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록 첫 공개…'약속한 은행차관 절반 제공해야 수교·총 6억5천만 달러 경협'
동유럽 최초 헝가리와의 수교 비화 공개…헝가리 최초 요구액은 15억달러
북한 의식해 상주대표부 합의하고도 발표 미뤄…북, 대사 소환하며 강력 반발
[외교문서] 북방외교 막전막후…헝가리와 수교위해 1억2천500만달러 건네
88서울올림픽 개최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활발한 북방외교를 펼쳤던 노태우 정권이 1989년 2월 동유럽 최초로 헝가리와 수교하기 위해 1억2천500만 달러의 은행차관을 제공한 사실이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한국이 헝가리와 수교 협상 과정에서 거액의 경제협력 자금을 약속한 점은 알려졌었지만, 그 규모가 6억5천만 달러에 이르고 한국이 차관을 제공한 뒤에야 수교가 가능한 상황이었다는 점이 정부 문서를 통해 드러난 건 처음이다.

31일 공개된 1988∼1989년 외교문서를 보면, 한국과 헝가리는 두 차례의 협상 끝에 1988년 8월 12일 '상주대표부를 설치하고 그 이후 수교 교섭에 들어간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합의 의사록'에 서명했다.

박철언 당시 대통령 정책보좌관과 바르타 페렌츠 당시 헝가리 국립은행 총재가 서명한 의사록 6항에는 '양측은 상주대표부가 설치된 후에 양국 간 외교관계 수립에 의한 쌍무관계 정상화를 위한 교섭을 시작하기로 합의했다'고 돼 있다.

그러면서 7항에 '양측은 대한민국이 8항 (a)호 (ⅴ)에 규정된 경제협력계획의 약속을 50% 이행했을 때에 6항에 언급된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데 합의했다'고 적시돼있다.

8항은 경협에 대한 사항으로, (a)호에는 '한국 정부는 헝가리 측에게 미화 6억5천만 달러에 달하는 아래의 경제협력을 제공한다'고 적혀있고 다섯 가지 지원 방안 중 맨 마지막인 (ⅴ)는 '2억5천만 달러 규모의 은행차관'이다.

즉, '한국이 헝가리와의 외교관계 수립을 위해 6억5천만 달러의 경협자금을 제공하고, 특히 약속한 은행차관의 절반인 1억2천500만 달러를 헝가리에 제공한 뒤에야 수교한다'는 내용이 명문화된 것이다.

이 '합의 의사록'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6억5천만 달러의 나머지는 ▲직접투자 자금지원 2억 달러 ▲연불수출(일종의 외상수출) ▲전대차관 2천500만 달러 ▲대외경제협력기금 5천만 달러 등이다.

[외교문서] 북방외교 막전막후…헝가리와 수교위해 1억2천500만달러 건네
한국은 실제 1억2천500만 달러 규모의 은행 차관 집행을 결정한 뒤에야 헝가리와 수교를 할 수 있었다.

한국은 1988년 12월 14일 외환은행과 산업은행 등 8개 은행이 헝가리 중앙은행에 1억2천500만 달러 규모의 차관을 제공한다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고, 양국은 이듬해 2월 1일 수교했다.

헝가리는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북한과의 관계를 의식해 한국과의 수교에 소극적이었지만, 경제난이 심화하자 태도를 바꿨다.

경협 문제가 양국 간 수교의 핵심 조건이었음은 다른 외교문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수교 협상이 본격화하기 직전인 1988년 6월 국가안전기획부가 마련한 보고서를 보면 "헝가리가 한국에 차관과 투자를 요청하고 있다"면서 "헝가리 측 제시 액수는 한국 경제 규모에 비해 부담 가는 규모"라고 지적했다.

1988년 7월 5일 부다페스트에서 시작된 1차 협상에서도 한국이 제공할 경협 규모가 최대 쟁점이었다.

당시 박철언 대통령 정책보좌관이 이끈 협상팀이 "헝가리는 한국이 경협에 성의를 보이면 무역사무소 교환에 합의한다는 막연한 방침"이라며 "헝가리가 서울올림픽 참가 조기 결정, 무역사무소 설치 등을 이유로 경협만을 고집해 조기 귀국해야 한다는 게 대표단 분위기"라고 보고할 정도였다.

협상팀이 손으로 쓴 보고서에 따르면, 헝가리가 최초 요구한 경협자금은 15억 달러였고, 한국은 4억 달러로 맞섰다.

이후 헝가리는 10억 달러, 8억 달러로 차츰 요구액을 낮췄고 8월 9일부터 열린 2차 회의에서 6억5천만 달러로 합의한 것으로 파악된다.

정부는 협상 전 작성한 보고서에서 헝가리의 경협 제공 요구에 응하면 '다른 국가와의 수교 및 경협 확대 시 동종 요구 가능성'이라고 우려했는데, 실제 한국은 그해 11월 폴란드와 수교하면서도 4억5천만 달러의 경협을 제공해야 했다.

[외교문서] 북방외교 막전막후…헝가리와 수교위해 1억2천500만달러 건네
한편 한국과 헝가리가 수교 과정에서 북한을 크게 의식한 정황도 외교문서에 잘 나타나 있다.

양국은 1988년 8월 26일 상주대표부 설치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지만, 이를 발표한 것은 9월 13일이다.

이는 헝가리의 요구에 따른 것으로, 합의 사흘 전인 8월 23일에 김일성의 아들이자 김정일의 이복동생인 김평일이 주헝가리 대사로 부임해 신임장을 제정한 데다 북한 9·9절(정권수립일)에 헝가리 대표단이 방북해야 하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북한은 한국과 헝가리의 상주대표부 설치 합의 발표 이후 강력히 반발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헝가리를 향해 "사회주의에 대한 배신행위"라며 단교까지 시사했고, 김평일 대사는 정부 소환에 따라 귀임했다.

또 헝가리와의 외교관계를 대사대리로 격하할 것을 통보했다.

헝가리도 북한에 공관원 축소, 비자면제협정 폐기 등으로 맞대응하면서 양국관계는 한동안 크게 냉랭했다.

그러나 북한도 한국과 동유럽 국가와의 수교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임을 인식했는지 한국이 폴란드와 수교할 때에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당시 수교 직후 폴란드 외교차관은 한국 외교장관과 면담한 자리에서 "수교 계획을 약 2주 전 주폴란드 북한대사를 통해 알려줬는데 예상과는 달리 그렇게 강하게 반발하지 않고 수교 연기만 요청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