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가 역시 '정적에 휩싸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랐다. 상습 정체구역은 변함없이 출근 차량으로 막혔고, 시바공원의 쇠고기덮밥집 요시노야 매장에 아침식사 손님이 3분의 2 정도 들어찬 것도 어제와 같았다. 점심시간이 되자 게이오대학에서 다마치역으로 이어지는 식당가 나카도오리의 유명 맛집들 앞에도 줄이 섰다.
아침 방송들이 "도쿄가 텅 비었습니다"라고 호들갑을 떨었던 대로 달라진 곳도 있었다. 만원 지하철로 악명 높은 오에도선 시오도메에서 롯폰기 구간은 눈에 띄게 승객이 줄었다. 사무실과 유흥업소가 섞여 있는 롯폰기역의 마츠모토 역무원은 "오늘부터 휴업하는 식당과 유흥업소가 많아 이용객이 전날의 60~70% 수준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평소 택시를 잡으려는 손님들로 긴 줄이 서는 도쿄역 앞 택시승강장도 어젯밤에는 거꾸로 승객을 기다리는 택시들이 길게 꼬리를 물었다. 긴급사태 첫날 도쿄의 아침 풍경은 '차분한 혼란, 어정쩡한 자숙'으로 정리할 수 있다. 긴급사태선언을 실감할 수 있는 곳과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곳이 혼재해 있었다. 어제와는 분명 다른 모습이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달라진 건 전혀 아니었다. "긴급사태선언으로 친구와의 술자리가 사라지고, 가고 싶은 곳을 못가는 등 과거의 일상이 사라지지만 모두 힘을 합쳐 전후 최대의 위기를 이겨나가자"던 아베 총리의 호소가 머쓱할 지경이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장의 엇박자가 원인이다. 총리의 긴급사태선언 이후 각종 시설과 가게에 휴업을 요청한 곳은 도쿄 뿐이었다. 나머지 6개 지역 지방자치단체장은 별다른 휴업 요청 없이 '강력한 외출자제'만 반복했다. 총리가 긴급사태를 선언했다는 선언적 의미 외에는 달라진 게 없는 셈이다.
정부와 도쿄는 더 어깃장이 맞지 않았다. 도쿄도는 총리가 긴급사태를 선언하면 이날 가라오케에서부터 입시학원까지 다양한 시설과 가게에 휴업을 요청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도쿄도가 돌연 휴업을 요청할 대상 시설과 업종의 발표를 10일로 늦추기로 했다. 시행시기도 11일로 미뤄지면서 선언 이후 사흘의 공백기가 생겼다.
도쿄도의 명단을 받은 정부가 "휴업대상이 너무 광범위해 이대로라면 시민들이 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고 난색을 표하면서 벌어진 소동이다. 이발관과 미용실도 휴업 대상에 포함시킬 계획이었지만 아베 총리가 직접 "이용실은 안정적인 생활을 확보하기 위해 사업을 계속할 필요가 있는 서비스"라고 제동을 걸었다.
덕분에 한동안 머리를 못 자르게 될까 우려해 이발관과 미용실에 몰려든 시민들만 불편을 겪었다. 이미 긴급사태가 종료되는 다음달 6일까지 장기 휴업에 들어간 이자카야가 있는가 하면 종업원과 단골손임을 위해 영업을 계속하겠다는 바가 있다.
정부가 '지금까지의 행동을 완전히 바꾸자'고 호소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모순투성이다. 백화점과 대형 쇼핑몰, 영화관, 파칭코 등은 임시 휴업에 들어갔지만 은행, 슈퍼마켓, 편의점, 프랜차이즈 식당은 대부분 정상 운영한다. '밀폐, 밀접, 밀실'을 피하라면서 대중목욕탕과 보육원도 상당수 정상운영한다. 총리가 "원칙적으로 모든 회사는 재택근무를 해달라"라고 요청했는데 (꼭 필요한) 출근과 조깅, 산책은 기본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자제를 요청할 대상에서 제외했다. '외출을 철저히 피해달라'지만 지하철과 버스는 감편 없이 정상운행한다.
시민들의 긴장감도 여전히 덜하다. 도쿄도가 야간외출 자제를 요청한 다음날인 지난달 26일 게이오대학병원 견습의들은 3차 가라오케까지 가는 회식을 했다가 18명이 집단 감염됐다. 이 때문에 병상확보에 비상이 걸린 시점인데도 게이오대학병원은 환자를 받지 못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긴급사태를 선언한 대도시 시민들이 고령 인구가 많은 시골로 이동하는 것을 극구 피해달라"고 요청한 시간 신주쿠 고속버스터미널은 도쿄를 빠져나가는 심야고속이 만석이 됐다.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도쿄탈출'이라는 단어가 화제가 되면서 오키나와 이시가키섬의 시장이 직접 "우리 지역에는 전용 병상이 3석 밖에 없으니 제발 '코로나피난'을 오지 말아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도쿄 사람들의 별장이 많은 나가노현 가루이자와에는 도쿄 번호판을 단 차량이 가득하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일본 정부가 긴급사태선언을 앞두고 가장 우려한 건 '패닉'이었다. 공포에 빠진 시민들이 병원에 몰려들고 사재기를 하면서 의료체계와 사회시스템이 무너지고 막대한 경제적 손실로 이어지는 것을 걱정했다는 것이다. 경제와 사회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전염병도 잡으려다보니 일본의 긴급사태선언은 그다지 긴급하게 느껴지지 않는 선언이 됐다.미국과 유럽, 우리나라가 외출금지와 직장폐쇄 등 경제와 사회시스템이 망가지는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전염병을 잡는데 주력한 것과는 전혀 다른 시도다.
전날 아베 총리는 "이대로라면 1개월후 도쿄에서만 감염자수가 8만명에 달할 것"이라며 "사람간 접촉을 70~80%를 줄이면 2주후부터 감염자수가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요미우리신문은 도쿄의 감염폭발을 막으려면 접촉을 80% 줄이는 것으로는 어림없다고 보도했다. 요코하마시립대학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사람간 접촉과 대중교통 이용시간을 지금보다 98% 이상 줄여 코로나19를 수습할 수 있다.
지금까지 매주 7시간 지하철과 버스를 탔던 사람이 이용시간을 8분20초로 줄이고, 한 주에 100명을 만나던 영업사원은 2명만 만나야 가능한 시나리오다. 이날 아침 도쿄는 사람간의 접촉이 70~80% 줄어든 사회는 분명 아니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