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전 4월 11일, 경남 마산 중앙부두 수면 위로 시신 한 구가 떠올랐다. 교복을 입은 시신의 오른쪽 눈엔 최루탄이 박혀 있었다. 3·15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 참여한 뒤 실종됐던 김주열 열사의 사체였다. 사망 당시 그의 나이는 만 15세. 실종된 지 27일 만의 발견이었다.

김 열사는 1944년 10월 7일 전북 남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김재계는 천석꾼으로 불릴 정도로 부농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병환이 깊어지면서 가세가 기울자 김 열사는 은행원이 되기 위해 마산상고에 지원했다. 마산상고 합격자 발표를 하루 앞둔 1960년 3월 15일, 이승만 정부의 부정선거가 이뤄졌다. 3~5인조 공개 투표, 부정 개표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부정선거에 마산 시민들은 거리로 나섰다. 합격 여부 확인을 위해 마산에 있던 김 열사 역시 부정선거 규탄 집회에 참가했지만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에 목숨을 잃었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의 싸늘한 주검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마산 시민의 분노는 경찰의 제지를 뚫고 전국으로 퍼졌다.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4월 26일 하야 성명을 발표했다. 문화재청은 김주열 열사의 주검 사진을 비롯해 4·19혁명 관련 자료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