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올해 말 준공 예정인 ‘3차 육지~제주 간 해저케이블 건설사업’에 중국 전선업체를 참여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24일 알려졌다. 전남 완도~제주 98㎞ 구간에 해저 전력망을 연결하는 이 사업엔 2300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해당 업체는 해외 사업 수주 경험이 사실상 전무한 데다 작년 세계은행의 개발도상국 인프라 구축 사업 입찰에서 위조문서를 써내 세계은행으로부터 20개월간 입찰 제한 조치를 받았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대규모 적자에 시달리는 한전이 비용 감축에 급급해 국가 기간시설 사업을 검증도 안 된 중국 업체에 맡기려 한다”고 지적했다.
[단독] 유럽·아프리카 입찰 막힌 中전선업체…2300억 국내 해저케이블 사업 넘본다
中 업체 입찰 길 터준 한전

국회와 전선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작년 3월 LS전선과 이탈리아 프리즈미안, 일본 스미토모, 중국 ZTT 등 국내외 전선업체 네 곳을 대상으로 3차 제주 해저케이블 사업 기술평가 설명회를 열었다. 이들 기업을 대상으로 국제 경쟁 입찰을 벌여 사업자를 선정하려는 목적이었다. 프리즈미안과 LS전선, 스미토모는 세계 전선 시장 1, 3, 4위다. ZTT는 방글라데시 한 발전소에 3㎞ 길이 케이블을 설치한 것 외엔 별다른 해외 수주 실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ZTT를 제외한 나머지 업체는 한전이 ZTT를 입찰 참여 대상에 포함하려는 데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한전의 국제입찰은 1차 기술력 심사에 통과한 업체를 대상으로 2차 입찰 가격 경쟁을 시켜 최종 사업자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업을 해외 진출 교두보로 삼으려는 ZTT가 저가 입찰에 나설 게 분명하다”며 “문턱이 높지 않은 1차 심사만 통과하면 ZTT가 사업권을 따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ZTT에 입찰 참여 자격이 있는지도 문제가 됐다. 한국 정부가 가입한 세계무역기구(WTO)의 정부조달협정(GPA)과 ‘공기업·준정부기관 계약사무규칙’은 전선 등 중전기(重電機)를 국제입찰 제외 품목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내 산업을 보호하려는 취지다. ‘국제입찰을 하더라도 GPA에도 가입돼 있지 않은 중국 업체를 공공기관 공사 입찰에 참여시키는 게 맞느냐’는 문제 제기도 나왔다. 서울메트로(전 서울교통공사)는 2014년 중국산 전동차 200량을 구매하려다가 GPA 미가입국 기업에 발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계획을 철회했다. 그러나 한전은 “공공 계약은 경쟁(국제)입찰이 원칙”이라며 버텼다.

ZTT의 입찰 자격 논란이 일자 한전은 작년 말 계약사무규칙 소관 부처인 기획재정부와 정부 법무공단에 이 규칙에 예외를 둘 수 있는지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이에 기재부는 올 1월 “중전기는 원칙적으론 국제입찰 대상은 아니지만, 계약 목적 등을 고려해 예외적으로 국제입찰을 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기재부는 ‘GPA 미가입국 업체에 국제입찰 참여를 불허해야 하지 않느냐’는 업계의 유권해석 요청에도 “발주기관이 판단할 사항”이라고 떠넘겼다. 기재부와 한전이 ZTT가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셈이다.

세계銀 “ZTT, 사기 행위 저질러”

반면 정부 법무공단의 판단은 달랐다. 정부 법무공단은 한전에 “원칙적으로 GPA 가입국 기업만 국제입찰에 참여시키는 게 계약사무규칙 등 취지에 부합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한전이 국제입찰 강행 의지를 내비치자 프리즈미안은 한전에 ‘ZTT가 세계은행으로부터 입찰 참여 제한 제재를 받고 있다’는 내용의 문서를 보냈다. 세계은행은 작년 5월 “ZTT는 잠비아 루사카 지역 전력망 사업 입찰에서 위조문서를 냈다”며 “이는 사기 행위”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ZTT는 내년 초까지 세계은행뿐 아니라 다른 다자개발은행(MDB) 지원 사업에도 입찰할 수 없다. ZTT가 대주주인 터키의 한 전선 업체는 작년 말 터키 전력청이 발주하는 공사 입찰에 참여를 검토했지만 세계은행 제재 탓에 포기했다.

한전이 ZTT의 입찰을 검토하는 것은 비용 감축을 위해 3차 제주 해저케이블 사업의 예산을 지나치게 낮게 책정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한전은 2차 제주 해저케이블 사업(2013년 준공·구간 105㎞) 땐 사업비를 3차 사업비의 두 배에 달하는 4500억~4600억원으로 잡았다.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 논란’도 제기된다. 중국 정부는 한국을 포함한 외국 업체의 자국 진출을 사실상 금지하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가격 외에도 기술과 평판 등을 신중하게 검토해 사업자를 선정할 것”이라고 했다.

하헌형/성상훈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