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중장기 집값 흐름 결정할 '4각 변수' 어떻게 작용할까 '촉각'
문재인 정부가 2017년 출범한 후 서울 아파트는 ‘안전자산’ 대접을 받아 왔다. 열아홉 번에 걸쳐 발표된 부동산 시장 안정대책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고공행진했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들 사이에 ‘서울 집값은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이 같은 ‘서울불패 신화’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코로나19 쇼크’ 때문이다. 공시가율 인상에 따른 ‘보유세 폭탄’도 예고됐다. 공급물량 부족과 초저금리라는 상승 요인이 있지만, 지금은 급격한 수요 위축이 시장 움직임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분위기다.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확산으로 한국 경제 전반이 큰 타격을 받으면서 ‘영혼까지 끌어모아’ 내 집 마련에 나서려던 예비 매수자들이 멈춰 섰다. 이에 따라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 마·용·성(마포·용산·성동) 등 핵심 지역에서는 이번 사태 전보다 2억~3억원 싼 매물이 나오고 있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것은 늘 진리인가. 하락세가 가장 뚜렷한 곳은 강남 3구다. 한국감정원의 주간 아파트매매가격지수를 보면 강남 3구는 지난 1월 20일부터 3월 16일까지 9주 연속 내렸다. 1월 20일 0.01~0.02%였던 전주 대비 하락률은 3월 16일 0.08~0.12%로 확대됐다. ‘증여 논란’이 없지 않았지만, 잠실의 R아파트 전용면적 84㎡가 3월 초 16억원(8층)에 거래됐다고 신고돼 부동산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상만 보면 지난달 평균 실거래가(18억9966만원)보다 3억원 가까이 떨어졌다. 강남구 대치동 W아파트 127㎡도 14일 29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12월 고점(34억5000만원) 대비 14.5% 쌌다.

2020년, 2008년 데자뷔일까

이런 움직임을 보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심각한 경제 위기로부터 집값 조정이 시작됐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2008년 9월 미국 리먼브러더스의 파산보호 신청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된 뒤 2008년 4분기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전기 대비 -3.3%로 추락했다. 코로나19 쇼크가 본격화한 올해 1분기 성장률도 이만큼 뒷걸음질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무라증권의 전망치는 -3.7%다.
[뉴스의 맥] 중장기 집값 흐름 결정할 '4각 변수' 어떻게 작용할까 '촉각'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후 금융위기 전까지 주택 시장은 역사적 상승기를 보냈다. 월간 서울 아파트매매가격지수는 2005년 10월~2008년 9월 한 차례도 전달보다 떨어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금융위기 충격’으로 2008년 10월부터 2009년 3월까지 6개월간 하락세가 이어졌다. 이 기간 서울 전체 기준으로는 4.1%, 강남·강북은 각각 4.9%, 3.2% 떨어졌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76.7㎡는 2008년 12월 7억500만원(1층)에 거래됐다. 4월까지만 하더라도 10억4500만원(7층)이던 매매가가 8개월 만에 3억원 가까이 떨어졌다.

당시 서울 아파트가 반등한 것은 위기 시작 후 반년이 지난 시점부터였다. 2009년 4월부터 상승세로 돌아선 서울 아파트매매가격지수는 2010년 2월까지 강세를 이어가 이 기간에 4.0% 올랐다. 7억5000만원까지 하락했던 은마아파트 76.7㎡ 실거래가는 2009년 8월 10억5000만원(14층)으로 뛰었다. 여기에는 2009년 2분기 경제성장률이 3.0%로 치솟는 등 실물경제가 빠르게 회복된 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 중앙은행(Fed) 등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위기 극복을 위해 일제히 유동성 공급에 나서면서 주식 등 자산 시장이 전반적으로 안정된 것도 요인으로 꼽힌다. 당시 코스피지수는 2009년 3월 3일 장중 992.69로 바닥을 찍은 뒤 상승 반전해 같은 해 9월 23일 1723.17까지 치솟았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주택가격과 코스피지수 간 상관계수(1에 가까울수록 상관관계가 크고 -1에 가까울수록 작음)는 0.66으로 나타났다.

'공급확대·거래 정상화'가 안정 변수

2008년의 흐름이 재현된다면 서울 아파트 수요자 입장에서는 지금이 저가 매수의 기회일 수도 있다. 전 세계 중앙은행이 저리로 공급하겠다는 천문학적 규모의 유동성을 감안할 때 글로벌 경기와 자산 시장이 ‘V’자형으로 회복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단시일 내 집값 회복’이 가능성 낮은 시나리오는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이번 위기가 수요와 공급, 국내외에 걸친 ‘복합 위기’여서 속단은 이르다.

문제는 코로나19 악재가 정리되고 난 뒤 시장이 정상화될 2~3년 뒤다. 코로나19의 영향력이 사라지면서 △공급 △유동성 △정부 정책 △대외 요인 등에 따라 이후 수년간의 집값 향방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2008년 금융위기 후 서울 부동산 시장에 ‘진짜 하락세’가 찾아온 것도 3년 뒤인 2011년 9월부터였다. 2014년 6월까지 2년9개월 동안 서울 아파트매매가격지수는 등락을 거듭하며 안정세를 유지했다. 이 기간 서울 아파트매매가격지수는 6.0% 떨어졌다. 이 시기 서울 집값이 안정화된 핵심 요인으로는 서울 반포, 위례신도시, 마곡지구 등 인기 지역에 공급이 늘어난 것과 양도소득세율 인하 등으로 거래에 ‘숨통’이 트인 게 꼽힌다.

수요자들이 원하는 지역에 공급이 대량으로 이뤄졌고, 거래가 활성화될 수 있는 환경도 조성돼 매물이 증가했다. 2008년 5만9989가구였던 서울의 아파트 입주 물량은 2010년 3만3772가구로 43.7% 쪼그라들었다가 2011년 4만5604가구로 반전했다. 2014년엔 5만1420가구로 불어났다. 거래량은 2010년 6만6301건에서 2014년 12만4778건으로, 1.8배 늘었다.

공급량 급감…‘코로나 이후’ 불안

코로나19 쇼크로 ‘숨 고르기’에 들어간 서울 집값이 2011~2014년처럼 장기간 안정세를 유지할 수 있을까. 불안 요인이 많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우선 주택 시장에 ‘집값이 중·장기적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기에 매물량이 충분치 않다는 평가다. 서울 반포동에서 영업 중인 안은경 한울공인 사장은 “상당수 집주인은 양도소득세와 취득세 부담 등으로 집을 팔 생각이 없다”며 “이번 사태 전보다 가격을 낮춰 매물을 내놓은 매도 희망자들도 자금사정이 나쁘지 않아 ‘천천히 팔려도 상관없다’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재건축·재개발 규제 등으로 서울 지역 입주물량은 2023년까지 급격히 감소할 전망이다. 부동산 정보업체 지인이 집계한 서울 아파트 입주 예정물량은 2020년 4만3794가구→2021년 2만2973가구→2022년 1만2545가구→2023년 6803가구다.

언제든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올 수 있는 유동성도 넘쳐나고 있다. 유동성지표로 많이 쓰이는 광의통화(M2·현금+요구불예금+수시입출금식 저축성예금+머니마켓펀드 등)의 1월 말 잔액은 사상 최대인 2926조원에 달해 3000조원 돌파를 눈앞에 뒀다. 올해부터 2024년까지 순차적으로 이뤄지는 3기 신도시 토지보상에 역대 최대 규모인 총 35조원이 풀리는 것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초로 연 0%대로 떨어뜨린 것도 집값 상승을 부추길 수 있는 변수다.

서울 주택 시장은 중대 변곡점에 들어섰다. 이번 사태가 서울 집값 중장기 하락의 단초가 될지, 일시 조정에 머물지는 시간이 흘러 봐야 알 것이다. 다만 역사적으로 양질의 주택을 적소에 공급한 정책이 장기간 부동산 시장 안정을 가져왔다는 점은 분명하다. 정부가 이번 조정기를 효과적 공급 확대 정책을 고민하는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