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사태선언 첫날 '차분한 혼란, 어정쩡한 자숙'에 들어간 도쿄 [현장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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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사태첫날인 8일 아침 출근하는 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는 도쿄 주오구 가치도키역 주변](https://img.hankyung.com/photo/202004/01.22295687.1.jpg)
중심가 역시 '정적에 휩싸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랐다. 상습 정체구역은 변함없이 출근 차량으로 막혔고, 시바공원의 쇠고기덮밥집 요시노야 매장에 아침식사 손님이 3분의 2 정도 들어찬 것도 어제와 같았다. 점심시간이 되자 게이오대학에서 다마치역으로 이어지는 식당가 나카도오리의 유명 맛집들 앞에도 줄이 섰다.
![8일 평소 출근시간대에는 만원인 오에도선 객차가 텅 비어 있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004/01.22295689.1.jpg)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장의 엇박자가 원인이다. 총리의 긴급사태선언 이후 각종 시설과 가게에 휴업을 요청한 곳은 도쿄 뿐이었다. 나머지 6개 지역 지방자치단체장은 별다른 휴업 요청 없이 '강력한 외출자제'만 반복했다. 총리가 긴급사태를 선언했다는 선언적 의미 외에는 달라진 게 없는 셈이다.
정부와 도쿄는 더 어깃장이 맞지 않았다. 도쿄도는 총리가 긴급사태를 선언하면 이날 가라오케에서부터 입시학원까지 다양한 시설과 가게에 휴업을 요청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도쿄도가 돌연 휴업을 요청할 대상 시설과 업종의 발표를 10일로 늦추기로 했다. 시행시기도 11일로 미뤄지면서 선언 이후 사흘의 공백기가 생겼다.
덕분에 한동안 머리를 못 자르게 될까 우려해 이발관과 미용실에 몰려든 시민들만 불편을 겪었다. 이미 긴급사태가 종료되는 다음달 6일까지 장기 휴업에 들어간 이자카야가 있는가 하면 종업원과 단골손임을 위해 영업을 계속하겠다는 바가 있다.
정부가 '지금까지의 행동을 완전히 바꾸자'고 호소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모순투성이다. 백화점과 대형 쇼핑몰, 영화관, 파칭코 등은 임시 휴업에 들어갔지만 은행, 슈퍼마켓, 편의점, 프랜차이즈 식당은 대부분 정상 운영한다. '밀폐, 밀접, 밀실'을 피하라면서 대중목욕탕과 보육원도 상당수 정상운영한다. 총리가 "원칙적으로 모든 회사는 재택근무를 해달라"라고 요청했는데 (꼭 필요한) 출근과 조깅, 산책은 기본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자제를 요청할 대상에서 제외했다. '외출을 철저히 피해달라'지만 지하철과 버스는 감편 없이 정상운행한다.
![교통량이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8일 롯폰기 교차로.](https://img.hankyung.com/photo/202004/01.22295688.1.jpg)
일본 정부가 긴급사태선언을 앞두고 가장 우려한 건 '패닉'이었다. 공포에 빠진 시민들이 병원에 몰려들고 사재기를 하면서 의료체계와 사회시스템이 무너지고 막대한 경제적 손실로 이어지는 것을 걱정했다는 것이다. 경제와 사회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전염병도 잡으려다보니 일본의 긴급사태선언은 그다지 긴급하게 느껴지지 않는 선언이 됐다.미국과 유럽, 우리나라가 외출금지와 직장폐쇄 등 경제와 사회시스템이 망가지는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전염병을 잡는데 주력한 것과는 전혀 다른 시도다.
전날 아베 총리는 "이대로라면 1개월후 도쿄에서만 감염자수가 8만명에 달할 것"이라며 "사람간 접촉을 70~80%를 줄이면 2주후부터 감염자수가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요미우리신문은 도쿄의 감염폭발을 막으려면 접촉을 80% 줄이는 것으로는 어림없다고 보도했다. 요코하마시립대학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사람간 접촉과 대중교통 이용시간을 지금보다 98% 이상 줄여 코로나19를 수습할 수 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