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김지아나 씨가 한경갤러리 초대전 ‘영혼의 집’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Yellow inside yellow’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아티스트 김지아나 씨가 한경갤러리 초대전 ‘영혼의 집’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Yellow inside yellow’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종잇장처럼 얇고 예리한 조각들이 입체감을 드러내며 캔버스에 빼곡히 박혀 있다. 조각들은 때론 직선으로, 때론 휜 채 서로 기댄다. 바탕에는 자잘한 조각들이 무수히 깔려 있다. 손을 대면 감자칩처럼 바스락 하고 부서져버릴 것 같은 조각들은 사실 견고한 도편(陶片)들이다. 입자가 곱고 미세한 도자용 흙(포슬린)에 물감을 섞어 얇게 편 다음 섭씨 1200도 이상의 가마에서 구워낸 것이다.

작품의 재료를 만드는 과정부터 지난하다. 작품의 드로잉에 따라 미리 곡선의 형태를 잡고 구워내기도 하고, 잘게 부순 뒤 쓰임새에 따라 구멍의 크기가 다른 체로 걸러내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그런 다음 캔버스에 자잘한 도편들을 붙이고, 그 위에 입체감을 드러낼 큰 도편들을 세우고 눕힌다. 완성된 작품은 빛의 방향과 양에 따라,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제각각의 느낌을 자아낸다. 빛을 투과하는 세라믹의 특성 때문이다.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 한경갤러리에서 지난 30일 개막한 ‘아티스트 김지아나 초대전-영혼의 집’에 걸린 작품들이다. 김지아나 씨(48)는 흙으로 빛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작가다. 뉴욕 파슨스디자인스쿨과 몽클레어주립대 대학원에서 공부한 뒤 서울대 미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파슨스디자인학교 때 작품의 재료로 흙을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작가가 새로운 재료를 만나는 것은 새 친구를 사귀는 것과 같아요. 그전에 드로잉, 잉크, 안료 등 여러 재료를 사귀었는데 흙이 먼저 내게 다가왔죠. 처음엔 흙의 성질(물성)을 공부하는 데 몰입했고, 그후 흙으로 표현하기 시작했어요. 분위기에 따라 창을 해야 할지, 가요나 팝송을 부를지 달라지는 것처럼 재료에 따라 표현 방법이 달라지니까요.”

그가 흙을 좋아하는 것은 흙은 생명의 시작이자 끝이기 때문이다. 흙이 가마에서 불을 만나면 세라믹이라는 새로운 재료가 된다. 자연과 인간의 합(合)으로 완성된 작품은 저마다 다른 캐릭터의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도편 작업들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우리 일상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도편 작품은 겉으로는 화려하고 예뻐보이지만 세라믹 조각들은 단단하고 날카롭죠. 그런 세라믹이 캔버스에 서로 기댄 채 꽂혀 있어요. 사람들이 서로 기대어 사는 것처럼요. 세라믹으로 외면의 화려함 이면에 깃든 불안감과 깨질 것 같이 여린 심성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서울 가락동에 있는 김씨의 작업실에는 세라믹을 구워내는 가마가 세 개 있다. 처음엔 세라믹을 깨서 체로 거른 다음 사용했으나 지금은 드로잉에 따라 맞춤형으로 구워낸다. 그는 “세라믹을 소성하고 접착하는 실험을 3년 동안 한 끝에 2017년부터 ‘인사이드’ 시리즈가 탄생했다”며 “이제는 나름 달인이 돼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레고블록을 조립하듯 재미있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는 ‘인사이드’ 시리즈와 ‘임팩트’ 시리즈 작품 24점을 걸었다. 백흑적청황(白黑赤靑黃)의 오방색을 기본으로 한 세라믹과 빛의 변주가 오묘한 색의 향연을 펼친다. 임팩트 시리즈는 사각이나 원형의 평면 위에 반구(半球) 모양의 ‘포슬린 볼(porcelain bowl)을 올린 것. 물이나 신선한 우유가 튈 때 생기는 크라운 같은 것이 볼의 가장자리에 있어서 동적인 느낌을 준다. 안정된 평면에서 우연하고 동적인 임팩트의 시간을 포착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며 흙의 무한한 조형적 가치를 입증해 보이고 있는 김씨는 ‘흙의 회화’의 개척자, ‘흙의 연금술사’라고 불린다. 벨기에의 세계적인 문화예술 후원단체인 보고시앙재단은 지난해 김씨를 아시아 최초의 레지던시 작가로 선정하고 이 재단의 빌라엉팡미술관에 작품을 소장하고 전시회도 열었다. 그의 재료와 표현, 콘셉트의 독창성을 인정한 결과였다.

도편이 캔버스에서 떨어지거나 깨지면 어쩌나 싶은데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입체회화의 매력은 자연광에 의해 계속 이미지가 변하므로 같은 게 없다는 점이죠. 작품에서 도편이 떨어지는 것도 작가의 의도이자 작품의 과정입니다. 걱정 마세요.” 전시는 오는 23일까지.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