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식이법 안내 현수막이 게시된 서울 성동구 한 초등학교 앞을 택시가 지나고 있다. 사진=뉴스1
민식이법 안내 현수막이 게시된 서울 성동구 한 초등학교 앞을 택시가 지나고 있다. 사진=뉴스1
어린이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학교 앞 교통안전을 대폭 강화한 '민식이법'이 25일 시행됐다.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 제한속도가 30km/h로 하향됐고, 사고가 발생할 경우 운전자가 가중처벌을 받는다. 스쿨존 내 사고로 어린이가 사망에 이르는 경우 최대 무기징역까지 벌받을 수 있다.

'민식이법'은 지난해 9월 충남 아산시 한 초등학교 앞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김민식(사망 당시 9세)군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법이다.

어린이 보호구역 무인단속장비 설치 의무 등이 신설된 도로교통법,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안전운전 의무를 위반해 어린이 사망·상해사고를 일으킨 가해자를 가중 처벌하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 등이 포함됐다.

이날부터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안전운전 의무를 위반한 사고를 내 어린이가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엔 무기징역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2022년까지 전국 어린이 보호구역에 무인 교통단속장비와 신호등을 대폭 늘린다. 2018년 기준 전국 어린이 보호구역은 총 1만6789곳에 달하지만, 무인단속카메라가 설치된 곳은 전체의 4.9%인 820곳에 불과하다.
서울 성동구의 한 초등학교 앞에 어린이 보호구역 교통안전표지판이 설치됐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성동구의 한 초등학교 앞에 어린이 보호구역 교통안전표지판이 설치됐다. 사진=연합뉴스
우선 올해 총 2060억원을 투자해 무인교통단속장비 2087대, 신호등 2146개를 우선 설치한다. 운전자가 어린이를 쉽게 인식하도록 어린이 횡단보도 대기소인 '옐로카펫', 어린이들이 횡단보도 신호대기 중 머물도록 유도하는 '노란발자국' 등을 늘리고 학교·유치원 근처의 불법 노상주차장 281개소도 모두 폐지하기로 했다. 어린이 보호구역 내 사고가 대부분 불법 주정차 차량으로 인해 시야가 가려져 발생하는 점을 감안한 조치다.

안전신문고를 활용한 불법 주정차 주민신고 대상에 어린이 보호구역도 추가한다. 아울러 도로교통법 시행령을 올해 하반기 개정해 어린이 보호구역 내 주정차 위반 차량에 대한 범칙금·과태료를 일반도로의 3배까지 상향할 방침이다. 현재는 승용차 기준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주정차를 위반할 경우 범칙금·과태료는 일반도로의 2배인 8만원이지만, 시행령 개정 이후 12만원이 된다.

시간제 차량 통행 제한 도입도 추진된다. 등·하교 시간에는 어린이 보호구역에 차량이 진입하지 못하도록 막는 식이다. 올해 상반기 기준 5개 시도 190개 학교에서 시행 중이며 올해 말까지 더욱 확대한다. 상반기 중으로 전국 어린이 보호구역 안전시설에 대한 전수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하반기 안전시설 개선 중장기 계획도 마련하기로 했다.

정부는 어린이 보호구역 내 사망사고를 없애겠다며 속도를 내고 있지만, 민식이법을 둘러싼 '악법'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어린이의 부주의로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운전자가 과한 처벌을 받게 된다는 논지다.

김 군 사망사고를 일으킨 운전자의 경우에도 도로교통공단 분석 결과 23.6km/h에 불과한 속도로 주행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말 열린 첫 재판에서 검찰은 전방주시 태만 등을 공소사실로 밝혔다. 운전자는 차량들이 정차한 반대편 차선에서 김 군이 뛰어들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민식이법의 개정과 철회를 요구하는 청원글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민식이법의 개정과 철회를 요구하는 청원글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민식이법 시행을 앞두고 개정과 폐지를 요구하는 글도 연이어 올라왔다. 사고 책임을 과도하게 운전자에 전가하고 처벌 기준도 과도해 형벌 비례성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민식이 법 개정을 청원합니다.'라는 글을 남긴 청원인은 "원칙상 운전자의 과실이 0%가 된다면 민식이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면서도 "2018년 보험개발원 자료에 의하면 운전자과실이 20% 미만으로 인정받은 경우는 0.5%밖에 되지 않는다. 정말 피할 수 없는 사고였다 생각되더라도 법원에서는 주의를 더 기울였어야 한다며 운전자에게 과실이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했을 때 운전자의 과실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최소 징역 3년에서 무기징역까지 선고받을 수 있다"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행위인 음주운전 사망 가해자와 형량이 같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책임과 형벌간의 비례성 원칙에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해당 글은 25일 오전 11시 기준 3만615명의 동의를 받았다.

일부 내비게이션은 어린이 보호구역 우회 기능도 제공하고 있다. 전자지도 소프트웨어 전문기업 맵퍼스는 내비게이션 소프트웨어 ‘아틀란’에 어린이 보호구역을 최대한 피해 경로를 안내하는 스쿨존 회피경로 탐색 기능을 도입했다. 운전자가 해당 기능을 켜면 자동으로 어린이 보호구역을 피하는 주행 경로를 안내한다.

다만 대부분의 내비게이션에서는 이러한 기능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목적지까지 최단시간 또는 최단거리로 안내하는 것이 내비게이션의 서비스 취지"라며 "어린이 보호구역 우회 기능은 언제든 상용화가 가능하지만, 이 기능을 넣는 업체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