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S20 국내 모델에서 배제된 삼성 엑시노스 통합칩셋
퀄컴 스냅드래곤에 밀렸다는 평가 우세
중국 비보 등엔 순조롭게 납품
삼성전자 엑시노스 포기 안 하고 기술개발 더욱 주력할 듯
삼성전자 무선사업부가 스마트폰을 출시할 때마다 관심을 끄는 사안이 있습니다. 어떤 회사의 통합칩셋이 내장됐는지 입니다. 통합칩셋(SoC, System on Chip)은 이름대로 통신을 담당하는 모뎀칩에 두뇌 역할을 하는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그래픽프로세서(GPU) 등을 한 칩으로 만든 반도체입니다. 스마트폰의 성능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관심이 큽니다.
전 세계 통합칩셋 시장의 강자는 단연 미국 퀄컴(Qualcomm)입니다. 2000년대 초반 판매됐던 휴대폰에 'digital by Qualcomm'이란 스티커가 붙어 있었던 것을 기억하시는 분도 계실텐데요. 바로 그 회사입니다. 퀄컴은 기술력을 앞세워 통신칩 표준을 만든 글로벌 정보기술(IT)기업입니다. 스마트폰을 만드려면 퀄컴 특허기술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삼성전자, LG전자, 샤오미, 화웨이 등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은 회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매년 스마트폰 매출의 약 5% 정도를 '로열티' 명목으로 퀄컴에 지급합니다.
퀄컴의 통합칩셋 브랜드는 '스냅드래곤(Snapdragon·사진)'입니다. 스냅드래곤은 '금어초'라는 식물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전 세계 통신칩 시장의 33.4%(2019년 카운터포인트리서치)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어떤 통합칩셋을 쓸까요. 물론 퀄컴의 스냅드래곤을 씁니다. 삼성 모든 스마트폰에 스냅드래곤이 들어가는 건 아닙니다. 삼성전자는 전 세계에서 자체적으로 통합칩셋을 개발·판매하고 있는 몇 안 되는 회사입니다.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D램, 낸드플래시를 제외한 비메모리반도체)를 담당하는 시스템LSI사업부가 2011년 2월 출시한 '엑시노스'(Exynos)입니다. 삼성전자를 제외하곤 '기린'이란 통합칩셋을 생산하고 있는 중국 화웨이, '헬리오'란 이름을 붙인 SoC를 판매하는 대만 미디어텍 정도를 꼽을 수 있겠네요. 삼성전자 뉴스룸에 따르면 엑시노스(Exynos)는 그리스어로 'Smart(Exypnos)'와 'Green(Prasinos)'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삼성전자는 엑시노스 런칭 시점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삼성전자는 지난 2009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모바일 사업 전략인 '삼성 Smart & Green' 전략을 적극 계승하여, 한층 향상된 고성능·저전력 반도체로 모바일 반도체 시장을 주도해 나가기 위해 이번 브랜드 런칭을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이후 10년 동안 엑시노스는 나름대로 승승장구했습니다. 삼성전자 프리미엄 스마트폰의 국내, 유럽, 남미 등의 판매 모델엔 항상 탑재가 됐습니다. 물론 미국과 중국에서 판매되는 제품엔 퀄컴 스냅드래곤을 넣었지만요. 품질도 '나쁘지 않다', '대등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삼성전자는 엑시노스를 통해 전 세계 통신칩 시장을 사실상 지배했던 퀄컴에 대한 '가격협상력'을 갖게 된 것이죠.
퀄컴과 삼성전자는 기술경쟁도 치열하게 벌였습니다. 세계 최초 5세대 이동통신(5G) 통합칩셋 출시 레이스에선 삼성전자가 퀄컴보다 약 4개월 정도 앞서기도 했습니다. 작년 하반기엔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가 현안으로 삼았던 타사 '대규모 납품'도 성사시킵니다. 세계 5위권 스마트폰업체 중국 비보는 자사 5세대 이동통신 스마트폰에 삼성전자 엑시노스 통합칩셋을 넣는다고 발표했습니다.
잘 나가던 엑시노스가 '이상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건 갤럭시S20(사진) 출시 때부터입니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가 갤럭시S20 국내 모델에도 '스냅드래곤865' 통합칩셋을 탑재했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 프리미엄 스마트폰 국내 모델에 엑시노스가 빠진 건 사실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삼성은 유럽과 남미에 출시한 갤럭시S20에만 '엑시노스 990'을 넣었습니다. 업계에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고 합니다. 한국 퀄컴 고위 관계자도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국은 물론 미국 본사에서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고 얘기했을 정도니까요. 이 사건을 놓고 삼성 안팎에선 다양한 얘기가 흘러나옵니다. 기본적으론 이번 '엑시노스990'의 성능이 기대에 못 미쳤다는 평가가 많이 나옵니다. 시스템LSI사업부 임직원들이 '굴욕적'이라고 느낄만한 소문도 쏟아집니다.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 관계자들이 무선사업부에 찾아가서 읍소했지만 결정을 뒤집을 수 없었다', '시스템LSI사업부가 당연히 사줄 줄 알고 안이하게 대처하다가 망신을 당했다' 류의 얘기입니다. 최근엔 '삼성전자가 결국 엑시노스를 접을 것이다'라는 극단적인 예상이 나오기도 합니다.
통합칩셋 개발과 판매에 공들여온 삼성전자의 행보를 감안할 때 삼성이 엑시노스를 접을 가능성은 극히 작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관측입니다. 실제 삼성전자는 특허권을 무기로 통합칩셋 외부 판매를 막았던 퀄컴과 법원에서 다툼을 벌일 정도로 통합칩셋 사업에 애착이 큽니다. 이제 비보 등 중국 스마트폰 업체에 '외부 판매'를 시작하고 수익을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업을 접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만약 엑시노스를 접게 되면 퀄컴과의 '가격협상'도 포기해야합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엑시노스는 삼성전자와 퀄컴 간 가격협상 때 '무시할 수 없는 지렛대'가 된다는 게 반도체업계 사람들의 공통된 얘기입니다. 삼성전자가 정말 엑시노스 사업에서 철수를 한다면, 무서워질 게 없는 퀄컴은 당연히 가격 인상 등 더 큰 요구를 던지지 않을까요.
세계적인 통신칩 강자 퀄컴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큼 성장한 것에 대해선 많은 업계 관계자들이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에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다만 '철수설' 같은 굴욕적인 루머를 누르고 뛰어오르기 위해선 지금까지 해왔던 것보다 더 큰 노력이 필요할 듯 합니다.
회사도 직원들의 얘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 직원들 사이에선 'R&D 인력 보강', '중장기적 관점의 대규모 투자' 등에 대한 요구가 크다고 합니다. 퀄컴 화웨이의 5분의 1, 10분의 1 수준 인력과 투자를 감안할 때 이정도까지 올라온 게 '기적'이란 얘기입니다. D램, 낸드 같은 '메모리반도체'의 가격 변동에 삼성 반도체사업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선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반도체)에 대한 투자가 필수적입니다. 삼성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4월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고 2030년까지 통합칩셋, 이미지센서, 파운드리 같은 시스템반도체 사업에 133조를 투자한다고 발표했을 정도니까요. 이제 1년이 지났습니다. 쉽지 않은 '장기전'이 될테지만 삼성전자가 선전하길 기대해봅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