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웍스 애니 ‘트롤: 월드 투어’
상업영화 첫 VOD 동시 공개
극장과 시차 두는 ‘홀드백’ 어겨
CGV·롯데시네마 “수용 불가”
메가박스는 “개봉 협의 진행”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영화계가 배급방식을 둘러싸고 잇단 마찰을 빚고 있다. 코로나19 감염 우려에 따른 관객 급감으로 극장의 파워가 약해진 것이 근본 원인이다. 한 영화제작사 관계자는 “‘제작-극장 상영-부가 판권 시장’으로 이어지던 영화산업 가치사슬이 인터넷TV(IPTV)와 OTT의 급성장으로 붕괴되기 시작한 흐름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더욱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장기화로 첫 ‘홀드백 파괴’
통상 영화는 극장에서 개봉한 뒤 흥행 추이에 따라 상당 기간 유예 기간(홀드백)을 둔 뒤 IPTV 등 부가 판권시장에서 공개된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관객 감소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자 유니버설픽처스는 기대작인 ‘트롤’의 극장과 VOD 동시 개봉을 택했다. 이 영화는 2016년 나온 ‘트롤’의 속편으로 팝, 록, 클래식, 컨트리, 펑크, 테크노로 이뤄진 6개 트롤 마을에서 벌어지는 음악 배틀을 그린 뮤지컬 애니메이션이다.
‘트롤’은 미국에서 한국보다 앞선 10일 유료채널과 극장에서 동시 개봉한다. 미국에서는 4만여 개 스크린이 휴업한 상태여서 사실상 유료 채널들에서 VOD로만 개봉하는 셈이다. 19.99달러를 내면 48시간 동안 영화를 관람하는 방식이다. 미국에서는 홀드백 기간이 통상 3개월이나 되지만 이를 파괴한 조치다.
유니버설픽처스 모회사인 NBC유니버설 최고경영자(CEO) 제프 셸은 “영화 개봉을 연기하는 대신 변화된 환경에 맞춰 사람들이 극장뿐 아니라 집에서도 저렴하게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며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싶어 하지만 보러 가기 어려운 상황임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애니메이션 특성상 어린이와 청소년이 많이 관람할 수밖에 없는데, 극장에 오기보다 집에서 관람하는 편이 더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CGV와 롯데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극장 환경 변화를 감안하더라도 ‘홀드백 파괴’를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두 회사 관계자는 “부가 판권 시장인 IPTV·케이블TV VOD와 유예 기간 없이 동시 개봉한다는 것은 극장의 존재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라며 “유통질서가 무너지면 영화산업이 무너진다”고 입을 모았다. 두 회사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 등 홀드백을 지키지 않은 넷플릭스 영화도 상영을 거부해왔다.
다만 지난해 10월부터 넷플릭스 영화에 빗장을 푼 메가박스는 ‘트롤’ 개봉 여부에 대해 “배급사와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사냥의 시간’ 넷플릭스 공개 제동
‘사냥의 시간’은 법원이 해외 판매 대행사 콘텐츠판다의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10일로 예정된 넷플릭스 190개국 동시 공개가 불투명해졌다.
서울중앙지법은 8일 해외 판매 대행사 콘텐츠판다가 배급사인 리틀빅픽쳐스를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법원은 리틀빅픽쳐스가 콘텐츠판다와의 계약을 해지한 행위가 무효여서 그 효력을 정지한다고 판결했다. 아울러 “국내를 제외한 전 세계에서 극장, 인터넷, TV를 통해 상영, 판매, 배포하거나 비디오, DVD 등으로 제작, 판매, 배포하거나 그밖의 방법으로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결정했다. 이를 위반할 경우 리틀빅픽쳐스는 하루 2000만원을 콘텐츠판다에 지급해야 한다.
리틀빅픽쳐스가 “천재지변 등에 의한 사유로 계약을 해지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재판부는 “영화 제작이 이미 완료돼 콘텐츠판다가 해외 배급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단지 코로나19로 인해 향후 만족할 만한 수익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사정이 그 이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넷플릭스가 국내에서 ‘사냥의 시간’을 공개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해외에도 공개할 경우 리틀빅픽쳐스는 상당 금액의 위약금을 감수해야 한다.
‘사냥의 시간’은 지난 2월 26일 국내 개봉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개봉이 무기한 연기됐고 결국 한국 영화 신작으로는 최초로 극장 개봉 없이 넷플릭스 독점 공개를 선택했다. 이번 판결에 따라 넷플릭스가 예정일에 국내 공개만을 선택할지 아니면 공개 자체를 보류할지 미지수다. 이와 관련해 넷플릭스 측은 “추후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