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신용등급 강등이 예상되는 기업 명단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으로 자금조달 환경이 경색되자 우선적으로 지원할 기업을 추려내는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2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최근 국내 3대 신용평가사인 나이스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로부터 모든 평가대상 기업(금융사 제외)의 주요 재무지표와 신용등급 강등 조건 등을 넘겨받아 신용위험을 살피고 있다. 신용등급에 ‘부정적’ 전망이 붙었거나, 신용등급 하향 검토 대상에 등록된 기업이 관심 대상으로 분류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3대 신평사 중 한 곳이라도 등급 전망을 부정적(하향 검토 포함)으로 평가한 기업은 39곳에 달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해 재무제표를 바탕으로 한 신용평가가 마무리되는 시기에 맞춰서 기업들의 신용등급 현황과 변동 추세를 살펴보고자 하는 조사”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최근 총 2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를 조성해 회사채와 우량 기업어음(CP) 등을 매입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회사채 신속인수제를 통해 2조2000억원도 지원하기로 했다. 회사채 신속인수제는 만기를 맞은 회사채를 갚기 위해 기업이 새로 회사채를 발행하면 산업은행이 그중 80%를 인수하는 제도다. 산은은 이와 별도로 자금조달이 어려워진 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 1조9000억원어치도 직접 매입한다.

정부가 지원 작업에 속도를 내면서 경색된 금융시장이 회복세로 돌아설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19가 세계적 대유행 국면으로 치달은 이후 기업 실적이 크게 악화될 것이란 우려가 증폭되면서 대표적인 자금 조달처인 회사채시장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기업 신용등급 하락 추세도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신평사들은 지난해 4분기 결산 실적이 공개되기 시작한 2월 이후 이마트, 현대로템, LG디스플레이 등 주요 기업의 신용등급을 줄줄이 내리고 있다. 지난 26일엔 무디스가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신용등급(모두 Baa1)을 하향 검토 대상에 올렸다.

신용위험 지표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감지된다. 3년 만기 AA-등급 회사채와 국고채 간 금리 격차는 이날 0.979%포인트를 기록해 2010년 12월 8일(1.04%포인트) 후 9년 3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정부가 서둘러 소방수로 나서지 않으면 적잖은 기업이 채권 발행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평가다. 국내 기업들이 2분기 갚아야 할 회사채 규모는 총 13조1630억원이다. 이 중 5조8702억원어치가 다음달 만기를 맞는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