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코로나가 일깨운 '동양적 가치'
동양에 대한 서양의 오해와 왜곡은 뿌리 깊다. 근대철학의 완성자라는 헤겔조차 ‘동양적 전제주의’라는 말을 자주 썼다. 동양은 ‘미성숙하고 무능력한 저급 사회’라는 게 헤겔의 시각이었다. 역사는 ‘동양세계→그리스·로마세계→게르만세계’의 순으로 발전한다고도 했다.

이런 인식은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를 맞아 식민지 쟁탈전으로 이어졌다. 당시 영국 총리 디즈레일리는 “동양은 평생을 바쳐야 하는 사업”이라며 식민정복의 야망을 거침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역사적 사실로 보면 동양에 대한 서양의 비하는 근거를 찾기 어렵다. 영국학자 조지프 니덤은 “18세기 후반까지 중국은 문학·예술은 물론 과학기술에서도 서구를 앞섰다”고 결론 냈다. 경제사학자들의 GDP 연구결과도 비슷하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동양을 감정적·나약함으로 파악하는 서구 인식을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비판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서양의 추월은 아편전쟁(1840~1842) 무렵부터다. 힘 한번 못쓰고 중국이 패하자 아시아에서는 서양 따라하기가 본격화됐다. 그러다 중국은 사회주의로, 탈아론(脫亞論)에 취한 일본은 세계전쟁으로 치달았다. 이 땅에서는 서재필 이승만 등이 기독교적 자유주의를 태동시켰고, 춘원은 민족개조론을 주장했다.

20세기 역사는 동양의 서구 콤플렉스 극복기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서구적 사고는 진리로 떠받들어진 반면 동양학은 학문적 체계 없는 바람소리 물소리 정도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았다.

초유의 ‘코로나 사태’가 개인·개방이라는 서구 가치에 회의를 던졌다. 선진국이라던 미국과 유럽은 기록적인 감염사태가 벌어지며 사회통제력이 무너지는 모습이다. 반면 발병지 중국에 인접한 싱가포르 홍콩 대만 베트남 캄보디아 몽골 등 아시아 국가들은 발병자 1000명, 사망자 5명을 밑돈다. 미국 타임지는 ‘대만 싱가포르 홍콩에서 배워야 한다’는 장문의 기사를 싣기도 했다. 자연스레 자조 협동에 기반한 아시아의 공동체적 가치가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동양이 위대하다’거나 ‘서구는 한계에 달했다’는 식의 속단은 금물이다. 동양적 전제주의의 수렁으로 더 깊이 빠져든 중국, 탈아를 외쳤지만 아시아적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한 일본의 한계도 분명하다. 동양적 균형과 서구적 합리를 조화시킬 잠재력을 지닌 한국의 자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