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유안 줌비디오 CEO, 장거리 연애하다 화상회의 아이디어…8전 9기 도전 끝에 美 실리콘밸리 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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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재택근무 폭발…주가 2배로 '줌'
빌 게이츠 강연 듣고 미국행 결심
"인터넷이 미래를 바꾼다"에 감명
빌 게이츠 강연 듣고 미국행 결심
"인터넷이 미래를 바꾼다"에 감명
화상회의솔루션 기업인 줌비디오커뮤니케이션(줌)은 올 들어 미국 나스닥에서 주가가 거의 두 배로 뛰었다. 1월 2일 68.72달러이던 주가가 지난 24일 135.18달러를 기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세계 증시가 휘청이는 와중에 이룬 성과다.
줌은 최근 세계적으로 재택근무가 확대되고, 화상회의 수요가 늘면서 매출이 증가했다. 같은 분야에 스카이프, 웹엑스, 고투미팅 등 덩치 큰 경쟁 기업이 많지만 유독 후발 주자인 줌만 강세다. 각국 대기업을 비롯해 미국 상위 200개 대학 중 90% 이상이 줌을 채택했다. 미국 CNBC는 “에릭 유안 줌 최고경영자(CEO)가 주요 기능에 집중한 서비스를 내놓고 소비자 반응을 꾸준히 살핀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장거리 연애하다 화상회의 서비스 구상
유안 CEO는 중국 산둥성 출신이다. 산둥과학기술대에서 수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그가 줌 서비스를 처음으로 구상한 것은 이때부터다. 대학 시절 그는 지금은 부인이 된 여자친구와 장거리 연애 중이었다. 매번 10시간씩 기차를 타고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동안 이동하지 않고도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구상했다.
대학을 졸업한 유안 CEO는 창업 계획차 베이징에 갔다가 인터넷 서비스를 처음 접했다. 당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의 ‘인터넷이 미래를 바꿀 것’이라는 강연을 듣고 미국행을 결심했다. 미국에선 아메리카온라인(AOL), 야후, 넷스케이프 등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반면 중국에선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기 때문이다. 2년간 9번의 시도 끝에 미국 비자를 받은 그는 1997년 실리콘밸리에 도착했다.
유안 CEO의 미국 첫 직장은 실시간 협업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인 웹엑스였다. 웹엑스는 개발자를 비롯해 직원이 12명뿐이었지만 규모가 빠르게 커졌다. 유안 CEO도 승승장구했다. 웹엑스가 2007년 정보기술(IT)기업 시스코에 인수된 뒤 유안 CEO는 엔지니어링 부문 부사장에 올랐다. 유안 CEO가 관리하는 직원만 800명이 넘었다.
자사 서비스 만족 못해 직접 창업 잘나가던 유안 CEO는 2011년 퇴사하고 창업에 나섰다. 웹엑스보다 나은 서비스를 내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 유안 CEO는 웹엑스 이용자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눴고, 이용자들의 부정적인 피드백이 날로 늘어가고 있음을 체감했다. 스마트폰 이용자가 증가함에 따라 모바일 전용 화상회의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점도 깨달았다. 이를 반영하기 위해 1년여간 모회사 시스코에 웹엑스 플랫폼을 다시 짜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임원진을 설득하지 못했다.
유안 CEO는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매번 이용자의 불만족 경험담을 듣는 것이 매우 괴로웠다”며 “내가 개발한 서비스를 통해 이용자가 행복하길 바랐고, 이를 위해 스스로 서비스를 내놔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뜻이 맞는 동료 개발자·엔지니어들과 회사를 나와 줌을 창업했다. 초반엔 어려움이 많았다. 화상회의 등 온라인 협업 시스템 시장은 이미 MS, 구글, 시스코 등 거대 글로벌 기업이 점유하고 있는 레드오션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벤처캐피털(VC) 등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해 실리콘밸리 지인들을 상대로 투자금을 모았다. 당시 줌 엔젤투자자였던 댄 셰인먼은 CNBC에 “유안 CEO는 모든 사람이 이미 끝났다고 판단한 시장에 발을 들였다”고 말했다.
“어떤 시장이든 품질이 좋으면 이긴다”
유안 CEO는 나름의 자신이 있었다. 줌 서비스가 다른 서비스보다 나으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웹엑스에서 쌓은 노하우에다 이용자들의 지적사항을 반영해 2012년 첫 서비스를 내놨다. 프로그램 안정화에 힘써 오류를 줄이고, 모바일용으로는 더 간단하고 직관적인 서비스를 출시했다. 다양한 규모 기업에서 쓸 수 있도록 500명이 한번에 화상회의에 참석할 수 있게 하는 등 확장성도 늘렸다. 그 덕분에 점점 기업과 대학 고객이 늘어났다.
사업이 자리를 잡자 유안 CEO는 기업·대학 이용자 외 다른 분야 공략에도 나섰다. 변호사가 중재 업무를 할 때, 의사가 환자를 진단할 때, 배우들이 가상 리허설을 할 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줌을 알렸다. 가난한 지역에 의료·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줌 서비스를 지원하는 자체 사회공헌 프로그램도 내놨다. 이용자층을 넓히자 매출도 증가했다. 줌 매출은 2016년 6080만달러에서 2017년 1억5150만달러, 2018년 3억3050만달러로 매년 두 배 이상씩 늘었다.
유안 CEO는 직접 고객 목소리를 챙겼다. 사업 초반에는 서비스를 이용하다 해지한 모든 이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냈다. 일부 이용자가 “CEO 명의로 자동 메시지를 보낸 게 아니냐”고 의심하자 직접 줌을 통한 화상통화를 제안하기도 했다. “요즘 사업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어떤 기능을 추가해야 소비자가 좋아할지를 알려면 고객 목소리를 직접 들어야 한다”는 게 유안 CEO의 신조다.
유안 CEO는 작년 4월 18일 줌 기업공개(IPO)에 나섰다. 줌은 공모가 36달러에서 시작해 62달러로 첫날 장을 마쳤다. 당시 줌 안팎에서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으로 인한 시장 불확실성 등을 들어 IPO를 늦추자는 얘기가 나왔지만 유안 CEO는 IPO를 강행했다. 서비스 품질이 좋으면 시장 불확실성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CNBC는 “작년에 슬랙, 리프트, 우버 등 여러 스타트업이 IPO에 나섰지만 대부분은 현재 주가가 공모가를 밑돈다”며 “줌은 상장 후 주가가 오른 극소수 기업 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줌은 최근 세계적으로 재택근무가 확대되고, 화상회의 수요가 늘면서 매출이 증가했다. 같은 분야에 스카이프, 웹엑스, 고투미팅 등 덩치 큰 경쟁 기업이 많지만 유독 후발 주자인 줌만 강세다. 각국 대기업을 비롯해 미국 상위 200개 대학 중 90% 이상이 줌을 채택했다. 미국 CNBC는 “에릭 유안 줌 최고경영자(CEO)가 주요 기능에 집중한 서비스를 내놓고 소비자 반응을 꾸준히 살핀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장거리 연애하다 화상회의 서비스 구상
유안 CEO는 중국 산둥성 출신이다. 산둥과학기술대에서 수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그가 줌 서비스를 처음으로 구상한 것은 이때부터다. 대학 시절 그는 지금은 부인이 된 여자친구와 장거리 연애 중이었다. 매번 10시간씩 기차를 타고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동안 이동하지 않고도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구상했다.
대학을 졸업한 유안 CEO는 창업 계획차 베이징에 갔다가 인터넷 서비스를 처음 접했다. 당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의 ‘인터넷이 미래를 바꿀 것’이라는 강연을 듣고 미국행을 결심했다. 미국에선 아메리카온라인(AOL), 야후, 넷스케이프 등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반면 중국에선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기 때문이다. 2년간 9번의 시도 끝에 미국 비자를 받은 그는 1997년 실리콘밸리에 도착했다.
유안 CEO의 미국 첫 직장은 실시간 협업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인 웹엑스였다. 웹엑스는 개발자를 비롯해 직원이 12명뿐이었지만 규모가 빠르게 커졌다. 유안 CEO도 승승장구했다. 웹엑스가 2007년 정보기술(IT)기업 시스코에 인수된 뒤 유안 CEO는 엔지니어링 부문 부사장에 올랐다. 유안 CEO가 관리하는 직원만 800명이 넘었다.
자사 서비스 만족 못해 직접 창업 잘나가던 유안 CEO는 2011년 퇴사하고 창업에 나섰다. 웹엑스보다 나은 서비스를 내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 유안 CEO는 웹엑스 이용자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눴고, 이용자들의 부정적인 피드백이 날로 늘어가고 있음을 체감했다. 스마트폰 이용자가 증가함에 따라 모바일 전용 화상회의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점도 깨달았다. 이를 반영하기 위해 1년여간 모회사 시스코에 웹엑스 플랫폼을 다시 짜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임원진을 설득하지 못했다.
유안 CEO는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매번 이용자의 불만족 경험담을 듣는 것이 매우 괴로웠다”며 “내가 개발한 서비스를 통해 이용자가 행복하길 바랐고, 이를 위해 스스로 서비스를 내놔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뜻이 맞는 동료 개발자·엔지니어들과 회사를 나와 줌을 창업했다. 초반엔 어려움이 많았다. 화상회의 등 온라인 협업 시스템 시장은 이미 MS, 구글, 시스코 등 거대 글로벌 기업이 점유하고 있는 레드오션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벤처캐피털(VC) 등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해 실리콘밸리 지인들을 상대로 투자금을 모았다. 당시 줌 엔젤투자자였던 댄 셰인먼은 CNBC에 “유안 CEO는 모든 사람이 이미 끝났다고 판단한 시장에 발을 들였다”고 말했다.
“어떤 시장이든 품질이 좋으면 이긴다”
유안 CEO는 나름의 자신이 있었다. 줌 서비스가 다른 서비스보다 나으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웹엑스에서 쌓은 노하우에다 이용자들의 지적사항을 반영해 2012년 첫 서비스를 내놨다. 프로그램 안정화에 힘써 오류를 줄이고, 모바일용으로는 더 간단하고 직관적인 서비스를 출시했다. 다양한 규모 기업에서 쓸 수 있도록 500명이 한번에 화상회의에 참석할 수 있게 하는 등 확장성도 늘렸다. 그 덕분에 점점 기업과 대학 고객이 늘어났다.
사업이 자리를 잡자 유안 CEO는 기업·대학 이용자 외 다른 분야 공략에도 나섰다. 변호사가 중재 업무를 할 때, 의사가 환자를 진단할 때, 배우들이 가상 리허설을 할 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줌을 알렸다. 가난한 지역에 의료·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줌 서비스를 지원하는 자체 사회공헌 프로그램도 내놨다. 이용자층을 넓히자 매출도 증가했다. 줌 매출은 2016년 6080만달러에서 2017년 1억5150만달러, 2018년 3억3050만달러로 매년 두 배 이상씩 늘었다.
유안 CEO는 직접 고객 목소리를 챙겼다. 사업 초반에는 서비스를 이용하다 해지한 모든 이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냈다. 일부 이용자가 “CEO 명의로 자동 메시지를 보낸 게 아니냐”고 의심하자 직접 줌을 통한 화상통화를 제안하기도 했다. “요즘 사업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어떤 기능을 추가해야 소비자가 좋아할지를 알려면 고객 목소리를 직접 들어야 한다”는 게 유안 CEO의 신조다.
유안 CEO는 작년 4월 18일 줌 기업공개(IPO)에 나섰다. 줌은 공모가 36달러에서 시작해 62달러로 첫날 장을 마쳤다. 당시 줌 안팎에서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으로 인한 시장 불확실성 등을 들어 IPO를 늦추자는 얘기가 나왔지만 유안 CEO는 IPO를 강행했다. 서비스 품질이 좋으면 시장 불확실성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CNBC는 “작년에 슬랙, 리프트, 우버 등 여러 스타트업이 IPO에 나섰지만 대부분은 현재 주가가 공모가를 밑돈다”며 “줌은 상장 후 주가가 오른 극소수 기업 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