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열 SAP코리아 대표 "평소엔 대학처럼, 위기 땐 군대처럼 기업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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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탐구 - 이성열 SAP코리아 대표
오라클 고집하던 삼성·현대차도 아군으로 만들다
오라클 고집하던 삼성·현대차도 아군으로 만들다
“데이터베이스(DB)는 오라클, 전사적 자원관리(ERP)는 SAP.” 국내 주요 대기업 정보기술(IT) 인프라 시장의 지난 10년을 요약한 말이다. 오라클과 SAP가 분야를 나눠 시장을 양분해왔다는 얘기다.
오라클이 강점을 보이는 DB는 기업의 ‘뇌’에 해당한다. 정보를 구조화해 저장한다는 점에서 뇌와 기능이 비슷하다. SAP가 터줏대감 노릇을 하는 ERP는 ‘심장’과 비슷하다. 실무자가 필요로 하는 데이터를 공급하고, 업무 처리 결과물을 다시 데이터로 바꿔 거둬들이는 역할을 해서다.
개별 업무에만 적용하는 솔루션을 교체하는 사례는 간간이 있었지만 뇌와 심장은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게 IT 담당자들의 불문율이었다. DB나 ERP를 잘못 교체하면 회사 업무가 일제히 마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DB 교체에 대한 부담이 컸다. 비싼 유지·보수 비용에도 불구하고 오라클이 DB 시장에서 장기집권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사내 서버가 아니라 클라우드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사례가 급증한 2018년부터다. 그해 말 삼성전자가 뇌에 해당하는 DB를 SAP로 교체하겠다고 선언했다. SAP의 DB를 의무적으로 써야 하는 클라우드 기반 ERP인 ‘S/4 HANA’를 도입하면서 자연스럽게 오라클을 밀어냈다. 클라우드 활용 기술 면에선 SAP가 오라클보다 한 수 위라는 게 삼성전자의 판단이었다. 지난해 초 삼성전자에 이어 현대자동차도 SAP에 DB와 ERP를 모두 맡기기로 했다. “SAP가 기업 클라우드 시장의 진정한 승자”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술 한 방울 못 마시는 컨설턴트
시장에선 SAP가 국내에서 독주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로 ‘팔색조 최고경영자(CEO)’로 불리는 이성열 SAP코리아 대표를 꼽는다. ‘물건’이 아니라 ‘미래의 비전’을 파는 남다른 영업 전략으로 업계를 휘어잡았다는 게 업계의 중평이다.
2018년 SAP코리아 대표로 취임한 그는 27년간 IT 분야에서 활약한 컨설턴트 출신이다. 1990년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서 시작해 한국IBM의 BCS(비즈니스컨설팅서비스) 대표와 GBS(글로벌비즈니스서비스) 대표를 지냈다.
이 대표는 영업에 강점이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두주불사’ ‘근면성실’ 등을 전면에 내세우는 전통적인 영업맨들과 여러모로 구분된다. 그의 출근 시간은 오전 8시에서 9시 사이다. 본인이 부지런하지도, 직원들에게 부지런함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영업의 정석으로 불리는 술이나 골프와도 거리가 멀다. 술은 아예 한 방울도 못 마신다. 선천적으로 알코올 분해 효소가 없어 구급차를 탄 것만 여러 번이다. 골프도 신통찮다. 종종 골프장에 나가지만 평균 타수가 초보자 수준인 95~100타에 불과하다.
이 대표는 컨설턴트 시절 자신의 단점을 ‘달변’과 ‘탄탄한 리서치’로 메웠다. 술과 골프가 약하다 보니 남보다 공부를 더 하고, 아는 내용을 쉽게 설명하는 방법에 골몰하게 됐다. 그는 “잘 듣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객이 컨설턴트에게 바라는 것은 지식이 아니에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조언을 원하죠. 먼저 듣고, 그다음에 공감해주고, 마지막으로 그들이 원하는 최적의 대안을 찾아주는 게 컨설팅 영업의 정석입니다.”
SAP코리아 대표로 옮긴 뒤에도 컨설턴트 시절의 경험이 도움이 됐다. 고객의 속 얘기를 들어주고, 해법을 함께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품과 서비스가 팔려나갔다.
책이 아니라 콘퍼런스 대본
이 대표는 수시로 책을 쓰는 CEO로도 유명하다. 지난해 5월엔 플랫폼 혁신을 다룬 《디지털 비즈니스의 미래》를 펴냈다. 자신이 수집한 정보를 논리화하고 기업의 실례를 소개하는 게 책을 내는 목적이다. “대다수 IT 서적은 2~3년 전 사례를 다룹니다. 한두 달이면 상황이 달라지는 IT업계에서 참고하기엔 정보 업데이트 속도가 느리죠. 답답한 마음에 직접 책을 쓰다 보니 벌써 세 권의 책이 나왔네요.”
업계에서 그의 저서에 관심을 보이는 건 내용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책은 SAP코리아가 여는 행사인 ‘SAP 이그제큐티브 서밋’의 대본 역할을 한다. 책에 등장한 인물들이 콘퍼런스에 참석해 최신 IT 혁신 사례를 직접 소개한다는 점 때문에 업계의 관심이 뜨겁다. 지난해 7월 행사엔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홍원표 삼성SDS 대표 등이 참석했다.
필요하면 라이벌과 웃으며 손을 잡는 유연함도 이 대표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다. 이 대표는 지난해 11월 고순동 전 한국마이크로소프트(MS) 대표와 합동 인터뷰에 나서 화제가 됐다. 이 대표는 “우리도 클라우드 관련 상품이 다양하지만 데이터 저장 공간과 서버만 제공하고 소프트웨어는 고객이 알아서 해결하는 인프라 서비스(IaaS)는 MS가 한 수 위”라며 “SAP의 강점인 솔루션에 집중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데이터를 저장하고 관리하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SAP의 대표답게 데이터를 중시한다. 데이터가 가리키는 방향이 바뀌면 기업의 전략도 달라져야 한다는 게 이 대표의 지론이다. ‘팔색조’란 별명을 얻은 것도 수시로 다른 전략을 꺼내드는 그의 성향 때문이다. “1년, 3년 단위로 잡아놓은 사업 계획에 휘둘릴 이유가 없어요. 데이터가 다른 얘기를 하면 서둘러 전략을 바꿔야 하죠. 데이터를 전적으로 믿는 것도 곤란해요. 데이터는 거짓말을 안 하지만 그것을 분석하는 방법에는 편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데이터 시대 CEO의 덕목을 꼽아달라는 질문엔 “균형”이라고 답했다. 그는 “새로운 먹거리가 필요할 때는 기업을 대학처럼 경영해 창의성을 높이는 게 정답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를 덮친 요즘 같은 시기엔 조직을 군대처럼 관리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이성열 SAP코리아 대표
△1961년 서울 출생
△미국 마이애미대 경영학 석사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 경영정보시스템 박사
△2005년 한국IBM 비즈니스컨설팅서비스 대표
△2008년 IBM 전자산업부문 글로벌 리더
△2011년 한국IBM 글로벌비즈니스서비스 대표
△2015년 AT커니코리아 대표
△2018년 SAP코리아 대표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
오라클이 강점을 보이는 DB는 기업의 ‘뇌’에 해당한다. 정보를 구조화해 저장한다는 점에서 뇌와 기능이 비슷하다. SAP가 터줏대감 노릇을 하는 ERP는 ‘심장’과 비슷하다. 실무자가 필요로 하는 데이터를 공급하고, 업무 처리 결과물을 다시 데이터로 바꿔 거둬들이는 역할을 해서다.
개별 업무에만 적용하는 솔루션을 교체하는 사례는 간간이 있었지만 뇌와 심장은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게 IT 담당자들의 불문율이었다. DB나 ERP를 잘못 교체하면 회사 업무가 일제히 마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DB 교체에 대한 부담이 컸다. 비싼 유지·보수 비용에도 불구하고 오라클이 DB 시장에서 장기집권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사내 서버가 아니라 클라우드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사례가 급증한 2018년부터다. 그해 말 삼성전자가 뇌에 해당하는 DB를 SAP로 교체하겠다고 선언했다. SAP의 DB를 의무적으로 써야 하는 클라우드 기반 ERP인 ‘S/4 HANA’를 도입하면서 자연스럽게 오라클을 밀어냈다. 클라우드 활용 기술 면에선 SAP가 오라클보다 한 수 위라는 게 삼성전자의 판단이었다. 지난해 초 삼성전자에 이어 현대자동차도 SAP에 DB와 ERP를 모두 맡기기로 했다. “SAP가 기업 클라우드 시장의 진정한 승자”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술 한 방울 못 마시는 컨설턴트
시장에선 SAP가 국내에서 독주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로 ‘팔색조 최고경영자(CEO)’로 불리는 이성열 SAP코리아 대표를 꼽는다. ‘물건’이 아니라 ‘미래의 비전’을 파는 남다른 영업 전략으로 업계를 휘어잡았다는 게 업계의 중평이다.
2018년 SAP코리아 대표로 취임한 그는 27년간 IT 분야에서 활약한 컨설턴트 출신이다. 1990년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서 시작해 한국IBM의 BCS(비즈니스컨설팅서비스) 대표와 GBS(글로벌비즈니스서비스) 대표를 지냈다.
이 대표는 영업에 강점이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두주불사’ ‘근면성실’ 등을 전면에 내세우는 전통적인 영업맨들과 여러모로 구분된다. 그의 출근 시간은 오전 8시에서 9시 사이다. 본인이 부지런하지도, 직원들에게 부지런함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영업의 정석으로 불리는 술이나 골프와도 거리가 멀다. 술은 아예 한 방울도 못 마신다. 선천적으로 알코올 분해 효소가 없어 구급차를 탄 것만 여러 번이다. 골프도 신통찮다. 종종 골프장에 나가지만 평균 타수가 초보자 수준인 95~100타에 불과하다.
이 대표는 컨설턴트 시절 자신의 단점을 ‘달변’과 ‘탄탄한 리서치’로 메웠다. 술과 골프가 약하다 보니 남보다 공부를 더 하고, 아는 내용을 쉽게 설명하는 방법에 골몰하게 됐다. 그는 “잘 듣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객이 컨설턴트에게 바라는 것은 지식이 아니에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조언을 원하죠. 먼저 듣고, 그다음에 공감해주고, 마지막으로 그들이 원하는 최적의 대안을 찾아주는 게 컨설팅 영업의 정석입니다.”
SAP코리아 대표로 옮긴 뒤에도 컨설턴트 시절의 경험이 도움이 됐다. 고객의 속 얘기를 들어주고, 해법을 함께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품과 서비스가 팔려나갔다.
책이 아니라 콘퍼런스 대본
이 대표는 수시로 책을 쓰는 CEO로도 유명하다. 지난해 5월엔 플랫폼 혁신을 다룬 《디지털 비즈니스의 미래》를 펴냈다. 자신이 수집한 정보를 논리화하고 기업의 실례를 소개하는 게 책을 내는 목적이다. “대다수 IT 서적은 2~3년 전 사례를 다룹니다. 한두 달이면 상황이 달라지는 IT업계에서 참고하기엔 정보 업데이트 속도가 느리죠. 답답한 마음에 직접 책을 쓰다 보니 벌써 세 권의 책이 나왔네요.”
업계에서 그의 저서에 관심을 보이는 건 내용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책은 SAP코리아가 여는 행사인 ‘SAP 이그제큐티브 서밋’의 대본 역할을 한다. 책에 등장한 인물들이 콘퍼런스에 참석해 최신 IT 혁신 사례를 직접 소개한다는 점 때문에 업계의 관심이 뜨겁다. 지난해 7월 행사엔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홍원표 삼성SDS 대표 등이 참석했다.
필요하면 라이벌과 웃으며 손을 잡는 유연함도 이 대표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다. 이 대표는 지난해 11월 고순동 전 한국마이크로소프트(MS) 대표와 합동 인터뷰에 나서 화제가 됐다. 이 대표는 “우리도 클라우드 관련 상품이 다양하지만 데이터 저장 공간과 서버만 제공하고 소프트웨어는 고객이 알아서 해결하는 인프라 서비스(IaaS)는 MS가 한 수 위”라며 “SAP의 강점인 솔루션에 집중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데이터를 저장하고 관리하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SAP의 대표답게 데이터를 중시한다. 데이터가 가리키는 방향이 바뀌면 기업의 전략도 달라져야 한다는 게 이 대표의 지론이다. ‘팔색조’란 별명을 얻은 것도 수시로 다른 전략을 꺼내드는 그의 성향 때문이다. “1년, 3년 단위로 잡아놓은 사업 계획에 휘둘릴 이유가 없어요. 데이터가 다른 얘기를 하면 서둘러 전략을 바꿔야 하죠. 데이터를 전적으로 믿는 것도 곤란해요. 데이터는 거짓말을 안 하지만 그것을 분석하는 방법에는 편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데이터 시대 CEO의 덕목을 꼽아달라는 질문엔 “균형”이라고 답했다. 그는 “새로운 먹거리가 필요할 때는 기업을 대학처럼 경영해 창의성을 높이는 게 정답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를 덮친 요즘 같은 시기엔 조직을 군대처럼 관리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이성열 SAP코리아 대표
△1961년 서울 출생
△미국 마이애미대 경영학 석사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 경영정보시스템 박사
△2005년 한국IBM 비즈니스컨설팅서비스 대표
△2008년 IBM 전자산업부문 글로벌 리더
△2011년 한국IBM 글로벌비즈니스서비스 대표
△2015년 AT커니코리아 대표
△2018년 SAP코리아 대표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