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제품 역사 쓴 삼성 LCD사업, 30년 만에 '역사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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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12.1인치 노트북패널, 40인치 벽걸이 TV 출시
세계 1위 'LCD 코리아' 뒷받침
1991년 이건희 회장 지시로 시작…30년 만에 '사업 중단'
중국 저가물량공세에 2017년 1위 내줘
"중국 따라올 수 없는 차세대 디스플레이에서 승부"
QD(퀀텀닷) 디스플레이로 '기술격차' 입증 예정
세계 1위 'LCD 코리아' 뒷받침
1991년 이건희 회장 지시로 시작…30년 만에 '사업 중단'
중국 저가물량공세에 2017년 1위 내줘
"중국 따라올 수 없는 차세대 디스플레이에서 승부"
QD(퀀텀닷) 디스플레이로 '기술격차' 입증 예정
"12.1인치는 필요 없다고 몇 번 얘기합니까!"
1995년 어느 날. 미국 대형 PC 업체 D사 구매팀 사무실에서 고성이 터져나왔다. 이상완 당시 삼성전자 LCD(액정표시장치)부문 총괄 부사장이 노트북 패널 도면을 건내자 D사 구매담당자가 소리를 지르며 찢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부사장이 당시 널리 쓰이던 11.3인치가 아닌 12.1인치 패널을 계속 권하자 짜증을 낸 것이다.
삼성이 12.1인치에 매달린 건 전략적 판단이었다. 당시 샤프, NEC 등 일본 LCD 업체들은 11.3인치를 내세워 전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후발주자였던 삼성전자에겐 '차별화'만이 살 길이었다.
삼성전자에 구원의 손길을 내민 건 뜻밖에도 세계 1위 노트북 업체 일본 도시바였다. "11.3인치는 화면이 작으니 12.1인치 노트북을 만들고 싶다"는 뜻을 전해온 것이다. 도시바가 채택하자 다른 노트북 업체들도 움직였다. 이상완 부사장에게 굴욕감을 안겨줬던 미국 D사에선 구매 담당 대표가 직접 삼성전자에 연락해 납품해줄 것을 읍소했다. 삼성전자 기흥 LCD 공장은 쉴새 없이 돌아갔다. 1998년 삼성전자는 10인치 이상 LCD 패널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살아남기 위해 시작한 12.1인치 노트북 패널, 이제는 세계 표준으로
1990년대 후반부터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을 주름 잡고 있는 삼성이 내년부터 LCD 사업을 중단한다. 1991년 LCD 사업을 시작한 지 약 30년 만이다. LCD는 반도체, 휴대폰과 함께 '삼성(三星)의 세 별'로 불리며 '글로벌 삼성'의 밑거름이 된 핵심 사업이다.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의 저가 물량공세에 LCD 시장이 '레드오션'으로 변하자 삼성은 차세대 제품으로 불리는 'QD(퀀텀닷)' 디스플레이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삼성전자 LCD 사업의 시작은 1991년으로 거술러 올라간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문에 이건희 회장(사진)의 지시로 'LCD연구개발팀'을 만든 게 시작이다. 이 회장은 초기 단계 시장이었던 'TFT(박막트랜지스터) LCD'에 주목했다. 1993년 삼성SDI의 전신 삼성전관의 LCD 조직을 삼성전자에 합쳐 역량을 강화했다. 미개척 시장에 투자를 늘리자 참모들은 "그룹 전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렸다. 이 회장은 끝까지 밀어 붙였다. '머지 않아 LCD가 핵심 사업이 될 것'이란 본인의 판단을 믿었기 때문이다.
1993년 12월 9.4인치 시제품을 만들었다. '희망'을 본 이 회장은 1994년 "2000년까지 TFT LCD에 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선언한다. 삼성전자의 행보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3500억원을 들여 경기 용인 기흥에 1995년 2월 LCD 1공장을 준공했다. 10.4인치 패널을 월 2만개 생산할 수 있도록 시설을 확충했다. 1995년 매출 1억달러를 기록했다.
일본 업체를 따라잡는덴 역부족이었다. 이 회장은 다시 결단을 내렸다. 당시 일반적이던 11.3인치 LCD 패널 대신 12.1인치를 전면에 내세우기로 한 것. 사장부터 사원까지 가리지 않고 전 세계 구매처의 문을 두드렸다. 그룹 LCD 사업을 망가뜨릴 수 있는 '도박'에 가까운 결정이었지만 삼성은 결국 해냈다. 도시바의 기적 같은 주문 덕분에 12.1인치는 전 세계 표준이 됐다.
1996년부터 주문이 쏟아졌다. 이 회장 1996년 4월 6일 '21세기를 위한 사장단 전략 세미나'를 열었다. 1993년 6월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3년 만에 사장단이 모인 전략세미나였다. 이 때 이 회장은 "매년 2억5000만달러 이상 투자해 세계 최대 LCD 업체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1997년은 LCD 암흑기였다. 일본 업체들이 삼성을 견제하기 위해 '저가 물량 공세'를 시작했다. 공급 과잉에 패널 가격은 뚝뚝 떨어졌다. 일본 업체들은 생산 시설을 확충하지 않았지만 삼성전자는 달랐다. 1997년 9대 신수종 사업에 LCD를 넣고 8000억원을 들여 충남 천안에 제3공장을 착공했다. 기흥 1·2공장과 함께 12.1인치 패널 월 9만대, 13.3인치 패널 월 18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한 것이다.
이 회장의 판단은 옳았다. 1998년 하반기부터 LCD 시장이 살아나기 시작한 것. 수요가 공급을 뛰어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LCD 생산공장은 계속 돌았다. 생산시설 확충과 투자를 주저했던 일본 업체들은 세계 1위 자리를 삼성전자에 내줬다. 1998년 삼성전자는 10인치 이상 대형 LCD 시장에서 세계 1위에 올랐다. 1999년에도 18.8%의 점유율로 1위를 수성하며 '실력'을 증명했다.
신제품도 쏟아졌다. 1999년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700만화소를 구현하는 24인치 LCD TV를 내놨다.
소니가 먼저 '합작' 요청…2000년대 '황금기' 달려 2000년대는 삼성 LCD 사업의 황금기로 꼽힌다. 벽걸이 TV용 LCD 패널을 대중화시켰고 '뚜께를 얇게 하는 경쟁'에서도 일본업체들을 압도하며 '세계 1위' 위상을 굳혔다.
특히 2004년은 삼성 LCD 역사에 있어 잊혀지지 않는 '영광의 순간'으로 꼽힌다. '경외의 대상'이었던 일본 소니가 삼성전자에 '합작사 S-LCD 설립'을 먼저 제안한 것이다.
S-LCD의 자본금은 2조1000억원이고 지분구조는 삼성전자가 50%+1주, 소니 50%-1주로 결정됐다. 최고경영자(CEO)는 장원기 당시 삼성전자 부사장이,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소니의 나카자와 게이지씨가 맡았다. 삼성이 실리와 명분을 모두 취한 계약이었다.
삼성 소니 모두 '윈윈'으로 평가됐다. 삼성은 대규모 물량 납품처를 확보했고, 소니 역시 안정적으로 패널을 조달할 수 있게 돼서다. 이윤우 당시 삼성전자 사장은 "소니의 LCD TV에 사용되는 TFT LCD 제품을 전량 공급할 수 있게 됨에 따라 TV용 TFT LCD 시장에서 40% 이상의 시장점유율 달성이 가능할 것"이라며 "이번 협력을 통해 기존 노트북, 모니터 제품에 이어 TV용 TFT-LCD 시장에서도 업계 1위가 가능해 졌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디스플레이산업에 대한 높은 관심도 S-LCD 시절 시작됐다는 게 삼성 안팎의 공통된 이야기다. 당시 삼성전자 상무였던 이재용 부회장은 S-LCD의 등기이사로 등재돼 경영에 적극 참여했기 때문이다.
첨단 제품 출시도 이어졌다. 2007년엔 두께 10mm의 40인치 LCD 패널을 세계 최초로 출시했다. 2008년 7월엔 7.9mm로 두께를 더 줄였다. 노트북에 널리 쓰였던 12.1인치 초슬림 LCD패널도 이 시기 삼성전자 LCD사업부의 작품이다.
노트북 패널 뿐만 아니라 TV LCD 패널 점유율도 수직상승한다. 2005년 삼성전자는 점유율 20%를 기록 샤프(18%)를 뒤집고 TV 패널 2위에 오른다(1위는 LG디스플레이). 2008년엔 LG디스플레이마저 꺾고 세계 1위를 달성한다. 한국업체 인수해 기술력 쌓은 중국 BOE, 최대 경쟁자로 부상
2010년대 들어 LCD시장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2010년 ‘치킨게임’(다른 업체들이 포기할 때까지 극단적인 경쟁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이 발발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디스플레이 패널 수요는 정체된 상황에서 중국 업체들이 잇따라 LCD 공장 가동에 나섰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삼성전자 LCD사업부가 1조원대 영업손실을 냈다는 추정이 나올 정도였다.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의 비상은 한국계 기업 '하이디스'에서 시작됐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하이디스는 옛 현대전자 TFT LCD사업부다. 현대전자는 김대중 정부 당시 '빅딜' 정책에 따라 15조원을 들여 LG반도체를 인수했지만 반도체 경기침체로 위기를 맞았다. 채권단은 LCD사업부 분리매각을 추진했고 이때 분사한 LCD사업부가 하이디스다. 2002년 하이디스는 4500억원 헐값에 현재 세계 1위 LCD 업체 중국 BOE에 팔려간다. 인수대금은 대부분 중국 정부에서 나왔다고 한다.
만년 적자기업이었던 BOE는 하이디스 인수를 계기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 이후 BOE의 전략은 1990년대 후반 삼성의 전략과 닮았다. 업황에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대규모 자금을 쏟아부어 생산시설을 확보했다. 2007년 9월엔 쓰촨성 청두에 생산라인을 설립했다. 허페이, 충칭 등에도 공격적으로 생산 거점을 만들었다. 2010년까지 총 투자액이 20조원에 달할 정도다. 2008년 금융위기는 중국 정부 지원에 기대 버텼다.
BOE는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보다 제품을 싸게 팔았다. 정부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서서히 시장을 잠식해 들어갔다. 2010년 1.7%에 불과했던 9인치 이상 대형 LCD패널 시장의 BOE 점유율은 2012년 5.5%를 기록했고 2015년엔 12.1%까지 올랐다. 그리고 2017년 21.5%를 기록, 삼성과 LG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삼성전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2012년 삼성전자는 LCD사업부를 '삼성디스플레이'로 분사시킨다. 시장 변화에 보다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LCD사업은 천천히 곪아갔다. 중국의 저가 공세로 계속 떨어지는 가격이 문제였다. 2018년 1월 106달러였던 43인치 LCD 패널 평균판매가격은 2019년 7월 77달러까지 곤두박질친다. 만들수록 손해인 상황에 삼성디스플레이도 어쩔 수 없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결국 지난해 하반기 월 9만장의 LCD패널을 생산했던 충남 아산사업장 8.5세대 LCD생산라인 등의 가동을 중단했다.
S-LCD 등기이사로 전면 나섰던 이재용 부회장, 'LCD사업 중단' 결단 올 들어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은 또 한번 결단을 내렸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이르면 올해 4분기(10~12월)에 충남 아산 사업장과 중국 쑤저우의 대형 LCD 라인 폐쇄 계획을 지난달 31일 내놨다.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19일 삼성디스플레이 아산 탕정사업장을 찾아 대형 디스플레이 사업을 점검한 지 약 2주만이다. 2004년 LCD합작사 S-LCD 등기이사로서 경영 전면에 나섰던 이 부회장이 약 16년 뒤 그룹의 LCD 사업을 중단하는 중대 결정을 한 것이다.
삼성디스플레이의 LCD 생산 중단은 이미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2017년 세계 1위를 중국에 빼앗긴 뒤 '차세대 디스플레이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내년 상반기부터 파란색 자발광(스스로 빛을 내는) 소자를 이용한 QD 디스플레이 패널의 양산 계획을 갖고 있다. 충남 아산사업장에서 월 3만장 규모로 생산하는 게 목표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말까진 고객이 요청한 LCD 물량에 대해 차질 없이 공급할 계획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달 31일 아산사업장에서 대형사업부 임직원 대상 설명회를 열고 LCD 생산 중단 계획을 알렸다. 고객사와 협력사에도 향후 사업 방향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다. LCD사업 관련 임직원들은 LCD 생산이 종료되는 시점에 중소형사업부와 QD 관련 조직 등으로 전환 배치된다. 삼성디스플레이 관계자는 "대형 디스플레이 사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차세대 기술의 상용화를 앞당기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며 "세계 1위 삼성 디스플레이사업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1995년 어느 날. 미국 대형 PC 업체 D사 구매팀 사무실에서 고성이 터져나왔다. 이상완 당시 삼성전자 LCD(액정표시장치)부문 총괄 부사장이 노트북 패널 도면을 건내자 D사 구매담당자가 소리를 지르며 찢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부사장이 당시 널리 쓰이던 11.3인치가 아닌 12.1인치 패널을 계속 권하자 짜증을 낸 것이다.
삼성이 12.1인치에 매달린 건 전략적 판단이었다. 당시 샤프, NEC 등 일본 LCD 업체들은 11.3인치를 내세워 전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후발주자였던 삼성전자에겐 '차별화'만이 살 길이었다.
삼성전자에 구원의 손길을 내민 건 뜻밖에도 세계 1위 노트북 업체 일본 도시바였다. "11.3인치는 화면이 작으니 12.1인치 노트북을 만들고 싶다"는 뜻을 전해온 것이다. 도시바가 채택하자 다른 노트북 업체들도 움직였다. 이상완 부사장에게 굴욕감을 안겨줬던 미국 D사에선 구매 담당 대표가 직접 삼성전자에 연락해 납품해줄 것을 읍소했다. 삼성전자 기흥 LCD 공장은 쉴새 없이 돌아갔다. 1998년 삼성전자는 10인치 이상 LCD 패널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살아남기 위해 시작한 12.1인치 노트북 패널, 이제는 세계 표준으로
1990년대 후반부터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을 주름 잡고 있는 삼성이 내년부터 LCD 사업을 중단한다. 1991년 LCD 사업을 시작한 지 약 30년 만이다. LCD는 반도체, 휴대폰과 함께 '삼성(三星)의 세 별'로 불리며 '글로벌 삼성'의 밑거름이 된 핵심 사업이다.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의 저가 물량공세에 LCD 시장이 '레드오션'으로 변하자 삼성은 차세대 제품으로 불리는 'QD(퀀텀닷)' 디스플레이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삼성전자 LCD 사업의 시작은 1991년으로 거술러 올라간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문에 이건희 회장(사진)의 지시로 'LCD연구개발팀'을 만든 게 시작이다. 이 회장은 초기 단계 시장이었던 'TFT(박막트랜지스터) LCD'에 주목했다. 1993년 삼성SDI의 전신 삼성전관의 LCD 조직을 삼성전자에 합쳐 역량을 강화했다. 미개척 시장에 투자를 늘리자 참모들은 "그룹 전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렸다. 이 회장은 끝까지 밀어 붙였다. '머지 않아 LCD가 핵심 사업이 될 것'이란 본인의 판단을 믿었기 때문이다.
1993년 12월 9.4인치 시제품을 만들었다. '희망'을 본 이 회장은 1994년 "2000년까지 TFT LCD에 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선언한다. 삼성전자의 행보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3500억원을 들여 경기 용인 기흥에 1995년 2월 LCD 1공장을 준공했다. 10.4인치 패널을 월 2만개 생산할 수 있도록 시설을 확충했다. 1995년 매출 1억달러를 기록했다.
일본 업체를 따라잡는덴 역부족이었다. 이 회장은 다시 결단을 내렸다. 당시 일반적이던 11.3인치 LCD 패널 대신 12.1인치를 전면에 내세우기로 한 것. 사장부터 사원까지 가리지 않고 전 세계 구매처의 문을 두드렸다. 그룹 LCD 사업을 망가뜨릴 수 있는 '도박'에 가까운 결정이었지만 삼성은 결국 해냈다. 도시바의 기적 같은 주문 덕분에 12.1인치는 전 세계 표준이 됐다.
1996년부터 주문이 쏟아졌다. 이 회장 1996년 4월 6일 '21세기를 위한 사장단 전략 세미나'를 열었다. 1993년 6월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3년 만에 사장단이 모인 전략세미나였다. 이 때 이 회장은 "매년 2억5000만달러 이상 투자해 세계 최대 LCD 업체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1997년은 LCD 암흑기였다. 일본 업체들이 삼성을 견제하기 위해 '저가 물량 공세'를 시작했다. 공급 과잉에 패널 가격은 뚝뚝 떨어졌다. 일본 업체들은 생산 시설을 확충하지 않았지만 삼성전자는 달랐다. 1997년 9대 신수종 사업에 LCD를 넣고 8000억원을 들여 충남 천안에 제3공장을 착공했다. 기흥 1·2공장과 함께 12.1인치 패널 월 9만대, 13.3인치 패널 월 18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한 것이다.
이 회장의 판단은 옳았다. 1998년 하반기부터 LCD 시장이 살아나기 시작한 것. 수요가 공급을 뛰어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LCD 생산공장은 계속 돌았다. 생산시설 확충과 투자를 주저했던 일본 업체들은 세계 1위 자리를 삼성전자에 내줬다. 1998년 삼성전자는 10인치 이상 대형 LCD 시장에서 세계 1위에 올랐다. 1999년에도 18.8%의 점유율로 1위를 수성하며 '실력'을 증명했다.
신제품도 쏟아졌다. 1999년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700만화소를 구현하는 24인치 LCD TV를 내놨다.
소니가 먼저 '합작' 요청…2000년대 '황금기' 달려 2000년대는 삼성 LCD 사업의 황금기로 꼽힌다. 벽걸이 TV용 LCD 패널을 대중화시켰고 '뚜께를 얇게 하는 경쟁'에서도 일본업체들을 압도하며 '세계 1위' 위상을 굳혔다.
특히 2004년은 삼성 LCD 역사에 있어 잊혀지지 않는 '영광의 순간'으로 꼽힌다. '경외의 대상'이었던 일본 소니가 삼성전자에 '합작사 S-LCD 설립'을 먼저 제안한 것이다.
S-LCD의 자본금은 2조1000억원이고 지분구조는 삼성전자가 50%+1주, 소니 50%-1주로 결정됐다. 최고경영자(CEO)는 장원기 당시 삼성전자 부사장이,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소니의 나카자와 게이지씨가 맡았다. 삼성이 실리와 명분을 모두 취한 계약이었다.
삼성 소니 모두 '윈윈'으로 평가됐다. 삼성은 대규모 물량 납품처를 확보했고, 소니 역시 안정적으로 패널을 조달할 수 있게 돼서다. 이윤우 당시 삼성전자 사장은 "소니의 LCD TV에 사용되는 TFT LCD 제품을 전량 공급할 수 있게 됨에 따라 TV용 TFT LCD 시장에서 40% 이상의 시장점유율 달성이 가능할 것"이라며 "이번 협력을 통해 기존 노트북, 모니터 제품에 이어 TV용 TFT-LCD 시장에서도 업계 1위가 가능해 졌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디스플레이산업에 대한 높은 관심도 S-LCD 시절 시작됐다는 게 삼성 안팎의 공통된 이야기다. 당시 삼성전자 상무였던 이재용 부회장은 S-LCD의 등기이사로 등재돼 경영에 적극 참여했기 때문이다.
첨단 제품 출시도 이어졌다. 2007년엔 두께 10mm의 40인치 LCD 패널을 세계 최초로 출시했다. 2008년 7월엔 7.9mm로 두께를 더 줄였다. 노트북에 널리 쓰였던 12.1인치 초슬림 LCD패널도 이 시기 삼성전자 LCD사업부의 작품이다.
노트북 패널 뿐만 아니라 TV LCD 패널 점유율도 수직상승한다. 2005년 삼성전자는 점유율 20%를 기록 샤프(18%)를 뒤집고 TV 패널 2위에 오른다(1위는 LG디스플레이). 2008년엔 LG디스플레이마저 꺾고 세계 1위를 달성한다. 한국업체 인수해 기술력 쌓은 중국 BOE, 최대 경쟁자로 부상
2010년대 들어 LCD시장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2010년 ‘치킨게임’(다른 업체들이 포기할 때까지 극단적인 경쟁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이 발발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디스플레이 패널 수요는 정체된 상황에서 중국 업체들이 잇따라 LCD 공장 가동에 나섰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삼성전자 LCD사업부가 1조원대 영업손실을 냈다는 추정이 나올 정도였다.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의 비상은 한국계 기업 '하이디스'에서 시작됐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하이디스는 옛 현대전자 TFT LCD사업부다. 현대전자는 김대중 정부 당시 '빅딜' 정책에 따라 15조원을 들여 LG반도체를 인수했지만 반도체 경기침체로 위기를 맞았다. 채권단은 LCD사업부 분리매각을 추진했고 이때 분사한 LCD사업부가 하이디스다. 2002년 하이디스는 4500억원 헐값에 현재 세계 1위 LCD 업체 중국 BOE에 팔려간다. 인수대금은 대부분 중국 정부에서 나왔다고 한다.
만년 적자기업이었던 BOE는 하이디스 인수를 계기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 이후 BOE의 전략은 1990년대 후반 삼성의 전략과 닮았다. 업황에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대규모 자금을 쏟아부어 생산시설을 확보했다. 2007년 9월엔 쓰촨성 청두에 생산라인을 설립했다. 허페이, 충칭 등에도 공격적으로 생산 거점을 만들었다. 2010년까지 총 투자액이 20조원에 달할 정도다. 2008년 금융위기는 중국 정부 지원에 기대 버텼다.
BOE는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보다 제품을 싸게 팔았다. 정부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서서히 시장을 잠식해 들어갔다. 2010년 1.7%에 불과했던 9인치 이상 대형 LCD패널 시장의 BOE 점유율은 2012년 5.5%를 기록했고 2015년엔 12.1%까지 올랐다. 그리고 2017년 21.5%를 기록, 삼성과 LG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삼성전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2012년 삼성전자는 LCD사업부를 '삼성디스플레이'로 분사시킨다. 시장 변화에 보다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LCD사업은 천천히 곪아갔다. 중국의 저가 공세로 계속 떨어지는 가격이 문제였다. 2018년 1월 106달러였던 43인치 LCD 패널 평균판매가격은 2019년 7월 77달러까지 곤두박질친다. 만들수록 손해인 상황에 삼성디스플레이도 어쩔 수 없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결국 지난해 하반기 월 9만장의 LCD패널을 생산했던 충남 아산사업장 8.5세대 LCD생산라인 등의 가동을 중단했다.
S-LCD 등기이사로 전면 나섰던 이재용 부회장, 'LCD사업 중단' 결단 올 들어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은 또 한번 결단을 내렸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이르면 올해 4분기(10~12월)에 충남 아산 사업장과 중국 쑤저우의 대형 LCD 라인 폐쇄 계획을 지난달 31일 내놨다.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19일 삼성디스플레이 아산 탕정사업장을 찾아 대형 디스플레이 사업을 점검한 지 약 2주만이다. 2004년 LCD합작사 S-LCD 등기이사로서 경영 전면에 나섰던 이 부회장이 약 16년 뒤 그룹의 LCD 사업을 중단하는 중대 결정을 한 것이다.
삼성디스플레이의 LCD 생산 중단은 이미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2017년 세계 1위를 중국에 빼앗긴 뒤 '차세대 디스플레이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내년 상반기부터 파란색 자발광(스스로 빛을 내는) 소자를 이용한 QD 디스플레이 패널의 양산 계획을 갖고 있다. 충남 아산사업장에서 월 3만장 규모로 생산하는 게 목표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말까진 고객이 요청한 LCD 물량에 대해 차질 없이 공급할 계획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달 31일 아산사업장에서 대형사업부 임직원 대상 설명회를 열고 LCD 생산 중단 계획을 알렸다. 고객사와 협력사에도 향후 사업 방향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다. LCD사업 관련 임직원들은 LCD 생산이 종료되는 시점에 중소형사업부와 QD 관련 조직 등으로 전환 배치된다. 삼성디스플레이 관계자는 "대형 디스플레이 사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차세대 기술의 상용화를 앞당기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며 "세계 1위 삼성 디스플레이사업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