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제안한 정부의 회사채 지급보증을 통한 유동성 공급 방안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지금으로선 계획이 없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기업의 자금 조달에 어려움이 커지고 있지만 정부 대응은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정부의 회사채 및 기업어음(CP) 지급보증 방안은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있지 않다”고 12일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은 시장 상황이 심각하지 않기 때문에 한은의 국고채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과 채권시장안정펀드 등 그간 내놓은 대책의 효과를 살펴보는 것이 우선”이라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지난 9일 “미국처럼 정부가 지급보증을 하고 중앙은행이 회사채 등을 사들이면 효과가 상당히 크다”고 밝혔다. 시장에선 한은이 미국식 제도 도입을 정부에 제안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은 정부가 특수목적회사(SPV)를 설립하고, 중앙은행(Fed)이 이 SPV에 자금을 공급해 이 기구가 회사채와 CP 등을 사들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회사채 등의 상환을 보증해 Fed의 손실 부담을 없애줬다. 금융시장에선 CP 금리가 치솟고 자금경색이 풀리지 않고 있는 만큼 적극적 자금 공급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항공·관광·면세점 위기대책 '뒷짐'만…코로나지원금도 선거 끝나고 다시 논의

"韓銀 제안한 회사채 보증계획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고음이 높아지고 있는데도 정부가 차일피일 대책을 미루는 분야는 자금시장만이 아니다. 항공·관광·면세점 등 위기 업종 대책도 마찬가지다. 항공업계는 코로나19 사태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붕괴 위기에 처했다. 대한항공은 올 1분기 2400억원대의 영업손실을 볼 것으로 관측됐다. 이스타항공은 전 직원의 20%를 구조조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2월 ‘저비용항공사(LCC)에 3000억원 유동성 지원’ 등 대책을 발표한 이후 별다른 추가 지원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을 지원하면 대기업 특혜 시비가 일어날까봐 미적거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면세점도 상황이 비슷하다. 최근 롯데·신라면세점 등이 임차료 부담을 못 이겨 인천국제공항 내 점포 계약 갱신을 포기했지만 정부는 “임차료 문제는 인천공항공사와 기업이 알아서 풀 일”이라며 뒷짐만 지고 있다. 여행업계 역시 정부 대책이 너무 늦다고 호소하고 있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지난달 고객 수가 99% 급감했는데 정부는 규모가 큰 기업은 자구책을 도모하라는 말만 반복한다”고 말했다.

서민금융 대책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8일 제4차 비상경제회의에서 ‘개인채무자 지원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금융회사 신용대출을 갚지 못하게 된 개인과 자영업자의 원금 상환을 최대 1년간 늦춰준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누가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는 ‘깜깜이’다. 정부는 지원 조건으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소득 감소 △가계·신용대출 대상 △대출 상환이 곤란한 상황 △연체 또는 연체 우려 증명 등 추상적인 요건만 공개하고 구체적 기준은 “관련 기관과 논의해 마련하겠다”고 했다.

긴급재난지원금(코로나지원금)은 지난달 30일 지급 방침이 나온 지 2주가 다 되도록 지원 범위조차 확정되지 않았다. 코로나19 피해를 본 가구에 최대 100만원을 지급하는 제도다. 정부가 당·정·청 협의를 거쳐 소득 하위 70% 가구에 코로나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이 합의를 뒤집고 “전 국민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나선 탓이다. 청와대마저 이달 7일 “향후 국회 심의 과정에서 깊이있는 논의를 거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와 국회는 오는 15일 국회의원 선거 이후 지원 범위 조정 여부를 놓고 본격 논의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시간이 오래 걸리면 지원금 지급이 하반기로 밀릴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강진규/서민준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