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여파로 클럽하우스 식당, 사우나 등 다중시설 이용객은 줄어든 반면 홀로 연습하는 골프연습장 이용 골퍼는 크게 늘었다. 수도권의 한 연습장 대기실이 사람으로 붐비고 있다.  조희찬 기자
코로나19 여파로 클럽하우스 식당, 사우나 등 다중시설 이용객은 줄어든 반면 홀로 연습하는 골프연습장 이용 골퍼는 크게 늘었다. 수도권의 한 연습장 대기실이 사람으로 붐비고 있다. 조희찬 기자
“벙커 정리 안 하셔도 돼요. 요새는 그냥 놔두는 게 매너예요.”

골프 ‘밴드’를 운영하는 이윤재 씨는 최근 경기도의 한 골프장을 찾았다가 캐디로부터 이 같은 말을 들었다. 벙커에서 샷을 한 뒤 고무래로 정리하려 하자 캐디가 다급히 그를 멈춰세운 것이다. 그는 “대부분의 벙커가 정리돼 있지 않았다”며 “이후 정리되지 않은 벙커의 움푹 파인 발자국에 공이 떨어지면 동반자들끼리 알아서 빼고 치기로 동의했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맞춰 ‘주말 골프’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접촉을 최소화하고 안전하게 골프를 즐기자는 ‘코로나 골프’가 유행이다.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R&A마저 이 같은 흐름에 동참할 정도다. 세계 골프 규칙을 관장하는 R&A는 최근 골프장들에 고무래를 비치하지 않거나 사용을 금지해도 된다고 허용했다.

‘이중 홀컵’에 ‘그린 위 링홀컵’까지 등장

"벙커 정리 안하고…18홀 내내 마스크 골프…웬만하면 OK"
골프장들도 골퍼 간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열 체크’는 기본이고 당일 취소도 받아주는 곳이 늘어나는 추세다. ‘라커룸 사용하지 않기’ ‘집에서 옷 입고 오기’ ‘식사 건너뛰기’ 등 골퍼들의 자체적인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불안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경기 중에도 접촉을 최소화하는 ‘코로나 맞춤 골프’를 적극 권하고 있다. 충북 충주의 시그너스CC는 캐디들을 통해 방문객에게 고무래 사용을 자제해 달라고 부탁한다. 또 깃대를 꽂고 플레이하고, 홀에서 공을 집을 때도 장갑 낀 왼손을 사용하라고 권한다. 시그너스CC 관계자는 “클럽하우스에 출입하는 모든 인원의 열을 재고 매 시간 클럽하우스를 소독하고 있다. 플레이 상황에서도 감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 중”이라며 “R&A 가이드를 최대한 활용해 안전한 골프가 가능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 스카이72GC는 ‘오케이 존’을 적극 활용 중이다. 홀에 공을 넣어 홀아웃하지 않아도 홀아웃으로 간주하는 ‘오케이 문화’를 위해 스카이72GC는 홀 주위에 반지름 80㎝의 실선을 그려놨다. 이 선에 들어갈 경우 동반자들이 합의하면 컨시드를 받는다. 스카이72GC 관계자는 “레이크와 클래식 코스에 그려놨던 오케이 존을 사용하는 골퍼가 늘어났다”며 “18홀 내내 마스크를 벗지 않는, 마스크 골프를 하는 팀도 요즘 생겨났다”고 전했다.

해외에선 골프공을 홀에 넣지 못하도록 조치하는 골프장도 나타나고 있다. 공을 넣으면 대개 깃대와 홀컵을 건드려야 해 바이러스에 감염될 우려가 있다고 여기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홀컵 윗부분을 그린보다 위로 올라오게 만들어 공이 닿으면 홀인으로 인정하는 새로운 문화가 생겼다. R&A가 발표한 지침에도 ‘원통은 반드시 표면으로부터 최소 1인치(25.4㎜) 아래 묻혀야 한다는 규정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적혀 있어 문제가 없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발렌타인CC 등이 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미국 파인허스트CC는 홀 안에 또 다른 ‘미니 홀’을 설치했다. 지름 2인치, 높이 2.5인치의 폴리염화비닐(PVC) 재질의 파이프를 홀에 넣어 공이 깊숙이 들어가는 것을 방지한다. 깃대를 제거하지 않고도 쉽게 공을 꺼낼 수 있다.

코로나19 특수는 북쪽 골프장만?

코로나19 직격탄을 예상했던 골프장들은 ‘예상 밖 선전’으로 놀라는 기색이 역력하다. 경기 북부 지역 골프장 지배인은 “단체팀이 뭉텅이로 빠져나간 자리를 개별 팀이 삼삼오오 와서 거의 다 메워주고 있다”며 “골프장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야외활동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나름대로 안전수칙을 지키면 괜찮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골프 예약 사이트 엑스골프(XGOLF)에 따르면 3월 둘째 주 ‘예약 확정 건수’는 7437건으로 지난해 6502건을 넘어서며 ‘증가세’로 돌아섰다. 셋째 주(8286건)도 지난해 같은 달 확정 건수를 웃돌았다. 해외 골프파의 국내 유입 수요가 골프장들의 예상 밖 호황을 설명하는 한 요소라는 분석도 나온다.

골퍼들이 일부 지역에만 집중되는 ‘쏠림 현상’은 코로나19 특수의 또 다른 이면이다. 엑스골프에 따르면 지난 1~3주 예약 2만8626건 중 경기 지역이 전체 예약 건수의 76%를 차지했다. 두 번째로 예약 건수가 몰린 충청권(12.6%·4758건)을 더하면 88%가 경기와 충청 지역 골프장에 집중됐다는 뜻이다.

반면 영남, 호남, 제주 등 남부권 일부 골프장은 주말에도 예약률이 20%를 넘기지 못하는 등 상황이 녹록지 않다. 비행기 등을 이용해야 해 이동 시간이 긴 제주도는 ‘직격탄’을 맞았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제주의 골프·호텔 매출은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본격화한 뒤 평균 50%로 감소했다. 호텔 예약률은 예년의 20% 수준이다. 엑스골프는 “3월 셋째 주 제주 골프장 예약 건수는 총 71건으로 지난해 125건보다 절반 가까이 줄었다”고 전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