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시장통한 자금조달 우선" vs 항공사 "신속한 정책자금 필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 지원을 놓고 정부와 항공업계 간 '기싸움'이 한창이다.

항공사들은 코로나19 사태의 직격탄을 맞아 고사 위기에 놓였다며 실효성 있고 조속한 지원책 마련을 정부에 연일 촉구하고 있다.

정부는 업종을 막론하고 대기업은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정부 지원보다 유리하다는 입장을 내보이며 항공업계와는 온도 차를 드러내는 분위기다.
정부-항공사, 코로나19 피해 지원 놓고 기싸움
5일 금융권과 항공업계 등에 따르면 항공사들은 정부에 무담보 저리 대출 확대와 채권의 정부 지급보증 등 대규모 정책자금 지원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이 회원사로 있는 한국항공협회는 지난 3일 이런 내용이 담긴 '항공산업 생존을 위한 호소문'을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에 보냈다.

코로나19로 피해가 막심한 터라 자구책만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해 정부의 신속한 정책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미국과 프랑스, 싱가포르 등 많은 나라가 항공산업 파산을 막으려고 대규모 금융 지원에 나서자 정부 지원책에 대한 국내 항공사들의 기대감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항공업계 입장에서 만족할 만한 '화끈한' 대책이 나오지 않자 지원책을 촉구하는 항공사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일단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항공사들의 경영 현황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고, 국토교통부 등과 협의해 필요한 조치들을 점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항공업계는 "버티기 힘들다"며 아우성을 치지만, 정부는 신중한 모습이다.

특히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의 지원은 대기업 특혜 시비가 있는 만큼 정부가 더욱 고심하는 모양새다.

정부의 신중한 태도는 소상공인·중소기업보다 시장 접근성이 좋은 대기업은 시장에서의 자금 조달이 우선이라는 원칙과도 맥이 닿아 있다.

정부는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일시적 자금난에 따른 도산을 막기 위해 대기업을 포함한 모든 기업에 자금 지원을 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업종 제한을 두지 않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다만 금융당국은 대기업의 경우 정부 지원보다 우선 시장에서의 자금 조달이 우선이라는 점에 방점을 찍고 있다.

시장에서의 자금 조달 여건이 여의치 않을 경우 정부 지원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으나 대신 어느 정도 대가를 치르는 게 불가피하다고 금융당국은 강조한다.

대기업 대주주의 자구노력도 그 대가 중 하나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31일 기자들과 만나 "항공업계 (문제가) 먼저 나왔을 뿐, 일시적인 자금 부족으로 기업이 부도나거나 도산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는 게 정부의 원칙"이라면서 "100조원 민생·금융안정 프로그램의 범주 안에서 항공업계도 채권 발행을 하는 것이고, 그게 안 된다면 주식을 내놓는 등 대주주 자구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항공사, 코로나19 피해 지원 놓고 기싸움
정부 일각에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당장 쓰러질 정도로 유동성 위기에 내몰리지 않았다는 인식도 있다.

국책은행의 한 관계자는 "대한항공은 6천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으로 한숨 돌린 측면이 있다"면서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이 정상화를 위해 1조6천억원을 지원할 때 한도 대출을 넉넉하게 잡아줘 급하면 거기서 끌어다 쓰면 된다"고 설명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이 발행한 영구채 5천억원을 인수했고, 한도 대출 8천억원, 스탠바이 LC(보증신용장) 3천억원을 제공했다.

현재 스탠바이 LC 잔액은 없으나 쓸 수 있는 한도 대출 잔액은 그대로 남아있다.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확산세가 멈추지 않으면서 항공업 피해가 눈더미처럼 더욱 불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항공을 포함한 기간산업 지원 방안을 조만간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저비용항공사(LCC) 금융 지원을 두고도 항공사들과 산은 간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적극적이고 빠른 지원이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에 대해 산은은 원칙과 기준에 따라 최대한 신속히 대출 심사와 집행을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산은이 3천억원 이내에서 가동 중인 LCC 금융 지원 프로그램에서 제주항공이 인수하는 이스타항공 지원이 빠진 것을 두고도 설왕설래가 오간다.

이와 관련 산은 관계자는 "모회사인 제주항공을 지원하는 만큼 이스타항공은 제주항공이 책임지면 된다"고 말했다.

산은은 최근 무담보 조건으로 제주항공에 400억원을 지원했다.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자금은 다른 은행들과 함께 1천500억∼2천억원 규모로 지원한다는 게 산은의 계획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