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글로벌 호구' 방역외교, 더는 안 된다
#1. “한국이 왜 그런 ‘오버’를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경위를 알아보고 대응 조치를 취하라.” 중동 산유국가인 A국의 한국 주재 대사는 얼마 전 본국으로부터 이런 업무 지시를 받았다. 전해 들은 내용이 황당했다. A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한국인 입국제한 조치를 발표하자 한국 대사가 이 나라 총리를 찾아가 항의했다는 것이다. 항의 내용은 차치하고, 일개 대사가 해당국의 외교부를 건너뛰고 냅다 총리실로 쳐들어간 행태에 A국은 질겁했다.

한국에서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급증하자 한국을 입국제한 국가로 선포하는 나라가 꼬리를 물고 있다. 170개국이 넘는다. A국은 그중 한 나라였다. 한국에 주재하는 외국 대사가 우리나라 총리에게 이와 비슷한 일을 했다면 우린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라(易地思之)’는 세상 이치의 기본이다. 외교의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관례를 넘어선 행동이 역효과를 낸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걸 모를 리 없는 한국 정부와 엘리트 외교관들이 여유를 잃은 채 허둥대고 있다.

#2. ‘흰옷 입은 영웅’ 의사들이 폭발 일보 직전이다. 코로나19 퇴치의 최전선을 이끌고 있는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이 엊그제 내놓은 호소문은 읽는 이들을 한숨부터 나오게 한다. “이제라도 외국인 입국을 금지해주기 바란다. 우리 국민을 치료하기도 힘들고 의료진도 지쳤다.” 백경란 이사장은 “다른 나라는 이미 한국을 막았으니 상호주의에 입각해 금지해 달라. 외국인이 치료받으러 일부러 국내에 들어온다고 한다”는 말도 했다. 외교의 또 다른 기본인 ‘상호주의 원칙(principle of reciprocity)’을 정부가 아니라 민간인 의사 입에서 듣게 된 것, 이게 한국 외교의 현실이다.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코로나 발병률이 높은 나라들로부터 입국자를 차단하는 것은 국민 안위(安危)의 문제다.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덕분에 국내 감염 사례는 줄고 있지만, 해외 입국자발(發) 감염이 큰 걱정거리로 떠올랐다. 지난 29일 국내 확진 환자 78명 가운데 29명이 해외 유입 감염자였다. 해외 유입이 ‘코로나 3차 유행’의 뇌관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코로나 발원지인 중국은 물론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스위스 영국 일본 등 대부분 선진국에서 확진 환자가 급증하면서 어느 나라로부터의 입국자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중국이 모든 해외로부터의 입국을 전면 차단하는 초강수를 두고, 일본이 최우방 국가인 미국에 대해서까지 입국제한 조치를 하기로 한 이유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 정부만 입국제한 조치에 등을 돌리고 있다. ‘감염원 차단’ 요구가 빗발치자 동원한 조치가 ‘모든 해외 입국자 2주간 의무격리와 검진’이다. 원천적인 입국제한과 달리 이런 조치를 취하는 데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간다. 정부 시설을 격리 장소로 이용하는 외국인에게 비용을 받겠다지만 검진과 치료 비용은 한국 정부가 부담해준다. 세상에 이렇게 외국인에게까지 퍼주는 나라는 전 세계에 한국뿐이다. 배타적 국수주의를 주장하자는 게 아니다. 다른 나라는 그렇게 하지 않는데 왜 한국만 그러는 건지, 그래야 할 당위성이 있는 건지 제대로 짚어는 봐야 한다.

“우리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높은 만큼 해외 문호를 최대한 열어둘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터무니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것이 ‘무작정, 나 홀로 개문(開門)’을 고집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한국보다 대외 거래 비중이 훨씬 높은 싱가포르 대만 등도 강력한 입국통제 조치를 발동하고 있다. 경제활동을 위해 불가피한 입출국에 대해서는 해당국 정부와의 막후 조율을 통해 길을 터주는 방법이 있다. 그런 일을 해내라고 정부가 있는 것 아닌가.

기껏 베풀어주고도 고맙다는 말을 듣기는커녕 “저 친구, 참 헤프다”는 얘기를 듣는 것만큼 허망한 일은 없다. 한국에 들어온 영국인과 독일인이 확진 판정을 받은 상태에서 곳곳을 활보할 정도로 외국인 관리에도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무엇을 위한 외교,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묻게 하는 일이 너무 많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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