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팬데믹, 국가의 역할 그리고 인권
세계보건기구(WHO)가 세계적 전염병 대유행(팬데믹) 선언을 했다. 세계 각국이 전염병에 맞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다. 검역(quarantine)은 본래 ‘40일’이라는 이탈리아어에서 유래했다. 흑사병 당시 베네치아는 입항하는 배의 승선인을 40일간 격리 관찰했다고 한다. 검역권은 주권의 일부이며, 검역은 국가의 중요한 임무다. 제2차 세계대전 뒤 수립된 국제경제 질서하에서 개별 국가의 많은 조치가 비관세 장벽이라고 철폐됐지만, 검역권은 살아남았다.

검역은 외국인에 대한 입국 금지와는 구별된다. 적절한 검역, 즉 대상의 특정, 심사 강화, 격리 관찰, 의료증명서 요구 등은 그 합리성이 긍정되는 한 허용된다. 현재 한국도 특정 위험지역에서 입국하는 사람들에 대해 단계별 검역과 격리 조치를 하고 있다. 전염병과의 싸움에 더해 사회의 정상적 질서와 기능을 지키는 것도 큰일이다. 의료 시스템이 붕괴하거나 경제 시스템이 작동을 멈추면 수많은 사람이 피해를 본다. 일부 국가에서는 사회적 소요의 징조도 나타나고 있다.

비상사태에 대응해 내려지는 각종 조치들은 그 긴급성과 보호하고자 하는 이익의 중요성이 시야를 가려 절차적 정당성이나 정책 목표와 조치 사이의 비례형평성이 간과되는 경향이 있다. 최근 부각된 감염자의 개인정보 노출 문제가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감염자의 동선을 파악해 알리는 것이 불필요한 공포심을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틀림없다. 정보 공개는 정책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데도 기여한다.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 자세한 정보 공개는 개인의 인권을 침해한다. 어떤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정보를 공개할 것인지는 매우 중요한 정책 판단에 속하며 평소라면 전문가 검토, 청문회, 국회 입법 과정 등을 거쳐 신중하게 결정됐을 것이다. 현재 이런 절차가 생략되고 있다. 국회는 사후적으로라도 이런 문제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종교의 사이비성을 누가 어떤 절차로 판단할지도 문제다. 정치 권력이 재량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은 명백하다. 긴급하다는 이유로 적절한 보호조치를 강구하지 않은 채 종교 구성원 전원의 개인 정보를 공개하도록 명령하고 예배 장소를 강제 폐쇄하기까지 했다. 정보 누출과 구성원 일부의 자살, 해고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관련자들에게 깊은 집단적 상처를 남겼을 것이다.

누구를 치료할지, 의료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지의 결정은 어떤 절차를 거쳐 누구에 의해 이뤄져야 하나. 이탈리아에서는 급증하는 환자를 감당하기 어려워 생존 가능성이 높은 사람에게 치료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고 한다. 치료에서 배제된 사람은 과연 동의했을까? 이것은 삶과 죽음의 문제다.

우리는 일제 치하의 국가 총동원령과 유신 시절의 긴급조치 같은 초헌법적 인권침해를 경험했다. 당시 정치 권력은 국가가 존망 위기에 처했다며 이런 조치를 정당화했다. 다툴 수 없는 목표를 내세운 일사불란하고 효율 지상주의적 업무 추진의 이면에는 인권침해의 위험성이 상존한다.

어차피 완전한 방역은 불가능하므로 집단면역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지연 전술을 통해 구성원의 다수가 감염을 겪고 살아남아 집단 전체에 면역이 형성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간다면 개별 국가 내에서는 노약자나 의료 서비스에 접근이 어려운 사회적 취약 계층이 우선적으로 타격받을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사회적 인프라가 부족한 후진국 시민에게 희생이 집중될 것이다. 이것은 국가 정책으로 내세우기에는 부적절해 보인다. 사회진화론의 흔적조차 느껴진다.

인류 문명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고, 국가 정책도 이를 지향하고 있다.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를 최선을 다해 치료하고 효과적인 사회복지망을 구축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현대국가다. 이런 위기일수록 법치주의가 지켜져야 하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된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야 하며, 무엇보다도 인권이 존중돼야 한다. 국제적 협력도 긴요하다. 과학적 근거를 확인해야 하고 전문가들의 조언을 무겁게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