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포스트 코로나'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휩쓸고 간 다음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모든 분야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우선 서구 민주국가들이 절대적 가치로 여겨온 자유에 대한 재해석이다. 역사적으로 자유는 권력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국가가 전자팔찌를 채운다든지, 개인 위치 추적을 한다든지 하는 것은 서구사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개인 자유의 침해로 여겼다. 그러나 앞으로 미국, 유럽 등지에서는 코로나19 같은 새로운 적(敵)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어디까지 자유를 제한할지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논쟁이 벌어질 것이다.

또 국방의 개념도 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는 적군의 침입으로부터 국토를 방위하는 것이 국방의 목적이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보이지 않는 적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부터 국토를 방위하는 ‘방역(防疫) 국방’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방역 국방군(國防軍)은 상비군이 아닌, 위기 발생 때 민·관·군의 방역 전문가가 힘을 합치는 비상시 국가동원체제가 될 것이다.

다음으로 국제 경쟁의 기본 패러다임 변화다. 과거에는 큰 놈이 작은 놈을 잡아먹었다. 놀라울 정도로 급속히 확산된 코로나19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경험했듯이 앞으로는 빨리 움직이는 나라와 기업이 국제 경쟁에서 앞서나가게 될 것이다. 올 1월 초 코로나19가 국내에 번지기 전 우리 의료·바이오 벤처기업들은 재빨리 진단키트 개발에 들어갔고, 정부는 긴급사용승인제도를 통해 이를 보름 만에 실용화할 수 있도록 도왔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를 도입했으며,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언급할 정도로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이 혼란의 와중에 한국 경제가 얻은 게 있다면 미래 먹거리 산업인 바이오산업의 국제화 가능성을 꼽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우리 시민의식의 놀라운 변화도 일어났다. 과거에는 법이나 사회적 규범을 어기는 사람이 있으면 일반 국민은 방관하고 국가가 개입해 통제했다. 그런데 자가격리 의무를 어긴 자에 대해 시민사회가 먼저 들고일어난 것에서 보듯이 법질서 유지에 대한 국민의 태도도 달라질 것이다.

당장은 세계 경제가 대혼란을 겪고 있지만 더 큰 리스크는 자유무역체제의 동요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비교우위 원리에 의해 각국이 국제 분업을 하고 자유무역으로 필요한 물자를 조달했다. 그런데 자유무역의 선봉에 선 미국이 마스크 같은 기초 방역장비 부족으로 혼란에 휩싸였다. 이에 미 의회는 기초 의료·방역장비의 자국 내 생산을 의무화하는 법안의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 각국도 이를 따를 것이고, 세계무역의 상당 부분은 관리무역(managed trade) 체제로 전환될 것이다. 래너 미터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서방세계가 발등의 불을 끄고 나면 초기대응 실패의 책임을 묻기 위해 ‘반중(反中)동맹(Anti-China Agenda)’을 결성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코로나19를 먼저 극복한 것이 공산주의 체제의 우월성 덕분인 것처럼 ‘마스크 외교’를 펼치며 승리의 찬가(!)를 부르는 중국에 대한 서방세계의 반발이다.

사실 중국이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투명하게 대처했더라면 코로나19가 세계적인 우환(憂患)으로 확산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세계는 팬데믹(대유행) 발생 시 각국의 신속한 대응 의무와 책임에 대한 국제적 규범을 명확히 하고자 할 게 틀림없다. 이미 인도가 중국에 코로나19 확산 책임을 물어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소했다. 당연히 중국은 이에 반발할 것이고 세계는 반(反)중국과 친(親)중국 진영으로 양분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청와대와 집권 여당은 최근의 중국처럼 허황된 승리의 찬가를 불러선 안 된다. 마치 정부가 잘해서 방역 모범국가가 된 것인 양 자화자찬하며 이를 총선 아젠다로 활용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런데 이는 사실과 정반대다. 정부가 초기대응에 실패한 것을 의료 전문가 및 국민이 땀과 눈물로 극복한 것이다. 그런 사실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