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선 바로 꽂아주는데…정치 논리에 '누더기' 된 코로나 지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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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코로나지원금) 지급 정책이 ‘긴급하지도, 재난 피해를 제대로 지원하지도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총선을 앞둔 더불어민주당이 정치 논리를 앞세워 정책을 밀어붙인 탓에 경기부양과 재정건전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게 됐다는 분석이다. 미국이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도입한 코로나지원금 정책과 비교해 보면 이 같은 문제점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美 알기 쉽고 공감되는 기준 vs 韓 “아무도 몰라”…불공정·박탈감 초래
미국과 한국의 코로나지원금의 가장 큰 차이는 지급 기준 및 대상이다. 미국 기준은 ‘연봉 9만9000달러 이하면 준다’는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연봉 10만달러 이상을 부유층으로 본다. ‘여섯 자리(six figure) 연봉’이라는 말까지 있다. 한국의 ‘억대 연봉’과 비슷한 뜻이다. 국민들이 자신이 기준에 해당하는지를 바로 알 수 있고, 납득하기도 쉽다. 미국 정부는 또 연봉이 7만5000달러를 넘으면 소득 100달러당 5달러씩 지원금이 깎이는 차등 지급 방식을 택했다. 연봉 10달러 차이로 누구는 1200달러를 받고 다른 누구는 한 푼도 받지 못하는 불공평을 막기 위해서다.
반면 한국은 ‘소득 하위 70%’라는 모호한 기준을 내세웠다. 여기에 자산까지 포함되면서 국민은 물론 정부조차 지원금 수혜 대상을 알 수 없게 됐다. 지원금 지급에 자산이 포함되면 부동산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은 서울 거주자들은 수급 대상에서 대거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로 아무리 큰 타격을 받았더라도 집값이 비싸다는 이유로 지원금을 전혀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자신이 상위 30% 계층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하는 국민들의 박탈감도 만만찮다. 코로나지원금을 계기로 “전체 세금의 대부분을 내는 건 상위 30%인데 이래도 되느냐”는 불만이 쌓이고 있다. 소득 하위 70%에게는 무조건 100만원을 주고 상위 30%에게는 전혀 주지 않는 지급 방식도 문제다. 이에 따라 소득 하위 70%에 해당하는 가구의 소득이 소득 상위 30%에 간신히 들어가는 가구보다 많아지는 ‘소득 역전’ 현상도 일어날 수 있다.
◆美 “4월 중 신속 지급” vs 韓 “일러도 6월”…“당장 쓸 돈이 없다”
미국 정부는 이달 중 국민들의 통장에 지원금을 넣어 줄 계획이다. 지원 기준이 명료해 지난해 연말 받았던 연말정산 자료를 활용하면 빠르게 행정 처리가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반면 우리 정부는 재산을 얼마나 반영할 지, 어떤 정보를 활용해 하위 70%를 추려낼 지 기준조차 제대로 세우지 못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국세청 과세 정보 등 정부 내부 자료만으로 기준을 정한다 해도 두 달은 걸린다”고 했다. 이런 작업을 감안하면 코로나지원금은 일러야 6월에나 지급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발표 후 세 달 넘게 시간이 걸린단 얘기다.
지급 시기가 늦어지면서 국민들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피해를 보전하는 효과는 반감될 전망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취약 계층은 당장 쓸 돈이 없는 실정”이라며 “지급 시기를 당기기 위해서라도 기준을 단순화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美 “현금 줄테니 급한 불 꺼라” vs 韓 “지역·전통시장에서만 써”... 소비 진작 미미할 듯
미국은 지원금을 현금 또는 바로 현금화할 수 있는 수표로 지급한다. 통장에 돈을 묵힐 수 있다는 부작용은 있지만, 대출 이자나 월세 등 당장 내야 할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급전을 제공하는 게 먼저라는 판단이다. 물론 이 지원금은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한국은 지역상품권이나 전자화폐 등을 통해 돈을 풀 예정이다. 지역상품권은 각 지방자치단체와 계약을 맺은 가맹점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전자화폐 역시 소비자가 많이 찾는 대형마트와 백화점에서는 사용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지역상품권 사용처 중 대부분이 오프라인 매장이라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방침과도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상품권을 쓰기 위해 외부 활동이 많아지면 감염 속도가 빨라질 것이란 얘기다.
지역상품권이 ‘깡’과 같은 부정유통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급받은 상품권을 액면가보다 적은 돈을 받고 판 뒤 이를 원하는 곳에 쓸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한국복지행정연구회는 최근 “지역상품권은 상품권 깡 등으로 악용될 소지가 커 발행에 따른 소비 진작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고 했다. 상품권 깡으로 받은 현금 중 상당수가 유흥업 등 지하경제로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코로나 지원금, 정치 논리 탓에 누더기 돼”
정부 안팎에서는 코로나지원금 제도가 이처럼 졸속으로 설계된 이유가 전적으로 정치권의 지나친 개입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총선을 앞둔 여당의 △자산 부자에게 결코 지원금이 돌아가서는 안 되고 △지역 표를 얻기 위해 사용처를 지역에 한정하도록 △최대한 빨리 발표해야 한다는 정치 논리가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자신들도 기준을 잘 모르는 정책을 황급히 발표하고, 재정건전성과 신속 편리한 경기부양이라는 두 마리 토끼도 모두 놓치게 됐다.
이런 정황은 지난달 29일 최종 발표를 앞두고 열린 당정청 회의에서 잘 드러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소득 하위 70%까지 지급하되, 50% 이하 구간은 100만 원, 50∼70% 구간은 50만 원으로 차등 지급하자”고 제안했지만 “지급은 같아야 한다”는 여당의 주장에 가로막혔다. 회의가 ‘소득 70% 이하가 대상’이라는 방향으로 기울자 홍 부총리는 “기록으로라도 (반대) 의견을 남기겠다”고 말했다. 결국 문 대통령에게 보고된 최종 문건에는 홍 부총리의 반대 주장이 ‘부대 의견’ 형태로 담겼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美 알기 쉽고 공감되는 기준 vs 韓 “아무도 몰라”…불공정·박탈감 초래
미국과 한국의 코로나지원금의 가장 큰 차이는 지급 기준 및 대상이다. 미국 기준은 ‘연봉 9만9000달러 이하면 준다’는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연봉 10만달러 이상을 부유층으로 본다. ‘여섯 자리(six figure) 연봉’이라는 말까지 있다. 한국의 ‘억대 연봉’과 비슷한 뜻이다. 국민들이 자신이 기준에 해당하는지를 바로 알 수 있고, 납득하기도 쉽다. 미국 정부는 또 연봉이 7만5000달러를 넘으면 소득 100달러당 5달러씩 지원금이 깎이는 차등 지급 방식을 택했다. 연봉 10달러 차이로 누구는 1200달러를 받고 다른 누구는 한 푼도 받지 못하는 불공평을 막기 위해서다.
반면 한국은 ‘소득 하위 70%’라는 모호한 기준을 내세웠다. 여기에 자산까지 포함되면서 국민은 물론 정부조차 지원금 수혜 대상을 알 수 없게 됐다. 지원금 지급에 자산이 포함되면 부동산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은 서울 거주자들은 수급 대상에서 대거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로 아무리 큰 타격을 받았더라도 집값이 비싸다는 이유로 지원금을 전혀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자신이 상위 30% 계층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하는 국민들의 박탈감도 만만찮다. 코로나지원금을 계기로 “전체 세금의 대부분을 내는 건 상위 30%인데 이래도 되느냐”는 불만이 쌓이고 있다. 소득 하위 70%에게는 무조건 100만원을 주고 상위 30%에게는 전혀 주지 않는 지급 방식도 문제다. 이에 따라 소득 하위 70%에 해당하는 가구의 소득이 소득 상위 30%에 간신히 들어가는 가구보다 많아지는 ‘소득 역전’ 현상도 일어날 수 있다.
◆美 “4월 중 신속 지급” vs 韓 “일러도 6월”…“당장 쓸 돈이 없다”
미국 정부는 이달 중 국민들의 통장에 지원금을 넣어 줄 계획이다. 지원 기준이 명료해 지난해 연말 받았던 연말정산 자료를 활용하면 빠르게 행정 처리가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반면 우리 정부는 재산을 얼마나 반영할 지, 어떤 정보를 활용해 하위 70%를 추려낼 지 기준조차 제대로 세우지 못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국세청 과세 정보 등 정부 내부 자료만으로 기준을 정한다 해도 두 달은 걸린다”고 했다. 이런 작업을 감안하면 코로나지원금은 일러야 6월에나 지급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발표 후 세 달 넘게 시간이 걸린단 얘기다.
지급 시기가 늦어지면서 국민들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피해를 보전하는 효과는 반감될 전망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취약 계층은 당장 쓸 돈이 없는 실정”이라며 “지급 시기를 당기기 위해서라도 기준을 단순화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美 “현금 줄테니 급한 불 꺼라” vs 韓 “지역·전통시장에서만 써”... 소비 진작 미미할 듯
미국은 지원금을 현금 또는 바로 현금화할 수 있는 수표로 지급한다. 통장에 돈을 묵힐 수 있다는 부작용은 있지만, 대출 이자나 월세 등 당장 내야 할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급전을 제공하는 게 먼저라는 판단이다. 물론 이 지원금은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한국은 지역상품권이나 전자화폐 등을 통해 돈을 풀 예정이다. 지역상품권은 각 지방자치단체와 계약을 맺은 가맹점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전자화폐 역시 소비자가 많이 찾는 대형마트와 백화점에서는 사용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지역상품권 사용처 중 대부분이 오프라인 매장이라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방침과도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상품권을 쓰기 위해 외부 활동이 많아지면 감염 속도가 빨라질 것이란 얘기다.
지역상품권이 ‘깡’과 같은 부정유통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급받은 상품권을 액면가보다 적은 돈을 받고 판 뒤 이를 원하는 곳에 쓸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한국복지행정연구회는 최근 “지역상품권은 상품권 깡 등으로 악용될 소지가 커 발행에 따른 소비 진작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고 했다. 상품권 깡으로 받은 현금 중 상당수가 유흥업 등 지하경제로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코로나 지원금, 정치 논리 탓에 누더기 돼”
정부 안팎에서는 코로나지원금 제도가 이처럼 졸속으로 설계된 이유가 전적으로 정치권의 지나친 개입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총선을 앞둔 여당의 △자산 부자에게 결코 지원금이 돌아가서는 안 되고 △지역 표를 얻기 위해 사용처를 지역에 한정하도록 △최대한 빨리 발표해야 한다는 정치 논리가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자신들도 기준을 잘 모르는 정책을 황급히 발표하고, 재정건전성과 신속 편리한 경기부양이라는 두 마리 토끼도 모두 놓치게 됐다.
이런 정황은 지난달 29일 최종 발표를 앞두고 열린 당정청 회의에서 잘 드러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소득 하위 70%까지 지급하되, 50% 이하 구간은 100만 원, 50∼70% 구간은 50만 원으로 차등 지급하자”고 제안했지만 “지급은 같아야 한다”는 여당의 주장에 가로막혔다. 회의가 ‘소득 70% 이하가 대상’이라는 방향으로 기울자 홍 부총리는 “기록으로라도 (반대) 의견을 남기겠다”고 말했다. 결국 문 대통령에게 보고된 최종 문건에는 홍 부총리의 반대 주장이 ‘부대 의견’ 형태로 담겼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