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여간 내각을 마련하지 못해 총선을 세 차례 치룬 이스라엘이 이번엔 연립정부 구성에 가닥을 잡는 분위기다. 연정구성권이 있는 베니 간츠 청백당 대표가 그간 예상을 깨고 그간 정치 맞수였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연정 합의에 전격 나서기로 했다.

27일(현지시간) 하레츠 등 이스라엘 현지 언론에 따르면 전날 간츠 대표는 이스라엘 의회 국회의장으로 선출됐다. 간츠 대표는 120명 의원 중 74명의 찬성표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알자지라는 “이날 간츠 대표가 당수인 청백당 일부와 함께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리쿠드당도 간츠 대표에 지지표를 던졌다”며 “간츠 대표가 리쿠드당과 정치적 협력관계를 구축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이는 그간 예상과는 전혀 다른 움직임이라는게 현지 매체들의 중론이다. 간츠 대표는 그간 '반(反)네타냐후' 이미지를 내세워 지지층을 모았다. 작년부터는 독자적으로 연정을 구성하겠다는 의지를 꾸준히 비쳐왔다. 이달 초엔 네타냐후 총리가 간츠 대표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긴급 연정을 구성하자고 제안했으나 간츠 대표가 이를 거절했다.

간츠 대표는 이날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네타냐후 총리와 손잡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스라엘에서도 코로나19 확산세가 커지고 있다”며 “특수한 상황엔 특수한 결정을 내려야 하고, 이때문에 비상 연정구성을 모색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간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도 간츠 대표와 네타냐후 총리에게 대연정 구성을 여러번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가 번지는 와중에 정계 교착상태가 이어져선 안된다는 판단에서다. 이스라엘은 작년 4월과 9월 총선 이후 네타냐후 총리와 간츠 모두 연립정부 구성에 실패하면서 정국 혼란이 장기간 이어져 왔다. 이스라엘 보건부 집계에 따르면 27일 기준 이스라엘 내 코로나 확진자는 2693명, 사망자는 8명이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네타냐후 총리가 내년 9월까지 18개월간 총리를 역임하고, 이후 30개월간은 간츠 대표가 총리를 맡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 네타냐후 총리가 제안한 대연정안과 비슷한 내용이다. 현지 언론들은 네타냐후 총리가 재임하는 동안엔 간츠 대표는 외무장관을 역임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 연정 협상이 이뤄지면 정치 생명 위기에 처했던 네타냐후 총리도 기사회생할 가능성이 생긴다. 네타냐후 총리는 총 14년간 집권 중인 이스라엘 사상 최장수 총리다. 그간 연정 구성에 잇달아 실패하면서 실각설이 부상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작년 뇌물 수수 등 혐의로 기소돼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당초 지난 17일 재판을 받을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등을 이유로 재판이 5월24일로 미뤄졌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