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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전, IBM에서 ‘음성인식 컴퓨터’ 개발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 기술이 구현돼 사람들이 마이크에 대고 얘기하면 그 내용이 모니터에 나타나게 돼 타이핑이 필요없었다. 타이피스트를 제외한 모두가 이 아이디어를 반겼다. IBM은 이 기술을 쓸 만한 잠재 고객들의 반응을 알고 싶었다.

문제는 당시 컴퓨터 성능과 기술 수준으로 음성인식 기능을 구현할 수 없다는 것. 시제품을 개발하려면 장기간의 대규모 연구개발(R&D) 투자가 필요했다. IBM 조사팀은 기발한 해결책을 내놨다. 마이크와 컴퓨터 박스, 모니터로 실험실을 마련했다. 그러고는 잠재 고객 몇 명에게 혁신적인 시제품이 나왔다며 사용해보라고 했다. 이들은 마이크에 대고 말했고 그 말이 실시간으로 모니터에 띄워졌다. 옆방에서 타이피스트가 이용자의 말을 바로 입력한 내용이 모니터에 나타난 것이다. 이 기능에 감명받아 당장 제품을 구매할 것 같았던 사람들은 몇 시간 이용해본 뒤 생각을 바꿨다. 두어 시간 말하다 보니 목이 아팠고, 업무 환경이 시끄러워졌고, 기밀 유지도 안 됐다. 이 아이디어는 ‘안 될 놈(the wrong it)’이었다.

구글과 스탠퍼드대의 ‘혁신 대가’ 알베르토 사보이아는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할 말을 잃었다”고 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안 될 놈’으로 밝혀진 아이디어의 시제품을 개발하느라 수개월간 수백만달러를 허비한 일들이 생각나서였다. 사보이아는 이 실험에 착안해 ‘프리토타입(pretotype)’이란 용어를 만들었다. 이 용어는 시제품(prototype)에 앞서는(pre-) 것, 제대로 된 시제품인 ‘척(pretend)’하며 아이디어가 제품화할 가치가 있는 ‘될 놈(the right it)’인지를 값싸고 빠르게 검증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책마을] 실패하지 않으려면 처음부터 '될 놈' 찾아야
프리토타입은 사보이아의 첫 저작인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의 핵심 개념이다. 사보이아는 실리콘밸리에서 30여 년간 기술, 공학, 혁신 분야에서 일하며 얻은 경험과 연구를 바탕으로 정립한 아이디어 검증 전략을 이 책에 집대성했다. 그는 썬마이크로시스템즈, 구글에서 엔지니어와 개발책임자로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 첫 번째로 설립한 스타트업은 벤처캐피털에서 300만달러를 투자받아 키운 뒤 1억달러에 매각했다. 이때까지 그의 성공과 실패 점수는 3 대 0. 이후 차린 스타트업에서 그는 쓰라린 실패를 맛봤다. 근사한 사업계획을 세우고, 최고의 인재를 모으고, 세계적인 벤처캐피털로부터 넉넉한 자금을 공급받아 5년간 열정을 쏟아가며 일했는데 결과는 헐값 매각이었다.

그는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유능하게 실행해도 ‘안 될 놈’의 아이디어를 시장 실패에서 구해낼 방법은 없다는 교훈을 얻었고, 제대로 만들기 전에 아이디어를 사전 검증하는 방법, 데이터에 기반한 설계의 각종 도구와 전략에 관심을 쏟았다.

저자가 제안하는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은 명료하다. 우선 시장에서 통할 법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숫자로 이야기하는 ‘XYX가설’로 바꿔보라고 한다. ‘적어도 X%의 Y는 Z할 것’이란 형태다. 예를 들어 ‘오염된 도시에 사는 사람 중 일부는 대기오염을 모니터링해 알려주는 장치에 관심을 가질 것’이란 아이디어는 ‘대기질지수가 100 이상인 도시에 사는 사람 중 10% 이상은 120달러짜리 휴대용 오염탐지기를 구매할 것’이란 가설로 바꿔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 가설을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 저자는 적은 비용으로 몇 시간, 며칠 만에 ‘나만의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프리토타입 기법을 제시한다. ‘미캐니컬 터크(mechanical turk)’ ‘피노키오’ ‘가짜 문’ ‘외관’ ‘하룻밤’ ‘잠입자’ ‘상표 바꾸기’ 등이다. 저자는 각 기법을 실리콘밸리의 수많은 성공과 실패 사례를 통해 상세하게 설명한다. ‘미캐니컬 터크’의 대표적 사례가 바로 IBM의 음성인식 기술 실험이다. 에어비앤비는 일회성 실험으로 고객 반응을 체크하는 ‘하룻밤’ 기법을 활용해 잠재 고객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 비즈니스가 ‘될 놈’임을 깨달은 사례다.

저자는 프리토타이핑을 통해 얻은 데이터를 분석해 ‘될 놈 척도’와 ‘적극적 투자 기법’으로 아이디어가 ‘될 놈’이라고 검증됐다면 적극적인 투자를 유치하고 빠르게 실행해 남들보다 먼저 세상에 제품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이 성공의 지름길이자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이다.

흥미진진한 실용서다. 스타트업 창업자와 조직의 신사업 담당자들이 옆에 두고 단계별로 참고하면 좋을 만한 도구와 전략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될 놈’ ‘안 될 놈’ ‘생각랜드’ 등 저자가 개발한 창의적 용어가 이해를 높여줄 뿐 아니라 읽는 재미를 더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