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칼럼] 정부만 잘하면 된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의료진·시민·기업 '70일 사투'
확진 1만명…정부 잘했다 못해
'방역모범'은 전적으로 국민 덕
이런 일류 국민·기업의 정부면
공약집 덮고 '빈사 경제' 살려야
오형규 논설실장
확진 1만명…정부 잘했다 못해
'방역모범'은 전적으로 국민 덕
이런 일류 국민·기업의 정부면
공약집 덮고 '빈사 경제' 살려야
오형규 논설실장
평소 당연하던 것이 없거나 못하게 될 때 더 아쉽다. 함께 일하고 웃고 먹고 마시고 즐기던 일상의 소중함을 망가진 뒤에야 뼈저리게 실감한다. 활짝 핀 봄꽃들이 올해 유난히 더 화사해 가슴 시리게 다가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첫 확진자 발생 후 벌써 70일이 흘렀다. 의료진의 사투와 시민들의 성숙한 대처를 세계가 괄목하고 있다. 지치고 힘들고 화가 나도 서로 어깨를 다독이며 “함께 이겨내자!”고 격려한다. 콧대 높던 미국과 유럽 선진국이 연일 ‘방역 모범국’이라고 경탄하고 추켜세우는 진짜 이유다.
유독 한국에서 사재기가 없는 것도 정부를 믿어서가 아니다. 세계 최고의 배달 시스템, 100m마다 있는 편의점, 위기 학습효과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그보다 각자 조심하고, 자제하고, 배려하고, 할 일을 할 것이라는 암묵적인 믿음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우리에게는 든든한 기업들이 있다. 정부가 심각성을 파악조차 못할 때 미리 대비한 씨젠 웃샘 같은 작은 벤처기업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켜켜이 쌓인 규제만 풀어주면 날아오를 신(新)산업 분야 기업이 부지기수다. ‘동학개미운동’을 벌이는 개미들도 정부보다는 삼성전자를 더 신뢰하지 않나.
이런 국민과 기업의 나라에서 과연 정부는 제 역할을 했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사태 초기에 섣부른 조기 종식론과 ‘짜파구리 오찬’의 대가는 국민이 대신 비싸게 치렀다. 마스크 배급에 이어 소상공인 긴급자금 신청에 또 줄 세우기를 연출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행정기관이 맡아야 할 공적 마스크 배분을 약사들에게 떠넘겨 욕받이로 삼은 걸 보면 역시 ‘공무원 천국’답다.
70일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확진자 수 2위에서 14번째 나라가 됐다. 우리 앞에 ‘30-50클럽(인구 5000만 명, 1인당 소득 3만달러 이상)’이나 유럽 선진국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국내 확진자가 9887명, 사망자가 168명(치명률 1.7%)에 달한다. 일찍 닫아건 대만은 확진자 322명, 사망자 5명에 불과하다.
검사를 빨리 한 것 말고 정부가 잘했다고 할 게 없다. “우리가 50점인데 다른 나라는 30점도 안 돼서”(기모란 국립암센터 교수) 상대평가 점수는 좀 받고 있다. 하지만 해외 유입 문제는 의료진을 번아웃으로 몰고, 소규모 집단감염은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은 연일 자화자찬이다. 칭찬은 남이 해주는 것 아닌가.
소득 하위 70%에 100만원(4인 가구)을 준다는 긴급재난지원금 결정 과정을 보면 또 한번 암담해진다. 나라 곳간을 책임지는 경제부총리가 한 일은 “기록에라도 (반대) 의견을 남겨달라”는 게 다였다. 총선을 앞두고 지원 기준 논란을 키워 “이럴 바엔 다 줘라” 하는 여론을 조성하려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코로나발 복합경제위기에 대처할 능력이 있느냐다. 세계 경제가 호황일 때도 나 홀로 불황에 빠뜨린 ‘마이너스의 손’ 아닌가. 여태껏 적폐청산과 소득주도성장, 주 52시간 근로제, 탈원전 등으로 민간의 사기와 체력을 바닥낸 것 말고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지난 3년간 정부의 정책 실패는 코로나로도 덮기 쉽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 냉정한 평가는 인터넷 댓글에 함축돼 있다. “외교 모르는 외교부 장관, 성질만 내는 복지부 장관, 부동산 모르는 국토부 장관, 법 안 지키는 법무부 장관, 경제 수치 모르는 경제수석….”
게다가 장관과 청와대 참모들이 마스크 대책으로, 재난지원금으로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도 참으로 민망하다. 본업이 경제위기 대처인지, 정권 이미지 관리인지 헷갈린다. 대기업들조차 단기자금 시장을 기웃거리고 현금 확보에 초비상인데 금융당국은 보이지도 않는다. 뭐가 시급한지, 뭘 해야 하는지 아는 위기 전문가가 없는 탓이다. 바둑 아마추어 100명, 1000명이 합쳐도 이창호 한 명을 못 이긴다.
공동체와 나라 경제를 사수하려는 국민과 의료진, 기업이 있는 한 언젠가는 코로나를 이겨낼 것이다. 정부도 헛된 대선 공약집부터 덮고, 언제 끝날지 모를 복합위기 극복에 진정성 있게 명운을 걸어야 한다. 그럴 자신 없으면 전문가들에게 자리를 넘기는 게 돕는 길이다. 정부만 잘하면 된다.
ohk@hankyung.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첫 확진자 발생 후 벌써 70일이 흘렀다. 의료진의 사투와 시민들의 성숙한 대처를 세계가 괄목하고 있다. 지치고 힘들고 화가 나도 서로 어깨를 다독이며 “함께 이겨내자!”고 격려한다. 콧대 높던 미국과 유럽 선진국이 연일 ‘방역 모범국’이라고 경탄하고 추켜세우는 진짜 이유다.
유독 한국에서 사재기가 없는 것도 정부를 믿어서가 아니다. 세계 최고의 배달 시스템, 100m마다 있는 편의점, 위기 학습효과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그보다 각자 조심하고, 자제하고, 배려하고, 할 일을 할 것이라는 암묵적인 믿음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우리에게는 든든한 기업들이 있다. 정부가 심각성을 파악조차 못할 때 미리 대비한 씨젠 웃샘 같은 작은 벤처기업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켜켜이 쌓인 규제만 풀어주면 날아오를 신(新)산업 분야 기업이 부지기수다. ‘동학개미운동’을 벌이는 개미들도 정부보다는 삼성전자를 더 신뢰하지 않나.
이런 국민과 기업의 나라에서 과연 정부는 제 역할을 했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사태 초기에 섣부른 조기 종식론과 ‘짜파구리 오찬’의 대가는 국민이 대신 비싸게 치렀다. 마스크 배급에 이어 소상공인 긴급자금 신청에 또 줄 세우기를 연출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행정기관이 맡아야 할 공적 마스크 배분을 약사들에게 떠넘겨 욕받이로 삼은 걸 보면 역시 ‘공무원 천국’답다.
70일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확진자 수 2위에서 14번째 나라가 됐다. 우리 앞에 ‘30-50클럽(인구 5000만 명, 1인당 소득 3만달러 이상)’이나 유럽 선진국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국내 확진자가 9887명, 사망자가 168명(치명률 1.7%)에 달한다. 일찍 닫아건 대만은 확진자 322명, 사망자 5명에 불과하다.
검사를 빨리 한 것 말고 정부가 잘했다고 할 게 없다. “우리가 50점인데 다른 나라는 30점도 안 돼서”(기모란 국립암센터 교수) 상대평가 점수는 좀 받고 있다. 하지만 해외 유입 문제는 의료진을 번아웃으로 몰고, 소규모 집단감염은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은 연일 자화자찬이다. 칭찬은 남이 해주는 것 아닌가.
소득 하위 70%에 100만원(4인 가구)을 준다는 긴급재난지원금 결정 과정을 보면 또 한번 암담해진다. 나라 곳간을 책임지는 경제부총리가 한 일은 “기록에라도 (반대) 의견을 남겨달라”는 게 다였다. 총선을 앞두고 지원 기준 논란을 키워 “이럴 바엔 다 줘라” 하는 여론을 조성하려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코로나발 복합경제위기에 대처할 능력이 있느냐다. 세계 경제가 호황일 때도 나 홀로 불황에 빠뜨린 ‘마이너스의 손’ 아닌가. 여태껏 적폐청산과 소득주도성장, 주 52시간 근로제, 탈원전 등으로 민간의 사기와 체력을 바닥낸 것 말고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지난 3년간 정부의 정책 실패는 코로나로도 덮기 쉽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 냉정한 평가는 인터넷 댓글에 함축돼 있다. “외교 모르는 외교부 장관, 성질만 내는 복지부 장관, 부동산 모르는 국토부 장관, 법 안 지키는 법무부 장관, 경제 수치 모르는 경제수석….”
게다가 장관과 청와대 참모들이 마스크 대책으로, 재난지원금으로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도 참으로 민망하다. 본업이 경제위기 대처인지, 정권 이미지 관리인지 헷갈린다. 대기업들조차 단기자금 시장을 기웃거리고 현금 확보에 초비상인데 금융당국은 보이지도 않는다. 뭐가 시급한지, 뭘 해야 하는지 아는 위기 전문가가 없는 탓이다. 바둑 아마추어 100명, 1000명이 합쳐도 이창호 한 명을 못 이긴다.
공동체와 나라 경제를 사수하려는 국민과 의료진, 기업이 있는 한 언젠가는 코로나를 이겨낼 것이다. 정부도 헛된 대선 공약집부터 덮고, 언제 끝날지 모를 복합위기 극복에 진정성 있게 명운을 걸어야 한다. 그럴 자신 없으면 전문가들에게 자리를 넘기는 게 돕는 길이다. 정부만 잘하면 된다.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