛 옐런 전 Fed 의장도 지난 18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Fed가 회사채 매입을 통한 새로운 양적완화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에 Fed가 이날 ‘프라이머리 마켓 기업 신용기구(PMCCF)’와 ‘세컨더리 마켓 기업 신용기구(SMCCF)’를 각각 설치해 기업을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PMCCF는 투자등급 기업을 대상으로 최대 4년의 브리지 금융을 제공하고, SMCCF는 투자등급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와 회사채 상장지수펀드(ETF)를 사들이게 된다.

Fed, 4조弗 양적완화에도 시장 불안하자 '무제한 돈풀기'
Fed는 또 2008년 도입했던 ‘자산담보부증권 대출기구(TALF)’도 설립해 학자금 대출, 자동차 대출, 신용카드 대출, 중소기업청(SBA) 보증부대출 등을 사들이기로 했다.

소비자 금융 지원에 나선 것은 기업들이 대량 해고를 하면서 가계로 충격이 크게 확산되고 있는 탓이다. 불러드 총재는 “2분기 미국인의 소득이 2조5000억달러(약 3191조원)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며 “실업률은 30%에 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공황 때 실업률(약 25%)보다 높을 만큼 지금 상황이 심각하다는 얘기다. 2월 실업률은 3.5%였다.

PMCCF, SMCCF, TALF의 매입한도는 총합 3000억달러다. 재무부가 환율안정기금(ESF)을 통해 300억달러를 보증했다.

이날 뉴욕증시는 Fed의 무제한 양적완화 발표에도 1% 안팎 하락세로 출발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해온 2조달러 규모의 경기부양 법안이 전날 상원에서 제동이 걸린 탓이다. 공화당은 민주당이 내용에 합의하지 못한 채 절차투표에 부친 결과 찬반이 47표씩 나와 부결된 것이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