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판다 "리틀빅과 협상 채널 열려있어"
영화 '사냥의 시간' 둘러싼 법정 공방, 합의점 찾을까
영화 '사냥의 시간' 개봉을 둘러싼 법정 공방을 놓고 영화계가 술렁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빚어진 전례 없는 갈등인 만큼, 어떻게 결말이 날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넷플릭스는 10일 190개국에 서비스할 예정이던 '사냥의 시간' 콘텐츠 공개 및 관련 모든 행사를 보류하기로 9일 결정했다.

전날 서울중앙지법이 해외 세일즈사 콘텐츠판다가 신청한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인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사냥의 시간'은 당분간 관객을 만나지 못하고 표류하게 됐다.

배급사 리틀빅픽처스는 당초 '사냥의 시간'을 2월 26일 극장 개봉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확산으로 개봉 시기를 잡기 어려워지자 넷플릭스의 문을 두드렸다.

순제작비 90억원이 들어간 데다, 마케팅 비용 약 20억원도 모두 소진한 상황에서 더는 극장 개봉을 고집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당장 개봉한다고 해도 손실은 불 보듯 뻔하고, 해외 역시 극장 셧다운으로 개봉이 여의치 않은 점도 고려됐다.

더구나 2018년 7월에 크랭크업해 개봉도 이미 2년 가까이 미뤄진 상황이었다.

영화 투자사를 비롯한 감독·출연 배우·스태프, 그리고 영화를 기다리던 관객들도 고려한 결정이다.

때마침 한국 영화 콘텐츠를 확대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는 넷플릭스와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세를 확장하고 있는 경쟁업체 디즈니 플러스 등을 의식한 행보다.

넷플릭스는 제작비 상당 부분을 보전해주는 조건으로 리틀빅픽처스로부터 판권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사냥의 시간' 둘러싼 법정 공방, 합의점 찾을까
그러나 계약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다.

넷플릭스와 계약 이전에 이미 팔린 해외 판권이 문제가 됐다.

'사냥의 시간' 해외 판매를 대행한 콘텐츠판다 측은 이미 30개국에 영화를 팔았고, 70여개국과 추가 계약을 앞뒀다.

이에 리틀빅픽처스는 '천재지변' 등을 이유로 해외 판매 대행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그러자 콘텐츠판다는 "일방적인 계약 해지로 금전적 손해를 입은 것은 물론 해외 시장에서 쌓아 올린 명성과 신뢰를 잃게 될 위기에 처했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콘텐츠판다의 손을 들어줬다.

콘텐츠판다는 배급사 뉴(NEW)의 자회사다.

영화계는 "두 회사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엇갈린 시선을 보낸다.

'신과함께' 시리즈를 제작한 리얼라이즈픽쳐스 원동연 대표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제가 같은 상황에서 처했더라도 넷플릭스를 선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 대표는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적인 재앙 속에서 지금 개봉을 하면 망할 수밖에 없고 해외 개봉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며 "해외 바이어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콘텐츠판다가 법적 대응까지 한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도 SNS에 "중소배급사 리틀빅픽처스가 망하면 영화계가 입을 타격이 큰데, 대기업 계열사 콘텐츠판다가 이러면 안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라고 썼다.

영화 '사냥의 시간' 둘러싼 법정 공방, 합의점 찾을까
반면 극장 관계자는 "배급사의 미숙한 일 처리로 콘텐츠는 물론 작품과 연관된 수많은 스태프까지 피해를 보게 됐다"면서 "성급한 판단이 화를 불렀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해외 선판매라는 것은 국위 선양이나 영화 경쟁력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일인데, 그 부분을 충분히 생각해서 넷플릭스와 계약을 해야 했다"면서 "극장 개봉용으로 만든 영화인데도 극장 관객과 만나기를 포기한 나쁜 선례를 남겼다"고 했다.

영화계는 그러나 두 회사가 결국 적절한 타협점을 찾을 것으로 본다.

콘텐츠판다도 법원 판결 이후 행보를 묻자 "한국 영화계 전체를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면서 "리틀빅과 협상 채널은 열려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리틀빅픽처스 측은 현재 외부 연락을 끊은 상태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것으로 보인다.

리틀빅픽처스는 영화 제작사들이 공동으로 설립한 중소 투자·배급사다.

2013년 10월 대기업 중심으로 전개되는 불합리한 제작 환경을 개선하고, 공정한 영화 유통 환경을 조성하고자 제작사들이 의기투합해 세웠다.

이후 '아이 캔 스피크'(2017), '치즈인더트랩'(2018) 등을 배급했으나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 흥행에 잇달아 실패했다.

지금은 존폐 갈림길에 설 정도로 심각한 경영난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3월 말에도 마케팅팀을 없애고, 배급팀과 재무팀 최소 인원만 남기는 등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권지원 리틀빅픽처스 대표는 전날 오후 법원 판결 전에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순리에 맞는 판결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며 "65억 모태펀드를 포함한 모든 사람을 다치게 할 순 없다"고 밝혔다.

이때까지만 해도 패소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계 관계자는 "리틀빅픽처스가 콘텐츠판다와 해외바이어들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하고, 적절한 피해 보상을 해주는 선에서 합의점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콘텐츠판다 역시 무리한 보상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