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가장 주목받고 있는 사람 가운데 하나는 중국 최고 부호인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馬雲·Jack Ma)이다.

블룸버그통신은 9일 "바이러스 사태 이후 중국 이미지 개선을 돕는 트럼프의 친구 '잭 마'"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마윈이 알리바바그룹의 회장직에서 물러난 뒤 전 세계에서 영향력이 더 커졌다고 보도했다.

마윈은 지금까지 최소 1800만 개 이상의 마스크, 코로나19 진단키트 등 각종 의료용품을 아프리카와 유럽, 미국,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100여 개국에 기증했다. 그는 중국인으로서 이 같은 선의를 베풀며 코로나19 사태로 비난을 받고 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국 정부는 최근 알리바바와 손잡고 코로나19가 크게 확산하고 있는 미국 뉴욕주에 인공호흡기 1000대를 기증했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중국이 1000대의 인공호흡기를 기증하는 데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의 역할이 컸다"며 "그에게 감사한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마윈은 '나의 친구'"라며 "매우 감사한다"고 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바이러스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불렀다.

블룸버그는 "빌 게이츠와 같은 부자들이 정기적으로 대규모 자선 활동을 하고 있지만 중국 기업가가 이 같은 선행을 펼치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외교정책 전문가인 즈췬 주 버크넬대 국제관계학과장은 "오랫동안 중국은 소프트파워를 홍보하는 주요 수단으로 공식적인 선전 정책과 해외 대규모 투자에 의존해왔다"며 "억만장자의 자선사업은 새로운 접근법"이라고 말했다.

마윈은 지난달 16일 트위터에 가입했는데, 이때는 중국 정부가 바이러스 책임을 놓고 미국과 갈등이 커지고 있었던 시기다. 마윈은 첫 트윗에서 기도하는 손 모양의 이모티콘과 함께 "미국에 있는 우리 친구들에게 행운을 빈다"는 글을 올렸다. 그 이후에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싸움! 함께하면 할 수 있다!" 등의 문구를 쓰면서 전 세계가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단결할 것을 촉구했다.

다른 중국 정보기술(IT) 기업들도 자선 활동을 보여줬다. 레이쥔이 공동 설립한 샤오미는 인도에 코로나바이러스 구제 사업을 약속했다. 샤오미는 15개국에 의약품을 기증했다. 런정페이 회장이 있는 화웨이는 캐나다에 100만 장 이상의 마스크를 보냈다. 공교롭게 캐나다와 중국은 2018년 12월 캐나다 정부가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 딸인 멍완저우를 밴쿠버에서 스파이혐의로 체포해 미국으로 추방한 뒤 급속히 관계가 냉각됐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1980년대 소프트파워 개념을 도입한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명예교수는 "유명한 중국 기업가들은 공산당의 허락 없이는 이런 제스처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는 아프리카에서 마윈의 마스크, 코로나19 진단키트 기증 등을 홍보했다. 중국 관영 언론들도 마윈의 기부 내용을 비중 있게 다뤘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앞서 언론 브리핑에서 "마윈재단과 알리바바재단이 아프리카 국민들에 대한 중국인들의 우호적 정서를 생생하게 보여준 기부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국 기업과 민간 기관들이 아프리카 국가에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독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윈은 2016년 트럼프 당선 이후 중소기업과 중국 온라인 구매자 등을 연계해 미국에서 10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마윈은 최근 몇 년간 시 주석 정책을 띄우는 목소리도 냈다. 2016년에는 온라인 감시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을 지지하면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빅데이터를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또 중국이 1당 체제의 안정으로부터 이익을 얻고 있으며 중국의 엄격한 온라인 검열에 찬성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마윈이 그동안 중국 공산당의 압박을 받아왔다는 추측도 적지 않다. 그는 그러나 2018년 9월 알리바바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자신이 (공산당 압박에) 밀려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알리바바>라는 책을 쓴 던컨 클라크는 "태양에 너무 가까이 날아가면, 당신의 날개는 녹는다"며 "그는 경쟁자들을 이기기 위해 적절한 수위를 정해야 했고, 정부의 분노를 사지 말아야 했다"고 말했다. 클라크는 "마윈은 중국 정부보다 소프트파워를 훨씬 잘 펼칠 수 있다"며 "바이러스 발병의 '원죄'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런던 SOAS대의 스티브 창 중국연구소장은 "중국 억만장자들의 자선활동은 '조직된 선전 활동'을 수반한다"며 "마윈과 같은 억만장자들이 진정으로 동기 부여를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중국의 외교정책을 지지하고 당과 시 주석에게 호의를 베푸는 행위와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창 소장은 "대부분의 민주국가에서 많은 사람들은 중국을 잘 알지 못한다"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너그러움에 감명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