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증거확보와 피해자조사가 26만명 신원파악보다 선행돼야"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양홍석 전 참여연대 간부, 경찰 행정력 낭비 비판 "카카오에 못한 것 텔레그램에 요구?"
성범죄 수사 전문가 "26만명 신원파악하느라 이용자처벌 등 두마리 토끼 놓칠라"우려
"피해자 조사 등으로 죄목 발견이 급선무…강제수사 타이밍 놓치면 나중에 모두 무죄"
성범죄 수사 전문가 "26만명 신원파악하느라 이용자처벌 등 두마리 토끼 놓칠라"우려
"피해자 조사 등으로 죄목 발견이 급선무…강제수사 타이밍 놓치면 나중에 모두 무죄"
미성년자 성착취 음란물을 불법 제작·배포한 일명 ‘n번방 사건’에서 가해자와 이용자 모두 강한 법적 처벌이 가능하려면 '26만명(이용자 추산)'에 대한 신원파악보다 범죄 증거 확보와 피해자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법조계에서 나왔다. 자칫 여론에 휩쓸려 26만명을 파악하는 데 수사력이 집중되다 가해자의 범행에 대한 증거 확보를 놓칠 경우 재판에서 ‘솜방망이 판결’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양홍석 전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변호사·사법연수원 36기)은 최근 페이스북에 남긴 글을 통해 경찰이 텔레그램 본사를 추적하는 데 행정력을 동원하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양 변호사는 최종상 경찰청 사이버수사과장이 한 언론과 인터뷰한 기사를 링크하며 “ n번방 사건 ‘박사’를 잡은 것은 성과인데, 괜히 이런 거 하다가 성과마저 날라갈까 우려된다”고 적었다. 최 과장은 인터뷰에서 “필사적으로 텔레그램 본사를 찾으려는 노력은 성착취물 피해가 더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며 “피해 접수와 동시에 해당 성착취물이 더 이상 유포되지 않도록 삭제·필터링 해줄 것을 본사에 요구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양 변호사는 “카카오한테도 하지 않는 걸 텔레그램 본사에 요구한다고?”라며 의문을 제기한 뒤 “텀블러사(미국 포털 야후의 소셜미디어업체)가 이용자 페이지를 필터링하는 것과 텔레그램 본사가 대화창을 필터링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메신저 대화방을 들여다 보겠다는 초법적·초헌법적 상상을 실행하느라 공적 조직이 동원되어서는 안될 것이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서도 양 변호사와 비슷한 지적들이 이어지고 있다. 26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n번방 이용자들을 처벌하려면 먼저 이 사건 관계자들에 대한 죄목이 풍부해야하는 데 기초 수사가 부실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26만명 명단 확보에만 매달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법조계는 경찰이 26만명(추산) 명단 확보에 총력을 기울인 배경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4일 “n번방 운영자와 회원 전원에 대해 조사하라”고 강력하게 지시한 영향이 컸다고 보고 있다.
성범죄 전문 검사 출신 변호사는 “현재 경찰 수사인력이 26만명 전수조사에 매몰되면 ‘가해자 엄단’과 ‘이용자 처벌’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지 못할 수 있다”며 “이용자에 대한 명단 확보는 최대한 은밀하게 수사하되, 우선 가해자에 대해 풍부한 죄목 개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성범죄 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검사도 “이용자를 찾기위해 개별 인터넷주소(IP)를 추적하는 일에는 상당한 노동력이 수반돼야 한다”며 “사건 몸통에 대해 적용할 법리도 아직 제대로 발견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들을 찾는 데 혈안이 되다가 나중에 아무도 처벌받지 않은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 출신 변호사들은 경찰의 수사능력이 ‘피해자 조사’에서 판가름날 것으로 보고 있다. 강력부 검사 출신 변호사는 “결국 검찰의 기소는 각 동영상별로 이뤄질 것”이라며 “아동 청소년 성 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성폭력범죄처벌에 관한 특례법(성폭법)외에도 강요, 협박, 공갈 등 다양한 죄목을 개발하는 것이 급선무인데, 이를 위해선 피해자의 진술 증거가 상당히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고 신분 노출이나 보복에 따른 ‘2차 피해’를 우려하는 피해자들을 상대로 범죄에 대한 상세한 진술을 얻어내는 것은 고난도의 수사기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서초동 변호사는 “경찰이 피해자들에 대해 제대로 조사를 했다면 죄명이 풍부해질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죄명이 아청법, 성폭법, 강요 등으로 단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진술 증거 뿐만 아니라 물적 증거 확보에도 ‘속도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n번방 사건에서 자금 담당, 촬영 담당, 데이터 담당, 회원관리 담당 등 범죄 관련자들에 대한 휴대폰 압수수색 뿐만 아니라 계좌추적도 병행돼 명확한 범죄 증거 확보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기존의 인터넷 사이트가 아닌 갑자기 생겼다가 사라지는 소셜미디어(SNS) 대화방을 통한 미성년자 성착취 범죄에 대한 수사는 속도가 생명”이라며 “가해자들이 모두 범행을 부인할 것이기 때문에 진술증거와 물적증거가 탄탄해야 나중에 유죄 확률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n번방 사건은 경찰이 최초로 인지한 수사인데다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이 통과된 이후여서 수사의 주도권은 경찰이 쥐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엄단을 지시한만큼 검찰도 이전처럼 압수수색이나 구속영장 지휘 등의 최소한 간섭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수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25일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이른바 ‘박사방’사건을 여성아동범죄조사부(여조부)에 배당했다. TF 총괄팀장은 유현정 여조부 부장검사(사법연수원 31기)가 맡는다. 여조부와 강력부, 범죄수익환수부, 출입국·관세범죄전담부 등 4개 부서에서 검사 9명과 수사관 12명 등 21명이 합류하며 김욱준 4차장검사(사법연수원 28기)가 지휘한다. 여성 아동 범죄 수사 전문가인 유 부장검사는 2008년 서울중앙지검에서 여조부 창설 멤버였고, 2018년 대검찰청 초대 양성평등담당관을 맡았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양홍석 전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변호사·사법연수원 36기)은 최근 페이스북에 남긴 글을 통해 경찰이 텔레그램 본사를 추적하는 데 행정력을 동원하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양 변호사는 최종상 경찰청 사이버수사과장이 한 언론과 인터뷰한 기사를 링크하며 “ n번방 사건 ‘박사’를 잡은 것은 성과인데, 괜히 이런 거 하다가 성과마저 날라갈까 우려된다”고 적었다. 최 과장은 인터뷰에서 “필사적으로 텔레그램 본사를 찾으려는 노력은 성착취물 피해가 더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며 “피해 접수와 동시에 해당 성착취물이 더 이상 유포되지 않도록 삭제·필터링 해줄 것을 본사에 요구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양 변호사는 “카카오한테도 하지 않는 걸 텔레그램 본사에 요구한다고?”라며 의문을 제기한 뒤 “텀블러사(미국 포털 야후의 소셜미디어업체)가 이용자 페이지를 필터링하는 것과 텔레그램 본사가 대화창을 필터링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메신저 대화방을 들여다 보겠다는 초법적·초헌법적 상상을 실행하느라 공적 조직이 동원되어서는 안될 것이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서도 양 변호사와 비슷한 지적들이 이어지고 있다. 26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n번방 이용자들을 처벌하려면 먼저 이 사건 관계자들에 대한 죄목이 풍부해야하는 데 기초 수사가 부실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26만명 명단 확보에만 매달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법조계는 경찰이 26만명(추산) 명단 확보에 총력을 기울인 배경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4일 “n번방 운영자와 회원 전원에 대해 조사하라”고 강력하게 지시한 영향이 컸다고 보고 있다.
성범죄 전문 검사 출신 변호사는 “현재 경찰 수사인력이 26만명 전수조사에 매몰되면 ‘가해자 엄단’과 ‘이용자 처벌’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지 못할 수 있다”며 “이용자에 대한 명단 확보는 최대한 은밀하게 수사하되, 우선 가해자에 대해 풍부한 죄목 개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성범죄 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검사도 “이용자를 찾기위해 개별 인터넷주소(IP)를 추적하는 일에는 상당한 노동력이 수반돼야 한다”며 “사건 몸통에 대해 적용할 법리도 아직 제대로 발견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들을 찾는 데 혈안이 되다가 나중에 아무도 처벌받지 않은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 출신 변호사들은 경찰의 수사능력이 ‘피해자 조사’에서 판가름날 것으로 보고 있다. 강력부 검사 출신 변호사는 “결국 검찰의 기소는 각 동영상별로 이뤄질 것”이라며 “아동 청소년 성 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성폭력범죄처벌에 관한 특례법(성폭법)외에도 강요, 협박, 공갈 등 다양한 죄목을 개발하는 것이 급선무인데, 이를 위해선 피해자의 진술 증거가 상당히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고 신분 노출이나 보복에 따른 ‘2차 피해’를 우려하는 피해자들을 상대로 범죄에 대한 상세한 진술을 얻어내는 것은 고난도의 수사기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서초동 변호사는 “경찰이 피해자들에 대해 제대로 조사를 했다면 죄명이 풍부해질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죄명이 아청법, 성폭법, 강요 등으로 단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진술 증거 뿐만 아니라 물적 증거 확보에도 ‘속도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n번방 사건에서 자금 담당, 촬영 담당, 데이터 담당, 회원관리 담당 등 범죄 관련자들에 대한 휴대폰 압수수색 뿐만 아니라 계좌추적도 병행돼 명확한 범죄 증거 확보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기존의 인터넷 사이트가 아닌 갑자기 생겼다가 사라지는 소셜미디어(SNS) 대화방을 통한 미성년자 성착취 범죄에 대한 수사는 속도가 생명”이라며 “가해자들이 모두 범행을 부인할 것이기 때문에 진술증거와 물적증거가 탄탄해야 나중에 유죄 확률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n번방 사건은 경찰이 최초로 인지한 수사인데다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이 통과된 이후여서 수사의 주도권은 경찰이 쥐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엄단을 지시한만큼 검찰도 이전처럼 압수수색이나 구속영장 지휘 등의 최소한 간섭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수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25일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이른바 ‘박사방’사건을 여성아동범죄조사부(여조부)에 배당했다. TF 총괄팀장은 유현정 여조부 부장검사(사법연수원 31기)가 맡는다. 여조부와 강력부, 범죄수익환수부, 출입국·관세범죄전담부 등 4개 부서에서 검사 9명과 수사관 12명 등 21명이 합류하며 김욱준 4차장검사(사법연수원 28기)가 지휘한다. 여성 아동 범죄 수사 전문가인 유 부장검사는 2008년 서울중앙지검에서 여조부 창설 멤버였고, 2018년 대검찰청 초대 양성평등담당관을 맡았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