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조원 넘게 쌓여있는 전력산업기반기금 요율(전기요금의 3.7%)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포스코의 철강 생산공장 모습. 연합뉴스
5조원 넘게 쌓여있는 전력산업기반기금 요율(전기요금의 3.7%)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포스코의 철강 생산공장 모습. 연합뉴스
교육부 대학설립심사위원회가 이달 3일 화상 회의를 열어 논란이 지속됐던 한전공대 법인 설립을 인가했습니다. 한전공대는 전남 나주에 들어서는 이공계 특성화 대학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죠. 나주시 인근 GIST(광주)는 물론 KAIST(대전), 포스텍(포항), DGIST(대구), UNIST(울산) 등 전국적으로 특성화 대학이 많은 데다 종합대학 에너지 전공자도 남아 돈다는 점에서 ‘선거용’이란 비판이 적지 않습니다. 차기 대선 직전인 2022년 3월 개교 예정입니다.

한전공대를 설립하는 데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합니다. 개교 준비 비용으로 내년까지 5202억원, 특화연구소 확장 비용까지 합치면 2031년까지 1조6112억원이 소요될 것이란 게 한전 측 추산입니다. 한전이 탈원전 정책 등 영향으로 대규모 적자 수렁에 빠진 만큼 전력산업기반기금을 활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습니다.

전력기금은 ‘전력 산업의 기반조성 및 지속적 발전에 필요한 재원 확보’를 목적으로, 매달 국민·기업이 납부하는 전기요금에서 3.7%씩 떼어 별도로 적립하는 돈입니다. 전기사업법이 근거이죠. 모든 국민이 알게 모르게 내고 있습니다. 이 돈을 한전공대 설립에 투입하겠다는 겁니다. 설립의 당위성 뿐만 아니라 일부 지역 발전사업에 전국민이 내는 전기요금을 쓴다는 점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2022년 3월 개교 예정인 한전공대 캠퍼스 가상 조감도. 한국전력 제공
2022년 3월 개교 예정인 한전공대 캠퍼스 가상 조감도. 한국전력 제공
전력기금엔 여유 자금이 많이 쌓여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동안 과도하게 적립했기 때문이죠. 2018년 기준 전력기금 여유 재원은 4조1848억원으로, 10년 전(2009년)의 2442억원 대비 15배 넘게 증가했습니다. 작년 기준으로도 5조2217억원이 쌓여있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현재의 요율(전기요금의 3.7%)을 유지할 경우 여유 재원은 2023년 5조6923억원까지 불어날 전망입니다.

전력기금 여유 재원을 한전공대 설립 등 ‘엉뚱한’ 곳에 쓸 게 아니라, 전기기금 요율 자체를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문가 및 산업계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산업계는 최근 정부 측에 “코로나19 사태 및 경기 침체로 벼랑 끝에 놓인 제조업계를 위해 전력기금 요율을 인하해 달라”는 청원을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실제 전기사업법 제51조 6항에 따르면, 산업부 장관은 전력기금 부담이 축소되도록 노력하고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과거 전력기금 요율을 낮춘 적도 있었습니다. 2005년 전기요금의 4.591%였던 전력기금 요율은 2006년부터 현행 3.7%로 낮춰졌지요. 국민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이후 10여년동안 요율 변화가 없었던 겁니다.

이런 점을 근거로 기획재정부가 2017년 기금존치평가보고서 및 부담금 운용평가보고서에서, 감사원이 작년 감사보고서에서 각각 전력기금 요율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적시했으나 여전히 반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전기요금은 모든 소비자에게 작지 않은 부담을 주는 공과금입니다. 산업계엔 기초 경쟁력과 생존을 좌우하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철강업체인 현대제철만 해도 1년에 납부하는 전기요금이 1조2000억여원에 달합니다. 전력기금 요율을 단 0.1%포인트라도 낮추면 글로벌 경쟁 구도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지요.

정부는 그동안 득표에 도움이 되는 주택용 전기요금을 억제하는 데는 신경을 써왔습니다. 하지만 전체 전기요금 사용량의 55.6%(작년 기준)를 차지하는 산업용 요금은 지속적으로 올려왔지요. 2002년 이후 산업용 전기요금은 약 81% 상승한 반면 주택용은 4% 인하됐습니다. 올 하반기엔 산업용 요금을 추가 인상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지요.

국내 기업들이 납부하는 산업용 전기요금은 작년에 사상 처음으로 주택용보다 높아졌습니다. 주택용 요금은 ㎾h당 105.0원이었는데 산업용은 이보다 높은 ㎾h당 106.6원이었지요.

독일 프라운호퍼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탈원전 정책 추진 후 전기요금이 급등한 독일에서도 ‘특별 균등화 제도’를 도입해 자국 내 주력 제조업체에 대한 전기요금을 감면해주고 있습니다. 자국 기업들이 수출 경쟁력을 유지해야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세금을 더 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겁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역시 독일 정부의 기업에 대한 전기요금 특별 감면이 “보조금 부당 지원이 아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정부는 취약층을 대상으로 오는 18일부터 청구되는 월별 전기요금 납부기한을 3개월씩 연장해줄 방침입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전기요금 등 공과금의 감면 또는 유예를 검토하라”고 주문했지요. 당초 전체 국민·기업을 대상으로 전기요금을 깎아주는 방안이 검토됐으나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는 한전이 여력이 없어 실행안에 담지 못했습니다.

5조원 넘게 쌓여 있어 오히려 ‘쓸 곳’을 찾고 있는 전력산업기반기금. 지금은 요율을 낮춰 국민·기업 부담을 덜어주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한전공대 설립보다 민생이 더 급합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